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

관료 엘리티즘 강한 조정·조율의 名手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입력2004-01-28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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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부터 칭찬을 아끼지 않던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이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했다.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국가 주요 정책 및 현안 과제의 종합 조정’. 정부와 국회의 복잡다기한 이해관계를 남다른 친화력과 설득력으로 조율해온 예산通에게 걸맞은 자리라는 평가다.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
    ‘우(右)봉흠’이 마침내 청와대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1월2일 아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기획예산처 장관에서 자리를 옮긴 박봉흠(朴奉欽·56)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것으로 새해 업무를 시작했다. 그간 학자 출신의 이정우(李廷雨) 실장 아래서 싱크탱크쯤으로 비쳐졌던 청와대 정책실은 ‘실세’ 박 실장의 입성으로 그 기능과 위상을 새로이 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김진표(金振杓)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박봉흠 기획예산처 차관을 “내가 만나본 관료 가운데 가장 유능한 두 사람”으로 꼽아 ‘좌진표·우봉흠’이란 말을 낳았다. 서울대 동문이자 행정고시 13회 동기인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나란히 경제부총리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발탁돼 새 정부 경제팀의 핵심 포스트를 맡았다.

    지금까지 노 정부 경제팀은 외형상 안정지향 관료그룹의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개혁성향 학자그룹의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투톱’을 이루며 견제와 균형을 기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이제 ‘실험 동거’는 끝났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노 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아온 좌진표·우봉흠 신(新)투톱 체제가 뜬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최대 현안으로 여기는 대통령이 이들의 실무경험, 팀워크, 효율성, 추진력 등에 주목해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월 노 대통령당선자는 기획예산처에 단지 정부의 기능 조정뿐 아니라 자원 배분, 각 부처의 재정집행 감독, 지방분권화 추진 등 모든 부처 업무의 기획분야를 맡아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기획예산처는 지역균형발전 특별회계를 마련하고 재정집행 특별점검단을 신설하는 등 노 당선자의 공약 실현을 위해 적극 화답했다.

    그 무렵 박봉흠 기획예산처 차관은 “많은 짐을 싣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길을 가야 한다”는 이른바 ‘뗏목론’을 내놨다. 그는 이 논리에 근거해 대통령직인수위에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데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인수위가 여러 정책을 검토하더라도 예산집행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데 소홀해선 안 된다는, 예산전문가로서의 마땅한 소신을 밝힌 것이지만 당선자측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하기에 충분했다.



    노 대통령은 첫 조각(組閣)에서 박 차관을 기획예산처 장관에 임명한 후 이례적으로 부처별 업무보고 및 토론회에 박 장관이 반드시 배석하도록 지시했다. 부처마다 새 사업계획을 쏟아내고 이에 따른 예산경쟁이 치열한 만큼 나라 살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기획예산처 장관이 보고 현장에 있어야 이해관계를 제대로 조정, 조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장관에 대한 노 대통령의 확고한 신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박 장관은 업무보고 자리에 그저 참관자로만 배석한 게 아니다. 보고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조목조목 지적했다. 지난해 4월10일 열린 중앙인사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중앙인사위가 2004년까지 공무원 보수를 민간기업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보고하자 박 장관은 “이는 과거 정부에서도 추진했으나 민간기업이 임금을 계속 올리는 바람에 실현할 수 없었다”며 “구조조정이 쉬운 민간기업은 임금을 올려도 부담이 덜하지만,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은 내보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내년까지 민간기업 수준에 맞추겠다는 거냐”고 반박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박 장관 말에 일리가 있다”며 손을 들어줬다.

