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수구 보수에 가까운 퇴행” “강자 횡포에는 무관심”

윤평중-김호기, 한국 보수를 말하다

  • 사회·정리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4-08-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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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보수 통치 헤게모니 위기

    • 금융위기 이후 국가 비전 전무

    • 수구 보수 與, 연성 파시즘 野

    • 보수 본래 가치는 통합이거늘…

    • 정치적 상상력 빈곤한 검찰 정권

    • ‘신성 가족’ 법조 엘리트의 행동

    • 오히려 YS, DJ 정치가 그립다

    • 공동체 자유주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Gettyimage]

    [Gettyimage]

    보수가 곧 주류라는 등식은 옛말이다. 민심의 지표인 총선에서 보수는 세 차례(2016, 2020, 2024) 연속 패했다.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권과 수도권의 부촌(富村)에서만 겨우 체면치레했다. 오늘날 국민의힘을 설명하는 낱말은 양남(영남과 강남) 정당이다. 어떤 일이 있건 보수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평균 지지율인 25~30%에 불과하다(한국갤럽 정기 여론조사 기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제는 보수가 자기 울타리만 보수하면 자충수가 된다. 울타리 바깥의 중도에 적극적으로 구애해야 한다. ‘축소하는 보수’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뉴노멀’이다.

    윤평중(68)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와 김호기(64)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를 초대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중도에 터를 잡고 좌우를 조망하는 지식인들의 혜안을 빌리고자 했다. 윤 교수는 정치철학을 전공했다. 흔히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이념의 그물망에 구애하지 않는 지식인이다. 진보 성향 일간지와 보수 성향 일간지에 두루 칼럼을 연재한 이력이 그의 자리를 웅변한다. 김 교수는 정치사회학을 전공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중도진보 성향 사회과학자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애독하는 칼럼의 필자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의 대담은 7월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100여 분간 진행됐다.

    범보수연합과 범진보연합의 현주소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보수를 향해 “자유주의에 민주주의적 요소를 보태고 공화주의적 요소로까지 확장해 가야 한다”고 고언했다. [이상윤 객원기자]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보수를 향해 “자유주의에 민주주의적 요소를 보태고 공화주의적 요소로까지 확장해 가야 한다”고 고언했다. [이상윤 객원기자]

    지역·세대·이념에서 보수가 소수파가 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동의하나.

    윤평중_ “한국 보수 통치 헤게모니의 위기다. 한국 보수 일반이 다수의 시민으로부터 자발적 지지와 동의를 잃어가는 국면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 보수가 총력을 기울여 만든 최대 정치연합 덕에 출범했다. 보수뿐 아니라 많은 중도 시민과 합리적 진보 시민이 윤석열 정부 출범을 가능케 한 최대 정치연합에 참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속 적대와 배제의 정치로 일관했다. 그래서 합리적 진보가 떨어져 나갔고 중도가 지지를 철회했다. 이제는 합리적 보수층조차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전면적으로 철회하는 형국이다.”

    김호기_ “보수는 소수파가 됐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을 아우르는 범보수연합보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을 아우르는 범진보연합의 지지율이 상당한 격차로 앞서고 있다. 여기에는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이 모두 존재한다. 외적 요인은 인구구성의 변화다. 보수를 지지했던 산업화 세대가 7080세대가 됐다. 반면 민주화 세대로 불리는 4050세대가 인구 구성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내적 요인으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들 수 있다. 이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적 질서에서 포스트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변화했는데, 보수가 이 과정에서 국민 다수를 설득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2010년 즈음 진보는 그 나름대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한반도 평화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물론 세 개의 담론이 2024년 시점에서 재검토가 요구되는 것이지만, 보수는 (이에 대응할 만한) 국가 비전을 제시한 적이 없다.”

