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국민이 여당에 던진 통렬한 성적표
초선 개혁 의지 당이 내리눌러선 안 돼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문제없다. 올린 건 좋다. 하지만…
원내 대표, 당 대표, 대선후보 주류 세력이면 대선 필패
박영선 “20대 역사 등 경험치 낮다” 발언은 실책
간보는 정치보다 가능성 보는 정치로
노동형태 다변화…‘정규직화’ 논의에서 벗어나야
박용진 의원. [조영철]
박 의원은 1971년생으로 올해 49세. 중년의 ‘97세대’ 정치인이지만 유력 대선주자들과 비교하면 열 살가량 어리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무원 활동 경력도 비교적 짧다. 2016년 20대 국회에 입성했고, 지난해 재선의원이 됐다. 그보다 선출직 경력이 짧은 유력 대선주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뿐이다.
그가 대선이라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선 이유는 정치권의 세대교체 때문이다. 박 의원은 “말로만 세대교체를 외치기보다는 직접 도전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도전장을 냈다”고 설명했다.
4·7일 재·보궐선거 이후 본격적 대선후보로서 행보를 준비하고 있던 그에게 사건이 생겼다. 여당이 선거에 참패하며 당내에서 세력교체 논의가 불거진 것. 세대교체를 꿈꾸는 그에게 이 사건은 득일까, 독일까. 4월 13일 박 의원을 국회에서 만났다.
- 재보선 패배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어떤 선거든 지는 이유는 하나다. 당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민심 이반의 변곡점은 어디라고 보나?
“20~30대의 초선의원들이 반성문을 통해 잘 짚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당 내에서 혁신 기구를 마련하겠다’ 정도의 영혼 없는 이야기만 오고갔을 것이다. 용기 있게 잘 짚었다”
초선 입 막아서는 민주당 미래 없다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전용기 등 민주당 소속 20~30대 초선 의원 5명은 4월 9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2030 입장문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입장문이라지만 내용은 반성문이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재보선을 치르게 된 원인이 우리 당 공직자의 성 비위 문제였음에도 당헌·당규를 개정해 후보를 냈다. 분노하셨을 국민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동시에 이들은 재·보궐선거 참패 원인으로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검찰개혁과 내로남불식 여당 인사들의 자산 증식과 이중적 태도를 꼽았다.- 하지만 젊은 의원들은 반성문을 발표한 이후 ‘초선 오적’이라 불리며 일부 당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초선의원들을 힐난하는 사람들은 당원 중 일부일 뿐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의견이 분명하다면 비난이나 공격에 당당히 맞설 용기가 있어야 한다. 초선의원들이 그 용기를 보여준 것에 경의를 표한다. 초선의원들을 비판하는 당원들에게도 자제를 부탁드린다. 초선의원의 의견을 두고 ‘당을 나가라’ ‘입을 닫아라’라고 말하는 것은 당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정권 재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주류 세력의 퇴진을 요구했다. 대안으로 생각한 세력이 있나?
“내가 이야기한 것은 이번 선거 결과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다음 지도부 선거에 나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뻔한 인물과 뻔한 구도는 뻔한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새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존 주류 세력이 한발 뒤로 물러서야 한다. 그렇게 공간이 생기면 자연스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나설 것이라 봤다.”
- 원내대표는 4월 16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은 5월 2일 전당대회에서 선출한다. 새 인물이 나오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나?
“아쉽다. 준비 기간이 며칠뿐이라 이미 원내대표 선거를 준비하던 사람만 나올 수 있었다.”
- 원내대표는 보통 3선 이상 의원들이 출마한다. 초·재선 의원 중에서도 출마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나?
“사실은 재선의원 중 후보를 내보자고 논의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4월 13일 2시까지 후보 등록을 했어야 했는데, 재선의원 모임이 어제였다.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원내 대표 및 당 대표 선거 일정을 정한 것이 11일이다. 이틀간 열심히 내부에서 의견을 나눴지만 후보를 구할 수 없었다.”
