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세월호 특별조사위는 탐욕의 결정체”

새누리당 전략가 김재원 의원이 털어놓은 ‘협상의 사선(死線)’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입력2015-02-16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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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는 조사위 자리 지키고 일은 용역 준다니
    • 야당, 세월호 참사를 정권 탈환 수단으로 이용
    • 특정인이 캠프 관여하면서 서울시장 선거 틀어졌다
    • 콘크리트 지지율은 없다…회군하거나 장애물 치워야
    “세월호 특별조사위는 탐욕의 결정체”
    새누리당 ‘전략 브레인’으로 대야(對野) 협상을 주도한 김재원(51) 새누리당 의원이 2월 1일 원내수석부대표 자리를 내놓았다. 2013년 5월 당 전략기획본부장에 임명된 뒤 이날 원내수석부대표를 그만둘 때까지 20개월 동안 그는 뜨거운 이슈의 중심에 서 있었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세월호특별법 협상, 6·4전국동시지방선거, 7·30재보궐선거, 정윤회 문건 파문, 당청(黨靑) 갈등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야당을 공략했다. 덕분에 김 의원만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당직자는 드물다.

    3賊 화형식

    ‘부총리 위 부대표’ ‘왕수석’으로 통하던 그는 “수석부대표는 원내대표와 당 소속 의원들의 명령에 움직이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당의 처지를 생각해 진흙탕 속으로 기어들어가야 하는 나쁜 직분이기도 했다. 때때로 늑대처럼 사납고 여우처럼 교활해야 했다”며 이날 조용히 자리를 떴다.

    2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다시 만난 김 의원은 “1월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당뇨 전 단계에다 최고혈압이 1년 만에 20mmHg 높아져 고혈압 약을 먹게 됐다. 워낙 일이 많다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협상의 첨병’ 자리를 29개월 만에 내놓았는데.



    “박근혜 정부 1년차 때 정부 조직, 인사와 관련해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정권 1년차니까 일종의 ‘허니문 기간’이었다. 하지만 2년차가 되니 야당은 정권 탈환을 위해 여러 주장을 했고, 우리도 본격적으로 이에 맞서야 했다. 정책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국정원 댓글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논란, 지방선거, 세월호 참사가 이어지며 정국은 거센 격랑 속으로 휩쓸려갔다.”

    ▼ 국정원 댓글 사건이 불거졌을 때 김 의원은 국정원개혁 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였다.

    “본격적으로 ‘협상의 첨병’이 된 게 그때다. 무척 힘들었다. 보수세력은 ‘야권이 실체 없는 사건으로 국정원을 무력화하려 한다’고, 야당은 ‘개입이 드러났으니 국정원 전체를 개혁해야 한다’고 나왔다. 간극은 컸고 협상은 지난했다. 보수세력은 (당 지도부인) 황우여, 최경환, 나를 ‘3적(賊)’이라며 화형식도 했다. 현실적으로 보수단체를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긴 어려웠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독일 연방헌법수호청(BfV), 이스라엘 모사드 등 선진 정보기관을 방문해 살펴보고 합리적인 안을 만들었다. ‘수사 기능을 없애자’는 주장은 막아내면서 동시에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고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방첩수사 기능은 유지하도록 했다. 결국 국정원법을 개정했고, 국정원 개혁을 통해 이 문제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때 수사 기능을 없애자는 논리에 밀렸다면 ‘이석기 사건’은 못 밝혀냈을 거다.”

    김 의원을 만난 지 이틀 뒤인 2월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 관련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위반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 의원은 댓글 사건에 대해 “1심 무죄, 2심 유죄가 나온 것처럼 댓글 사건은 보는 시각에 따라 오해받을 만한 사안이었다”며 “원 전 원장의 행위는 법적 판단을 받으면 된다. 국정원 개혁을 통해 앞으로 이러한 정치 개입 소지를 없앤 데 의의가 있다”고 자평했다.

    “지난해 2월 초 국정원법 협상을 마무리하고, 6·4지방선거 공천 작업에 들어갔다. 그때 우리 당은 전면적 상향식 공천을 위해 체계를 잡고 있었는데, 전국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수천 명의 후보가 하루 평균 100여 건의 이의신청을 냈다. 신청자들은 4년을 기다려 공천을 받으려 했는데 당이 이들을 내친 셈이니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이의 심사를 했다. 5월 초 공천 작업이 끝났고, 5월 3일 원내수석부대표에 임명됐다.”

