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 강국’의 허상
홍 사장이 경영하는 데브피아는 1994년 ‘비주얼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는 개발자 50명이 결성한 모임으로 출발했다. 소문을 듣고 개발인력이 모여들면서 2000년 7만명, 최근엔 30만명이 활동하는 국내 최대 개발자 모임으로 발돋움했다. 이들은 개발자의 노하우를 공개하고 나눠 써야 국내 정보통신(IT) 기술이 향상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들이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는 막대한 양이며, 국내외 개발자들에게 1만여 종의 컴포넌트(개발자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개발자 동호회로 출발한 데브피아는 2000년 ‘덱스트 업로드(DEXTUpload)’라는 프로그램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는 웹사이트에 접속한 사람이 사진 이미지나 영상 등 파일을 사이트에 손쉽게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이트 관리자가 아닌 외부 접속자가 파일을 올리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버에 접속해서 ‘쓰기’ 권리를 부여받고 지정된 경로를 찾아가 파일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덱스트 업로드를 설치하면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 사이트 보안을 유지하면서 자유로운 사용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개인이나 업체, 정부기관은 대부분 이 같은 제품을 이용한다. 홍 사장에 따르면 미국 제품 두 종류와 데브피아의 제품이 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회사가 개발자의 모임에서 출발했고, 이들이 데브피아 제품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개발해왔기 때문에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점유율 확장이 곧 회사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데브피아의 사례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불법복제 때문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중에 돈을 버는 회사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늘 ‘IT 강국’이라고 떠들지만 실제 ‘IT 강국’을 주도하는 업체들의 가슴앓이를 외면한 탓에 속으로 곪고 있는 실정이다. 홍 사장은 불법복제 리스트를 공개하면 업계에서 따돌림을 당할 수 있고 기존 고객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기자의 우려에 “한 회사의 미래보다는 정부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해서 수많은 업체를 살리는 대책을 내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일반인에겐 ‘덱스트 업로드’라는 프로그램이 생소한데요.
“웹사이트에 접속한 이용자나 사용자가 서버에 파일을 올리거나 내려받을 때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예요. 웹사이트가 있는 곳이라면 꼭 필요합니다.”
6000개 팔면 6만번 불법복제
-국내에 경쟁업체가 있습니까.
“두세 곳 있지만 상용 제품을 내놓지 않아 국내 업체로는 우리가 유일합니다. 두 종류의 미국 제품이 들어와 있는데,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보니 우리가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먼저 출발한 외국 제품을 제친 비결은 뭡니까.
“데브피아라는 개발자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어서 개발자들이 우리 제품을 쓰는 데 익숙합니다. 이들이 우리 소프트웨어를 쓰고 전파하다 보니 시장점유율이 높아졌어요. 이 프로그램으로 웹 서비스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계속 우리 제품을 쓰는 것이겠죠. 미국 제품과 성능을 비교해보면 우리 것이 처리 속도도 빠르고 에러 발생률도 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