    윤평중_ “윤석열 정부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이유를 짚으라면 수구 보수에 가까운 퇴행적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 전 대표의 민주당 역시 연성 파시즘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이재명 유일 정당화’하면서 정당 내부에서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보수는 총체적 위기 국면에 있고, 진보도 위기 상황이라는 점은 한국 정치가 전체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의 국제 정세를 나는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이라 표현한다. 강대국 간 패권 경쟁과 유엔(UN)의 유명무실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를 규율해온 보편적인 국제법적 규범과 상식 체계가 붕괴하고 있다. 그것이 드러난 경제적 현상이 금융위기다. 이 과정에서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라 할 신자유주의 체제로 쏠리는 국가가 있고,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가까운 위임 독재로 치닫는 국가들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21세기 그레이트게임’이 한국 정치의 전반적 퇴행이라는 현상과도 알게 모르게 맞물려 있다.”

    김호기_ “보수의 위기인 동시에 정치의 위기다. 정치의 위기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관찰되고 있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 다수가 가진 정치경제적 의사를 대의하고 대변하며 대표하는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대표성의 위기가 불거지면서 트럼프주의와 같은 각종 포퓰리즘이 분출하고 있다. 포퓰리즘 정치는 반다원주의 정치다. 적과 동지를 나누고 상대방을 악마화한다. 민주주의 고유의 가치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공존과 타협인데, 이 모두를 거부해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직면해 있고 우리 인류가 시험대 위에 올라선 형국이다.”

    ‘로크의 단서’와 협소한 자유민주주의론

    2000년대만 하더라도 보수 내에서 ‘공동체 자유주의’ 같은 담론이 등장했다. 오늘날 보수는 세력뿐 아니라 독자적 담론을 만들어가는 힘도 잃어버린 거 같다.

    김호기_ “한국 보수의 1.0을 굳이 이름 붙이자면 박정희주의다.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보해도 좋다는 것이 박정희주의의 핵심이다. 고(故) 박세일 교수가 2006년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에서 내놓은 공동체 자유주의는 보수 2.0이다. 나는 진보 성향의 사회과학자이지만 공동체 자유주의를 높이 평가한다. 본래 서구 보수의 핵심 가치는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동체와 통합을 중시했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보수 정치가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만든 유명한 개념이 ‘투 네이션스(two nations)’다. 부자의 영국과 빈자의 영국 둘로 나뉘어 있으니 이를 한 국민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약자 보호는 보수의 매우 중요한 가치다. 21세기의 대표적 보수 정치가로 손꼽히는 사람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다. 메르켈이 추구한 것도 통합의 정치다. 당시 메르켈 정부는 유럽의 어떤 정부보다 난민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 정책을 취했다. 박세일 교수의 공동체 자유주의는 보수 본래의 가치인 공동체성의 강화에 자유주의를 결합하려는 시도였다. 문제는 보수 2.0 이후 등장한 보수 정부인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가 공동체 자유주의와 거리가 대단히 멀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강자의 횡포에 무관심한 정책 기조를 보였다. 공동체 자유주의가 내건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한국 보수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본다.”

    윤평중_ “과거 이명박 정부는 공정사회를 내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진보의 의제인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집권할 수 있었다. 한국 사회는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경제 정책과 복지를 대대적으로 확장해야 하는 국면에 놓여 있다. 이것이 시대정신에 가까웠기 때문에 진보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조차 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윤 대통령이 자유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사용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유민주주의 진화의 역사에서 볼 때 굉장히 협소한 시각을 가졌다는 점이 발견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개혁 자유주의의 방식으로 진화한 산물이다. 자유주의의 비조로 꼽히는 존 로크도 시장 절대주의나 사유재산권을 신성시하는 태도로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다수의 사람을 위해 충분하고도 양질의 자산을 남겨놓는 한에서만 우리의 사익 추구와 재산 축적이 정당하다고 했다. 이것이 ‘로크의 단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우리가 재산을 축적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이유는 다수 인민의 복지를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한국의 기득권 보수 진영에는 이와 같은 인식이 척박하다. 그 생생한 실례가 윤석열 정부다. 한쪽에서는 자유지상주의에 가까운 자유를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제를 혼용한다.”

    검찰 주도 尹 정부, ‘법 위에 있는 것 같은’ 李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수가 지난 총선에서 배워야 한다”면서 “중도무당층에 정치적 신호를 타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윤 객원기자]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수가 지난 총선에서 배워야 한다”면서 “중도무당층에 정치적 신호를 타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윤 객원기자]

    윤석열 정부의 이너서클 핵심은 검찰로 보인다. 검찰이 조력자인 보수 정부는 있었으나, 검찰이 주도하는 보수 정부는 처음이다.