    박 장관은 국무회의에서도 과거 어느 기획예산처 장관보다 ‘말발’이 셌다고 한다. 지난해 5월27일 국무회의에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은 금연확산 여론을 등에 업고 담배에 부가되는 건강증진부담금을 올리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박 장관은 “복지부 방침대로 부담금을 올리면 소비자물가가 0.7%포인트 상승하고, 담배 수요가 줄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세원을 위축시켜 지방세 인상 요인도 발생한다”고 반대했다. 논쟁을 지켜보던 노 대통령은 “담뱃값 인상의 현실적 어려움과 인상 후 발생할 문제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하라”며 신중한 접근을 지시했다.

    6월11일 국무회의에서는 “내년 예산 사정이 좋지 않으니 각 부처들은 제로베이스에서 예산을 검토해달라”는 박 장관의 요청에 장관들이 뜨악해하자 곧바로 노 대통령이 “기존 예산도 재검토해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라”며 지원사격을 했다.

    한 전직 장관은 “박 장관은 더러 대통령이 직접 예산과 관련해 언급해도 그 자리에서 ‘그건 이러저러해서 안 된다’며 직언하곤 했다”고 전한다.

    “대통령은 박 장관의 그런 태도를 오히려 높이 산 것 같다. 국무회의에서 기획예산처 장관은 악역을 맡는 수밖에 없다. 다른 부처 장관들은 입만 떼면 돈타령을 하기 때문에 금고지기인 기획예산처 장관은 늘 ‘짠돌이’를 자임해야 한다. 누구보다 대통령이 그런 사정을 잘 알고 박 장관을 전폭적으로 서포트한 듯하다.”

    “올라갈수록 ‘그릇’ 커졌다”

    박봉흠 실장은 관가와 국회에서 두루 신망이 높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한나라당 이한구(李漢久) 의원은 “박 실장은 인재난을 겪고 있는 노무현 정부에 커다란 보탬이 되고 있는 인물”이라며 “현 정부 각료 가운데 그만큼 유능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극찬했다.

    “2000년 예결위 간사를 맡으면서 당시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이던 박 실장을 알게 됐는데, 매사에 성실할 뿐 아니라 한번 결정해서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무책임하게 말을 뱉았다가 뒤집고, 다른 자리를 노려 일을 벌였다가 마무리도 하지 않고 빠져나가는 고위 관료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그의 언행은 단연 돋보였다. 그런 책임의식은 국민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공직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본다.”

    기획예산처의 국장급 간부는 “박 실장은 전문성, 판단력, 친화력, 균형감각, 이견 조정능력, 근면함, 청렴함 등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게다가 잔정도 많아 기획예산처 직원들 사이에 역대 최고의 장관으로 꼽힌다”고 했다.

    박 실장과 고시 동기로 옛 경제기획원 등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직 관료는 “박 실장은 일을 워낙 꼼꼼하게 처리해 상사들이 높이 평가했는데, 대개 이런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달달 볶아대는 유형이기 쉽다. 하지만 박 실장은 위로부터는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부하들에게는 ‘쓸데없는 일 안 시키는 상사’로 통했으니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초기에는 관운이 썩 잘 풀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렇다 하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해 고시 동기들 중에서 과장(서기관) 승진이 늦은 축에 들었다. 승진이 늦어지면서 결혼도 늦어져 박 실장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중학생 외아들을 두고 있다. 그러나 과장에서 국장, 실장으로 직위가 올라갈수록 역량을 발휘하며 점차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기획예산처 간부의 말이다.

    “적잖은 직업관료들이 사무관, 서기관 시절엔 촉망받다가도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성장 지체’를 겪는 것과는 달리 박 실장은 높아지는 직위에 걸맞게 사람의 ‘그릇’도 커진 경우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박 실장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초기 한때 출신지역 때문에 노골적인 견제를 받았다. 요건은 갖췄기에 요직인 예산총괄국장 자리는 내줬지만 좀처럼 실권을 부여하지 않아 겉돌았다. 그러나 박 실장은 자리가 요구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이를 극복했다. 그 결과 박 실장에 대한 기획예산처의 의존도는 ‘중독’ 수준에 이르렀고, 박 실장은 DJ 정부에서 기획관리실장, 예산실장을 거쳐 차관에까지 올랐다.”