    “세월호 ‘청와대 지침’ 없었다”

    ▼ 공천 작업이 한창일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그때 지방선거 전략을 맡고 있어서 이 사건이 일으킬 파장과 대책 등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 국정조사와 세월호특별법 제정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야당과 일부 유가족은 한 편이 돼 정부·여당을 몰아붙이고, 세월호 참사를 정치투쟁화해 대통령을 공격했다.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대통령의 7시간’을 물고 늘어졌다. 10여 년 정치판에 있었지만 그땐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착하고 어린 학생들이 수장된 사고, 국민의 공분을 일으킬 사건이라 더욱 그랬다. 야당과 시민사회의 이러한 전략은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데 주효했다.”

    ▼ 해양경찰의 구조 소홀,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직원들의 직무유기 등 공직자들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선장과 선원의 무책임한 근무, 유병언 씨 일가족을 비롯한 선사(船社)의 부도덕, 공동체에 대한 인식 부재, 안전 무시, 공직자 근무태만 등 온갖 사회 병리현상이 합쳐져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었다. 야당은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해 압박했다. 여당은 내놓을 카드도 없었다. 물러서면서 들어줄 상황이었다.”

    ▼ 물러서면서 들어줄 상황?

    “뭐든지 수사해도 좋다, 조사든 수사든 확실하게 하자…이런 전제에서 출발했기에 협상이 가능했다. 숨길 게 있고 숨겨야 했다면 협상을 안 하고 질질 끌었을 거다. 그런데 그때 야당이 ‘사고 조사를 확실히 하고 보상도 충분히 하자’는 식으로 접근했다면 국민의 박수를 받았을 거다. 대통령을 몰아붙이고 정권의 무능을 폭로해 반사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접근하다보니 진실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국민의 의구심도 잘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불신을 더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 협상 때 청와대와의 조율은 없었나.

    “청와대는 전적으로 (우리한테) 맡겨놓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고 있었다. 청와대 지침을 받아 협상했다면 오히려 장애요인이 됐을 거다. 협상 당시 ‘청와대 지침’ 운운한 (야권)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조롱하고, 정권 탈환 수단으로 세월호 참사를 이용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초기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사태 때와 양상이 비슷했다.”

    靑 신년인사회 명단 소동

    “세월호 특별조사위는 탐욕의 결정체”

    지난해 10월 23일 김재원 의원(오른쪽)과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가 정부조직법 TF 첫 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어떤 점에서?

    “광우병 사태 때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과 언론이 맹공을 퍼붓고, 수백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갖가지 설을 전파하면서 이명박 정권이 치명상을 입었지 않나.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광우병 사태와 다른 점은 국민이 전혀 다른 판단을 했다는 사실이다. 7·30재보선에서 그걸 보여줬다. ‘광우병 학습효과’ 때문인지 야당 뜻대로 되지 않았다.”

    ▼ 지난해 9월 난관에 부딪힌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위해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중재안을 냈지만 김 의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김 의원이 청와대 지침을 받고 협상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정말 대통령 지침은 없었나.

    “이걸 말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박 대통령이 ‘야당에서 (협상 파트너인 김 의원을) 그렇게 겁을 낸다면서요?’하고 물은 적은 있다.”

    ▼ 그래서?

    “‘겁낼 이유가 없는데 그러네요’라고 답한 게 전부다. 야당은 나를 ‘청와대 실세’ ‘원내대표 위 원내부수석’ ‘청와대 지침 받았다’고 공격했는데, 그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한번 씩 하는 말이다. 사실 대화가 되고 협의 되면 곧바로 결정하는 사람이 파트너가 되는 게 야당에도 낫다. 나는 당이 정한 것을 들고 야당과 만나는 초병이었다. 역설적으로 (김 의원을 비판한) 박영선 전 비대위원장이 나를 가장 칭찬한 사람이 됐다. 나를 두려워하니, 우리 당 사람들은 내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야당이 나를 ‘일 잘하는 수석부대표’로 만든 거다.”

    김 의원은 청와대가 당에 보낸 초청자 명단 때문에 다시 한 번 실세 논란의 중심에 섰다. 1월 2일 대통령 신년인사회에 앞서 청와대가 초청자 명단을 보냈는데 김 의원의 이름이 올라 있었던 것. 그러나 당 3역 중 한 명인 이군현 사무총장은 명단에서 빠졌다. 그러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천지분간 못한다”고 화를 냈고, 청와대는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그래서 나는 초청자 명단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했고 신년인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표를 모시는 처지에서 대표가 불편해하는데 갈 이유도 없었다”고 했다.