여권 일각에서는 원내 대표는 물론 당 대표까지 새 인물을 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당원선거를 실시할 경우 권리당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친문 강경 지지자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 전당대회로 당 대표 선거를 진행하면 민심을 반영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당대회에 참여하는 모든 당원의 투표를 독려하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민주당의 권리당원은 70만~80만 명이고 일반 당원은 200만 명 정도다. 전 당원이 투표에 참여한다면 당심과 민심이 유리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변하지 않으면 대선 패배 명약관화
- 만약 당 대표와 원내 대표에 다시 기존 당내 주류 세력 인사가 앉으면 민주당의 개혁은 어렵다고 보나?“그렇다. 서울과 부산 재보선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총선에서 이겼던 서울은 425개 동 중 5개 동을 제외하고는 전패했다. 부산에서는 표차가 2배 가까이 났다. 패배의 강도가 큰 만큼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당 대표와 원내 대표는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기회인가?
“그렇다. 민주당에는 앞으로 3번의 기회가 있다고 본다. 원내 대표, 당 대표, 대선후보 선출이 기회의 순간이다. 이때마다 새로운 인물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당이 변하고 있다고 인식할 것이다.”
- 원내 대표, 당 대표, 대선후보 모두 당내 주류 세력 내부에서 나온다면?
“국민들이 당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대선 패배는 명약관화다.”
- 대선 같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낙관론도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대선의 바로미터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마음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 변화의 희망은 있다고 보나?
“재보선 패배를 계기로 당내에 더 많은 의견과 토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초선들의 반성문 발표를 계기로 4월 12일 재선의원 반성문이 나왔다. 13일에는 3선의원들도 반성문을 냈다. 내용과 무관하게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는 부분에서 희망이 있다고 본다.”
젊은 세대, 직접 세대교체 나서야
- 여야를 통틀어 아직 세대교체에 성공한 당은 없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젊은 정치인을 육성하는 체계가 없다. 동시에 젊은 정치인들도 세대교체를 하겠다며 용기 있게 나서지 못했다. 세대교체를 하려면 줄탁동시(啐啄同時)가 필요하다. 젊은 정치인과 기존 정치세력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 지난 총선 때도 정치권에서 86세대 교체론이 제기됐지만 성과는 없었다.
“세대교체를 한다고 해서 위에서 알아서 물러나는 경우는 없다. 아래에서 밀고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깃발을 들어야 한다. 대선 출마는 박용진이 앞서 나갈 테니 젊은 세대도 함께하자는 일종의 제안이기도 하다.”
- 대선 도전장이 여당 세대교체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 보나?
“많진 않으나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미미하지만 이렇게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 대선까지 11개월이 남았다. 앞서 당내 경선 통과 등을 생각하면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한 점의 불꽃이 온 들판을 태운다. 불꽃이 일어나기가 어렵지만 당내의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 당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유력 대선주자 지지율을 보면 최근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줄곧 수위를 다투고 있다.
“아직 보여준 것이 없으니 그의 높은 인지도가 지지율로 이어지는 것이라 본다. 대통령선거는 인기투표가 아니다. 그가 대선후보로 나설 생각이라면 빠르게 자신의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대통령선거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정치인으로서의 비전이나 실력을 보여주고 국민들이 이를 검증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전국지표조사(NBS)가 4월 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3.1% 포인트)에 따르면 윤석열 총장의 지지율은 23%. 1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26%)와 오차범위 내의 접전이다.
尹 비롯한 대선주자들, 국민 간봐선 안 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동아DB]
“그게 참 답답하다. 일부 후보들은 ‘국민이 불러준다면’ 정치를 하겠다는 발언을 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4년에 한 번씩 대통령선거를 하는 미국도 통상 선거 2년 전부터 정치인들이 대선 출마를 시사한다. 2년간의 경쟁 기간 동안 국민에게 정치로 자신이 바꿀 사회상을 설명하고 검증을 받는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직접 나서서 국민을 설득할 생각을 해야지, 국민의 부름을 기다린다며 간을 보는 정치인은 대통령선거에 나오지 않는 것이 맞다.”