    ‘실용주의적 완벽주의자’

    지난해 2월 대통령직인수위가 인수위원과 인사추천위원으로부터 경제장관 후보를 추천받았을 때 기획예산처 장관감으로는 박봉흠 당시 차관이 최다 추천을 받았다. 또한 청와대와 총리실은 부처 내부 평가, 부처 외부 전문가 평가, 여론 수집 등 나름의 기준에 따라 ‘장관 평가’를 해오고 있는데, 그 결과는 대통령의 개각 때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올초 부분 개각 직전까지 이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도 박 실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안이 쉽게 통과되기 힘든 여소야대 국회에서 올해 균형예산안을 무리없이 관철시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으로 꼽힌다.

    박 실장과 밀양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40년 지기인 작가 이문열(李文烈)씨는 학창시절의 박 실장이 ‘실용주의적 완벽주의자’였다고 회고한다. 매사에 완벽을 기하는 모범생이되 융통성도 있고 놀기도 잘 놀았다는 것. 이씨는 박 실장의 그런 면모를 철저한 자기관리의 결과로 본다.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

    1월 2일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박봉흠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나와 봉흠은 앞줄의 작은 아이들 그룹이었는데, 그 중에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대개 샌님 같아서 ‘가시나(계집애)’라고 놀림을 받곤 했다. 늘 1등을 놓치지 않던 봉흠은 그런 놀림을 도무지 못 견뎌했다.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해서 합기도 유단자가 됐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도 빠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뭐든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참아내지 못하는 성미였다. 학창시절엔 손에서 책을 뗀 적이 없고 사회에 나와서는 직업관료로 빡빡한 일상을 살아왔지만, 요즘도 어쩌다 동창들과 어울려 카드라도 치면 도대체 언제 그런 걸 다 배웠는지 좀체 돈을 잃는 법이 없다.”

    박 실장을 ‘결점이 없는 게 결점인 사람’이라 일컫는 이씨는 그의 타고난 친화력에도 주목한다. 40년 넘게 사귄 허물없는 친구들이라 왁자하게 어울리다 보면 끼리끼리 툭탁거리는 이들도 있지만, 박 실장은 지금껏 어느 누구와도 시비 한번 붙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씨는 “본의 아니게 내가 노무현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가 됐지만, 그것 때문에 봉흠과의 사이가 불편해진 적은 없다”고 한다. 작정을 하고 노 정부를 비판하며 슬쩍 ‘도발’을 시도해도 박 실장은 “꼭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어. 이렇게도 생각해봐”라는 식으로 확전(擴戰)을 피하면서 우정과 직분을 함께 지켜낸다는 것이다.

    박 실장의 친화력은 정평이 나 있다. 국회, 언론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위, 아래, 옆을 두루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눈도장 찍기’에 너무 신경쓴다는 비난도 따른다.

    한 경제관료는 “그가 별별 하찮은 저녁 모임에도 꼭 얼굴을 내밀고, 오래 전에 퇴직했거나 자신이 직접 모신 적도 없는, 한 마디로 끈 떨어진 선배들의 경조사까지 꼬박꼬박 챙기는 것을 보면 놀랍기까지 했다”며 “대(對)국회 업무로 경황이 없을 때도 그렇게 뛰어다녔으니 아마 사생활은 거의 없다시피 했을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거절의 노하우’ 체득