    ▼ 6·4지방선거는 여당 참패가 예상됐다. 새누리당은 ‘중진 차출론’을 제기해 선전했는데.

    “지는 줄 알았다.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는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진도 팽목항에 내려가 살다시피 했다. 지지율이 야당 김진표 후보에게 10~20%포인트 앞서 있다가 역전됐다. 안산시장은 당내 경선은 물론 여론조사 경선도 할 수 없었다. 새누리당 안산시장 후보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면 수화기 너머로 욕설만 들려오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카드가 당 중진을 총출동시켜 붐을 일으키고 국민의 정당한 심판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인재를 지방으로 내려보내 종합적인 행정 경험을 쌓은 뒤 다시 중앙으로 불러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효과도 있다고 봤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당을 구하는 방법이었고. 중진 차출론 덕에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회전의자 돌리며 장관 행세?”

    ▼ 서울시장 선거에선 졌다.

    “뼈아팠다. 해볼 만했는데 중간에 몇 가지 ‘미스’가 있었다.”

    ▼ 어떤 미스였나.

    “….”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 의원은 ‘몇 가지 미스’에 대해 “특정인이 캠프에 관여하면서 일이 틀어졌다”고 했다. 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선거 준비와 각종 협상을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탓에 오히려 할 말이 없다. 많은 사람이 관여한 일이라 지금은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언젠가는 ‘신동아’에 밝히겠다.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피해를 본 건 확실하다. 서울시장 선거는 전략이 통하지 않은 선거였다.”

    ▼ 7·30 재보선에선 새누리당이 11대 4로 압승했다.

    “야당은 세월호 참사를 다시 선거에 끌어들이고, 권은희 의원을 공천해 국정원 댓글 사건을 활용하려 했다. 패착이었다. 이념적 잣대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단기적으로는 논리 정연하고 투쟁력 좋고 선명해 보일지 모르지만, 국민의 삶과 괴리되게 마련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중과 함께, 반 발자국만 앞서 함께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서생(書生)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을 겸비해야 하는데, 야당은 상인의 현실감이 부족했다.”

    ▼ 협상 결과 탄생한 특별법에 따라 꾸려진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준비단을 ‘세금도둑’이라고 비판했다(김 의원은 ‘세금도둑’ 발언을 하면서 ‘조사위 구성을 두고 사무처 정원이 규정(120명)보다 많고 여성가족부보다 큰 부처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처방을 내놓기 위해 출범하는 특별위원회다. 그런데 241억 원을 쓰겠다며 가져온 예산안을 보니 기가 찼다. 위원장은 장관급, 부위원장과 상임위원들은 차관급이고, 다른 상위직도 잔뜩 만들어 놓았다. 120명을 채용한다면서도 구체적인 일은 외부에 용역을 주겠다며 예산을 책정했다.”

    ▼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달라.

    “예를 들어 ‘보고서작성과’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럼 그 과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면 되지 다시 용역을 줘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나. 용역비만 수십억 원이다. 조사위 조사는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취재를 하기 마련인데도 홍보비로 5억 원 넘는 돈을 책정했다. 진상조사소위원장은 별도로 정책보좌관을 두도록 했다. 120명의 전문가를 채용하라고 특별법에 정했으면, 그 전문가들이 일을 하고 보고서도 만들어야지. 비전문가들이 자리를 지키고, 정작 중요한 일은 용역을 주겠다는 건데…. 조사위에서 회전의자 돌리며 장관 행세하겠다는 게 말이 되나. 불행한 사건에 개입해 나라 예산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거 아닌가. 자신들이 호위호식하려고 모인 탐욕의 결정체로 보였다.”