- 그렇다면 대선후보 박용진은 어떤 사회상을 그리고 있나?
“복지국가를 넘어 ‘행복국가’를 만들고 싶다.”
- ‘행복국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복지국가가 법과 제도를 통해 국민이 살며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국가다. 행복국가는 모든 국민들이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진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국가다.”
- 계층 이동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다. 누구나 10여 년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면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 그렇다면 중산층 진입 방법은 무엇인가. 좋은 일자리를 개발할 계획인가?
“보통 대기업 직장인이나 공무원을 좋은 일자리라고 하는데 이 같은 일자리를 무턱대고 늘리기는 어렵다.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 정규직 논란과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공산이 크다.”
2020년 6월 인국공은 비정규직 2143명을 자사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으나 내·외부에서 공정성 문제가 있다며 큰 반발이 일어났다. 현재 인국공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겠다’며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
- 보도에 따르면 윤 전 총장도 최근 청년 비정규직 문제를 짚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노동의 형태가 너무 다변화돼 있다. 오히려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고쳐 일자리의 형태가 어떻든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편이 낫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국민 대하는 태도
- 중산층이라면 집 한 채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부동산 가격을 보면 젊은 층이 중산층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소득주도성장과 개인의 자산 증대 기회를 늘리면 집을 사는 것은 어려워도 전세는 가능하다. 현재 서울시내 아파트 전세 평균 가격이 5억 원 남짓이다. 신혼부부를 기준으로 10년간 열심히 일하면 5억 원을 모을 수 있도록 돕는 계획을 짜고 있다.”
-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최저임금을 올렸으나 반발이 컸다.
“최저임금을 올린 것은 좋았으나 후속 조치가 서툴렀다. 소상공인이나 한계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받을 충격이 컸는데 이를 관리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다.”
- 최저임금이 과도하게 인상됐다며 이를 낮추라는 주장도 있다.
“국가가 국민의 노동력을 대하는 태도가 최저임금에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을 낮추라는 것은 일종의 국민 비하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은 이미 사회적 합의를 마친 사안이다. 2017년 대선 때는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들이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 공약을 내걸었다. 코로나19와 후속 조치 미흡으로 실패했지만 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 임금 인상만으로는 5억 원을 모으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자산을 키울 수 있는 투자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돈이 없어 부동산 투자가 어렵다면 암호화폐, 주식 등 다양한 분야에 자유롭게 투자해 자산을 증식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야 한다. 소득주도와 자산 성장으로 젊은 층도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젊은 세대 외면하는 정당에 미래는 없다
- 젊은 층에 관심이 많은데 정작 2030대는 재보선에서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세대를 막론하고 젊은 시절에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어떻게 돈을 벌고 생활할지 정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 층은 지금의 이익보다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합당한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면 대가가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 그 확신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 세대만큼의 자산을 쌓을 수 없게 됐다. 그 와중에 권력을 이용해 쉽게 좋은 직장을 갖거나, 정부의 정책으로 큰 노력 없이 좋은 직장을 갖게 되는 사례가 보이기 시작했다. 계층 이동 사다리도 없는 데다가 그 과정이 공정하지도 않으니 젊은 층이 분노한 것이라 본다.”
- 서울시장 선거운동 기간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20대의 경우 과거 역사 등에 대한 경험치가 낮다”고도 발언했다.
“이 발언은 실책이라 생각한다. 86세대도 젊은 시절에는 지금 20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의사를 표현했다. 수단이 다를 뿐이다. 86세대는 시위로, 지금의 20대는 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뿐이다.”
- “20대가 보수화됐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치세력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20대가 보수화됐다는 말은 앞으로도 민주당 및 진보계열 정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젊은 세대가 외면하는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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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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