    김호기_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정치의 빈곤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 많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 고유의 영역이 존재한다. 검찰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정치적 상상력이 정말 빈곤한 것 같다. 또 검찰 조직의 본래 속성은 다분히 위계적이고 권위적이다. 21세기 정보사회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경향과 양립하기 어렵다.”

    윤평중_ “윤석열 정부를 검찰 정권이라 부르는 데 동의한다. 87년 체제 성립 이후 역대 정부는 진보건 보수건 검찰을 정권의 칼로 사용했다. 그러나 검찰이 정권의 핵심 손과 발이었지, 핵심 자체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초유의 사태다. 윤석열 정부에서 법치를 많이 거론한다. 그런데 법치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법의 지배’이고, 다른 하나는 ‘법에 의한 지배’다. 검찰이나 법원 판사 출신의 법 전문가들을 비판적으로 보면 법 기술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법치의 진정한 정신에 충실하기보다 법을 강권 통치나 권위주의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법조 엘리트들이 일종의 신성 가족으로서 법치 위에 스스로를 놓으면서 ‘법의 지배’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이런 패턴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보수에서만 그러느냐.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법조인 출신이다. 비록 아직 1심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범죄 혐의자이지만, 일반 국민은 물론 보통의 정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법 위에 있는 것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김호기_ “민주화 시대가 열린 지 40년에 가까워지는데, 전반기와 후반기 사이에 리더십의 차이가 관찰된다. 전반기를 대표한 정치가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정치적 훈련을 많이 받았다. 정치인들이 국가를 운영했다. 이후에는 비(非)정치인 출신 리더들이 나라를 이끌었다. 이것이 리더십의 빈곤으로 귀결됐다. 정치적 해법을 마련할 때는 사회통합을 중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과 반대되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민주화 후반기를 보면 대화와 타협이 실종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도 토대는 다르지만 법률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호기_ “진보적 인권변호사와 보수적 검찰이 나라를 연이어 맡고 있는데, 법률가들은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다. 윤 대통령의 경우 소통의 역량이 대단히 취약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이라 그런지 혹은 민주화운동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근거한 시각을 내보였다. 적폐청산은 적정 시기까지 하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갔어야 했는데, 적폐청산의 시기가 너무 길어졌다. 미국에서도 변호사들이 대통령 되는 경우는 많지만 상당한 정치적 훈련 기간을 거친다.”

    윤평중_ “덧붙이고 싶은 말은 유권자에게도 일종의 ‘새 것 콤플렉스’가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정치적 새 인물을 너무 좋아한다. 난맥상이 켜켜이 쌓인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정치적 구세주를 기대하는 마음이 다분하다. 구세주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단칼에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경향도 이제는 절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김호기_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과거 YS(김영삼 전 대통령), DJ(김대중 전 대통령)식 정치가 그립다. YS 정부만 해도 국민적 반응성이 대단히 높았다. DJ 정부는 김중권 대통령비서실장 등 다른 보수 인사들을 적극 기용했다. 정치가 무엇인지 아는 대통령들이었는데, 21세기 들어와서 그런 리더가 드물어진 것 같다.”

    이준석式 정치의 빛과 그늘

    내공 있는 철학과 진취적 상인의 감각을 두루 갖춘 보수 정치인이 눈에 보이나.

    윤평중_ “정치인에게는 4력이 필요하다. 실력, 매력, 지력 그리고 미래력이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에 근접한 드문 정치인이다. 탄핵 문제를 들어 유 전 의원을 ‘배신의 아이콘’이라 비판하는데,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성 보수의 입장에서는 원죄를 저지른 셈이라 대중정치인으로서 처지가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다. 국민의힘이 수구 보수에 가까운 행태를 혁파하지 못하고 계속 지리멸렬하면 합리적 보수를 요구하는 정치적 공간이 열릴 수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우 총선 당시 시행착오를 겪었고,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한동훈이라는 상징 자산이 없었다면 국민의힘은 개헌선을 돌파당했을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의 당대표 출마 선언문을 유심히 봤다. 미흡하지만 정치적 학습 능력은 있더라. ‘채 상병 특검’에 관해서는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놨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 유일하게 정치 팬덤을 갖고 있는데, 조리 정연한 말솜씨에 강남 우파라고 할 만한 이미지 덕에 참신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미지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내용을 채우는 과제가 남았다.”