    업무에 정통하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소탈하고 다정다감한 성격, 기분이 좋으면 앉은자리에서 위스키 한 병을 거뜬히 비워내는 주량, 걸쭉한 입담까지 겸비해 ‘보스’처럼 따르는 후배도 많지만, 박 실장이 그런 정에 흔들려 인사나 평가에서 특혜를 주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냉정하리만큼 능력과 성과에 따라 처리했다는 것. 바람직한 처신이 아닐 수 없지만, 이런 면모가 우리 관료조직에선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공무원들의 얘기다. 박 실장에게 나름대로 충성을 다한 이들 중에는 더러 노골적으로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고위 예산관료에게 필수불가결한 요건 가운데 하나가 조정·조율능력이다. 국회와 정부 각 부처의 이해관계가 엇갈린 예산배정 요구를 매끄럽게 조정, 조율해 합리적인 타협안을 도출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확보된 예산은 빤한데 손 벌리는 곳은 많다 보니 대개는 요구를 거절해야 하는 처지일 수밖에 없는데, 이 대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설득력이다. 거절을 하더라도 왜 들어줄 수 없는지를 충분하게 납득시켜야 뒤탈이 없기 때문인데, 박 실장은 이 부분에서도 강점을 지녔다고 한다.

    기획예산처 장관이던 지난 2000년 박 실장을 예산실장으로 발탁했던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은 “국회는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지역구 사업을 챙기느라 예산실장에 대한 압력이 엄청난 곳인데, 박 실장은 그걸 적절하게 막아내면서도 의원들이 언짢아하지 않도록 어르고 달래는 친화력과 설득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그냥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의원들을 맨투맨으로 접촉하면서 정연하게 설득하니 더는 우기지 못했다는 것.

    박 실장과 서울대 상대 68학번 동기인 최종찬(崔鍾璨)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곤혹스런 처지를 일단 모면하기 위해 의원들 앞에선 안 될 것도 될 것처럼 말하고, 나중에 안 되더라도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박 실장은 안 될 것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원칙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성의껏 설득하기 때문에 거절을 당한 의원들도 박 실장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고 전한다. 한마디로 ‘거절의 노하우’가 몸에 밴 사람이라는 것이다.

    박 실장은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예산 편성을 앞두고 식사를 함께하자는 각 부처 관계자들의 요청이 잇따르자 “예산처 구내식당에서 같이 먹자”고 제안, 불편한 상황을 미리 차단했다.

    그렇게 설득당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때 박봉흠 예산실장에게 부산 신항 사업비 전용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는데, 당시 노 장관은 박 실장의 설득력 있는 논지에 감탄했다고 한다. 이후 노 장관은 박 실장을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영입하려 했을 만큼 그를 높이 평가했다.

    청와대가 박 실장을 정책실장에 임명하면서 국가 주요 정책 및 현안 과제의 종합 조정과 함께 대국회 업무 등 대외협력 업무를 중점적으로 맡도록 한 것도 이 같은 고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관료주의 함정 경계해야

    박봉흠 실장과 권오규(權五奎) 수석을 비롯, 정책기획·산업정책·사회정책 비서관 등 청와대 정책실의 핵심 포스트 다섯 자리가 정통관료로 채워진 것은 이들 전문관료를 통해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을 강화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청와대에는 외교·국방분야 외에는 정부 부처 담당 수석이 따로 없기 때문에 이런 기능을 모아놓은 정책실의 정책조정 기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경제관료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지금까지는 학자 출신 실장의 성향 탓인지 청와대 정책실이 연구만 하다 시간을 다 보낸 듯한데, 박 실장이 맡게 되면 현안 처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는 박 실장 체제가 관료주의화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박 실장은 장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관료지상주의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철저하게 실무형이라 바깥 세상 변해가는 사정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민간의 역할도 커지고 있는데, 아직도 ‘정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컨셉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의 이런 성향으로 인해 행여 관(官) 주도 시대로 역행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관료들에겐 당장 드러나지 않은 문제는 일단 덮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김대중 정부 초기 청와대 경제수석이 학자 출신의 김태동씨에서 관료 출신의 강봉균씨에게 넘어간 후 이런 현상이 발생한 적이 있다. 한 예로 당시 정부는 부작용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경기부양과 소비진작을 주도했고, 결국은 이것이 훗날 신용대란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됐다. 박 실장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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