
10월18일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 참석해 전시 부스를 돌아보고 있다.
군 스스로의 각오와 성찰 못지않게 군을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눈도 달라져야 한다. ‘국방개혁 2020’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이고 거센 반론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처음으로 군을 품안에 끌어들이고 그 개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군과 군인 역시 사회의 일부라는 인식 아래, 이들이 문민정권에서 이뤄져온 민주화 과정에서 고립되고 방기된, 군사정권의 또다른 피해자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1980~9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군의 ‘탈(脫)성역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군사안보의 비중마저 폄하됐다는 점이다. 군사독재정권을 경험한 시민사회가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아래 군을 억제와 축소, 소외의 대상으로 보는 가운데 ‘군의 탈성역화’ 흐름은 어느 사이엔가 군사안보의 중요성마저 평가절하하게 만든 것이다. 시민사회 일각에서 18만이라는 창군 이래 최대의 병력감축 폭을 두고도 부족하다고 강변하는 이면에 지난 십수년의 민주화 과정에서 되풀이되어온 ‘군 때리기’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여건에 맞는 21세기형 정예강군을 육성하려면 그 과정에 군이 주체로서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을 향한 자신들의 충성심이 ‘단순한 짝사랑’이 아님을 깨달아 개혁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자각이 필수다. 직업군인이 ‘그들’로 남지 않고 ‘우리’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려면, 군을 소외와 위축, 부정(否定)과 억제로부터 이끌어내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의지와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번 개혁안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된 주제 가운데 하나가 재원 마련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도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6월 장관이 계룡대 3군본부에 내려가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설명하고 담당 고위간부가 국방예산의 할당과 관련한 견해와 과제를 피력하는 등, 육·해·공 3군의 고위직 장교들과 공감대를 넓혔다.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한 국방개혁에 소요되는 예산과 관련해서 기획예산처를 비롯한 예산당국과 국방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국방연구원(KIDA) 소속의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검증팀이 검토, 평가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향후 국방부는 개혁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서도 새롭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특히 예산 당국을 포함한 정부 부처들을 대상으로 이해조정을 거치는 한편 개혁의 세부내용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나 과학기술부 등 다른 부처의 예산을 활용하는 방안, 군부대와 군기지가 위치한 지자체의 예산을 활용하는 방안도 다각적으로 검토, 시도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
또한 민간인력 확대가 국방예산 절감 차원에서 이롭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민간인력은 직업적으로 훨씬 더 안정되고 이동이 적으며, 작전 개입에 따른 공석(空席)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현역군인과 비교했을 때 운영경비가 저렴하다. 민간인력의 교육기간은 현역보다 짧으며, 더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성이 높다.
나아가 국방분야에서 문민관료들을 ‘전문경영인’으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군인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은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면 전문경영인을 스카우트해 그들의 뛰어난 전문지식을 활용한다. 이제 군도 문민관료를 배척하기보다 예산의 확보와 군인의 위상 제고 및 복지증대를 위해 이들을 능동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군의 이익을 증대할 수 있는 전문관료를 찾아 발로 뛰어야 한다.
‘소모집단’ 딱지 벗으려면
또한 비록 한국군이 국방개혁을 통해 첨단 정보과학군을 지향한다고 해도, 단순히 ‘감축되는 병력을 증강되는 전력으로 상쇄한다’는 이미지로 비친다면 개혁은 포스트모던 산업사회에서 설득력을 갖지 못할 우려가 있다. 사실 저렴한 인간병기(兵器)를 값비싼 첨단무기로 바꾼다는 논리는 전근대적이다. 군의 정예화를 위해 ‘인간혁신’이 필요하고, 군의 정예화를 통해 비로소 ‘인간존중’이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강제전역(轉役) 제로(zero)’ 원칙의 국방개혁이어야 한다. 이번 개혁안에 따르면 현재 25대 75인 간부와 병(兵)의 비율이 2020년에는 40대 60으로 확대, 간부의 대규모 감축은 없을 듯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2020년까지 부사관은 3만명이 늘고 장교는 1500명이 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