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중단된 신포 경수로 현장에선 남한 직원이 김정일의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을 무심코 깔고 앉았다는 이유로 공사가 중단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이 남한 사람에게 이럴 정도면 과연 자국민은 얼마나 혹독하게 통제하며 노예화하고 있을지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통일연대는 ‘북한에 인권 문제는 없다’는 자세로 일관해왔다. 통일연대는 이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제출을 EU가 주도했음에도 “미국, 영국, 일본이 유엔 총회 상정을 주도하고 있다”며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미국의 음모로 몰아가는 형국이다.
‘미군 강점 60년 청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 대남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 이름을 바꾼 반제민족민주전선(반민전) 기관지 ‘구국전선’ 신년사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를 강조했다. 그런데 친북운동단체들이 올해 반미운동의 일환으로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강정구 교수는 모 인터넷사이트에 이를 옹호하는 내용의 칼럼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를 써서 파문이 일었다.
통일연대도 지난 8·15를 전후해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8·15 광복과 더불어 미군은 원초적으로 우리에게 불행을 강요했고, 그 대표적인 상징물이 바로 맥아더 동상이라는 역사인식에 따른 결과다. 근래 반미정서가 높아졌음에도 일반 국민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시도이며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좌경모험주의’에 가깝다.
북한의 경제 파탄과 극도의 정치 통제가 널리 알려진 지금, 6·25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미군의 개입이 역사의 불행이었다고 하는 주장이 공감을 얻을 리 없다. 맥아더 동상철거운동을 벌이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충격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 통일연대의 활동방향은 이 연대기구의 핵심단체인 전국연합이 지난 8월 중앙위원회에서 결의한 내용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결의내용 중 일부다.
‘치욕의 미군 강점 60년을 더는 연장할 수 없다는 민족적 결의로 9·11 미군 강점 60년 청산을 위한 인천투쟁(맥아더 동상철거)에 총력 결집할 것을 특별히 결의한다. 우리는 5·15 광주투쟁, 7·10 평택투쟁, 8·15대회를 거치며 승리해온 반미자주화투쟁이 9·11 인천투쟁에서 더욱 상승 발전해 11월 부산 아펙투쟁과 12월 2차 평택투쟁으로 폭발하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다.’
이후 통일연대는 9월11일 인천에서 벌어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집회를 앞두고 ‘맥아더는 주한미군의 본질을 드러내는 가장 훌륭한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한총련 등과 함께 집회에 참여해 동상 철거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친북운동권인 전국연합, 범민련, 한총련이 북한 인권 논의를 원천봉쇄하고 미군철수와 한미군사동맹 해체를 목표로 한 반미운동을 벌이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통일연대는 이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민변이나 노동계가 참여한 연대기구다. 그런데도 통일연대가 사실상 전국연합과 그 궤를 같이하는 외곽 투쟁기구 노릇을 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동안 북한과 거리를 두던 노동계와 시민운동 단체들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세(大勢)를 의식해 친북운동에 적극 가담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단체가 민노총과 민노당이다.
이런 흐름은 주사파 최대의 지하조직 ‘민족민주혁명당’이 수사기관에 의해 그 존재가 밝혀지자, 그중 일부 세력이 조직적으로 민노당에 가입하면서 나타난 변화로 보인다. 지난 2월 민노당 중앙위원회는 북한 핵무기 보유선언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밝히려는 결의를 시도하다 실패한 바 있다. 민노당 내부에 주사파 계열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최근 10·26 재보궐선거 패배로 인한 지도부 교체 이후 친북편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기존의 전국연합, 한총련 등에 국한됐던 반미친북 운동에 노동계와 시민운동 단체가 가세하면서 그 세가 커졌고, 그것이 통일연대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것이다. 이후 반미친북 활동의 대부분이 통일연대의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통일연대의 실질적 활동은 전국연합과 범민련 회원들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4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지만 대부분 이름만 걸고 있을 뿐, 전국연합과 범민련측에서 집행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통상 연대기구는 초기에 여러 단체가 모이지만 집행부를 주도하는 단체나 인사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통일연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자신이 가입한 연대기구가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나 행동을 하면 문제 제기를 하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탈퇴하는 게 상식이지만, ‘의견차이’니 ‘분열’이니 하는 구설이 꺼림칙해 대충 넘어가는 것이 어느샌가 습관처럼 돼버렸다. 진보단체들이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성과 전횡을 오랜 기간 온정주의로 대하면서 비판능력을 상실하고, 이런 치부를 건드리는 것을 오히려 내부의 단합을 해치는 이적행위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무슨 사안이 터지면 마치 자판기에서 커피가 나오듯이 연대투쟁기구들이 만들어지고, 이 기구는 참여한 단체들의 공유된 의사를 대변하기보다는 소수 주도세력의 기획대로 선명성만 추구하는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친북운동권은 이런 담합 분위기를 악용해 폭넓은 연대기구를 만들어 세(勢)를 과시하면서 자신들의 뜻대로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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