    回軍 또는 장애물 제거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이석태) 조사위원은 여·야 추천 각 5명, 대법원장 및 대한변호사협회장 지명 각 2명, 희생자가족대표회에서 선출한 3명 등 모두 17명(5명은 상임위원)이다. ‘세금도둑’ 논란은 설립준비단이 1월 16일 국회에 운영과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불거졌다. 총 소요예산은 240억여 원. 조직은 1실 1관 3국 14과로 구성되며 사무처 인력은 총 125명이다. 특별법에는 정원을 120명 이하로 두도록 돼 있지만, 상임위원 5명을 별도로 해석해 125명으로 만들었다. 김 의원의 문제 제기 후 예산과 인원을 두고 특별법이 정한 최대치로 하려는 야당 측 조사위원들과 “인원과 예산을 각각 60명과 130억 원으로 편성하고, 조사 범위와 방향을 정한 뒤 단계적으로 늘려가자”는 여당 측 조사위원들이 맞서 있다. 김 의원은 “내 공직관으로 봤을 때는 기가 막힌 일”이라고 했다.

    ▼ 김 의원의 발언 직후 준비단은 ‘아직 확정된 게 아니고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김 의원이 봤다는 문건이 누가 만든 문건인지를 두고 추측이 무성한데.

    “이석태 위원장이 만든 거다. 문제가 되니 ‘확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표결하겠다며 그렇게 가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 출신이고, (여당 추천 인사를 제외한) 준비단 사람들은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다. 위원회 참여를 전문적으로 하는 이도 많다. 그들을 위해 나랏돈으로 잔치 벌이자는 건가. 국회는 예산집행 통제 감시가 주된 업무다. 이런 조직·예산 편성이 ‘세금도둑’이 아니고 뭔가.”

    ▼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는 건가.

    “예산 내용을 보면 ‘안전사회 전국 콘서트’에 수억 원을 쓰고, 해외전문가초청 세미나, 해외자료 수집도 한다고 한다. 진상을 제대로 밝히는 게 중요하지 세미나에 콘서트에…. 내년 총선 앞두고 전국 순회 콘서트하면서 ‘그날(세월호 참사일)을 잊지 않겠습니다’ 플래카드 내걸고 (정치 공세를) 할 거 아닌가.”

    ▼ 세월호 참사 여파도 크겠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처음 20%대로 떨어졌다.

    “어느 대통령에게도 콘크리트 지지율 같은 건 없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민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조금만 게을러지면 국민은 지지를 거둬들인다.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소신대로 하라는 제도같이 보이지만, 대통령이 정부를 이끈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고통을 수반한다. 중국 역사에서도 황제가 자칫 잘못하면 언제든 민란과 외침이 일어났고, 황제가 자살하거나 포로가 되기도 했다.”

    ▼ 지지율이 하락한 가장 큰 원인은 뭐라고 보나.

    “우리가 정말 못해서 그런지, 잘하고 있는데 몇 가지 장애물 때문에 그런지 돌이켜봐야 한다. 장애물 때문이라면 치우면 되지만 근본적으로 잘못 왔다면 회군(回軍)을 해야 한다. 당장은 (지지율을 반등시킬) 모멘텀이 없기에 지지율이 급반등하진 않을 거다. 인사(人事) 같은 이벤트로는 안 된다.”

    ▼ 그럼 회군해야 하나, 장애물을 치워야 하나.

    “…남겨진 숙제다.”

    黨의 의지, 靑의 존재감

    ▼ 김무성 대표, 유승민 새 원내대표, 조해진 수석부대표 체제가 갖춰졌다. 앞으로 당청 관계가 다소 껄끄러워질 것이란 관측이다.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은 와해된 지 오래다. 당이 청와대와 함께 갈 의지가 있는지, 청와대가 부담스러운 존재인지에 따라 다르다. 청와대를 버리고 가서 여당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 김 의원의 야당 협상 파트너는 어땠나.

    “김영록, 안규백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로 내 협상 파트너였다. 김 의원은 박영선 전 비대위원장이 직접 임명한 사람이 아니어서 박 위원장이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콤플렉스가 있는지 계속 ‘딴죽’을 걸었다. 반면 안규백 의원은 얘기가 통했다. 야당 의원들이 야당 지도부 뜻과 다르게 주장하면, 안 의원은 내게 ‘우리 당 의원들이 하는 말 다 듣지 마라’며 안심시켰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내게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강력히 요구했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내가 안 의원에게 출석을 약속했다. 그만큼 서로 신뢰하는 사이였다.”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와 호흡을 맞췄고, 인사청문회도 도왔는데.

    “안타깝게 생각한다. 특히 일부 기자들과의 오찬 발언이 문제가 됐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런 일이 없도록 사전에 조치했을 건데…. 어찌 됐든 국민이 너그럽게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젠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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