    김호기_ “보수 영역에서 리더가 되려면 최소한의 국민적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5명 정도 아닐까 싶다. 한동훈 전 위원장,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의원이다. 국민이 알고 싶은 건 5명의 정치인이 꿈꾸는 대한민국, 일종의 시대정신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선진일류국가라는 비전을 내놨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집권 뒤에는 기조가 달라졌지만 선거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제시했다. 성과를 들자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청계천이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하에서 세종시 이전을 둘러싸고 현직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다른 하나는 비전이다. 2022년 대선은 독특한 대선이었다. 당시 윤석열 후보가 제대로 된 비전을 내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 열망이 커서 선택받았다. 그런 예외적 경우는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대단히 낮다.”

    이준석 의원과 개혁신당이 개혁보수 세력으로 ‘보수의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김호기_ “이준석 의원은 한국 보수에 매우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겉으로 드러난 정책 방향이나 기조를 보면 중도보수에 가까워 보인다. 한국 민주주의에 만연한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부터도 많이 벗어나 있는 것 같다. 필요할 때는 보수 진영도 가감 없이 비판한다. 이런 점은 장점인데,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안티 페미니즘’이다. 안티 페미니즘을 통해 2030 남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지만, 더 의미 있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를 넘어서야 한다.”

    윤평중_ “영어식 표현이지만, 이준석 의원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충분치 않을 정도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다만 이 의원은 선정적 방식으로 사회적 의제에 대한 화제성을 부각하며 지지층을 동원해 왔다. 그래서 김 교수께서 안티 페미니즘을 말씀하셨는데, 장애인 문제에 대한 행보도 언급하고 싶다. 아무도 공론장에서 언급하지 않은 의제를 거론했다는 의미가 있고, 일부 청년 남성층 사이에서 호소력은 갖지만, 보편적 소구력을 갖기는 어려운 의제다. 보편적 소구력을 갖는 의제를 발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정치인 이준석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일각에서 이 의원을 두고 건방지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준석에 의해 정치계의 고루한 관행이나 연공 서열주의가 깨지는 효과도 있다.”



    청년이 진입할 수 있는 공간

    마지막으로 한국 보수에 고언을 건넨다면.

    김호기_ “보수는 지난 총선에서 배워야 한다. 선거의 성패를 최종 결정하는 건 중도무당층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중도무당층에서 진 것이다. 보수가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중도무당층에 정치적 신호를 타전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두 가지다. 시대정신과 국가 비전 제시에 보수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아무리 정치 양극화 시대라 해도 중도무당층을 겨냥한 섬세한 정치적 전략이 있어야 한다.”

    윤평중_ “자유주의에 민주주의적 요소를 보태고 공화주의적 요소로까지 확장해 가야 한다. 그러려면 열려 있어야 하고 유연해져야 하며, 실용적이야 한다. 이를 위해 미래지향적이고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데, 보수세력 내지 보수를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청년 정치에 대해 좀 더 진지한 관심을 갖고 후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이 정치에 제도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김세연 전 의원이 주축이 돼 만든 청년정치학교에서 해마다 강의한다. 보수와 진보 등 다양한 생각을 가진 청년이 함께한다. 1시간을 강의하면 2시간을 토론한다. 이런 경험을 하면 우리의 미래는 청년들에게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점이 오늘날 보수 진영에 가장 부족한 대목이다.”

    김호기_ “진보 쪽에는 김성식 전 의원이 이끄는 ‘반전’이 있다. 김세연 전 의원이나 김성식 전 의원 모두 괜찮은 의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현실 정치에서는 뚜렷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청년 정치에 대한 청사진을 갖춘 인물들이 현실 정치에서 밀려난 것이 한국 정치의 비극일 수 있겠다. 긴 시간 고생 많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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