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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요리솜씨

패션모델 도신우의 오징어부추잡채

평범함 속에 감춰진 맛의 아름다움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패션모델 도신우의 오징어부추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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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모델 도신우의 오징어부추잡채

모델교육을 시키고 있는 도신우씨. 그는 키 178~180cm, 몸무게 52~54kg의 동양적인 미인이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먼저 오징어부추잡채의 주재료인 오징어 껍질을 벗겨낸 후 머리부위를 떼어내고 3~4cm 길이로 썬다. 오징어 다리도 하나씩 떼어내 비슷한 크기로 썬다. 다음은 야채 및 버섯 썰기. 부추는 3~4cm, 대파는 1~2cm 정도로 잘게, 양파와 죽순, 표고버섯, 팽이버섯, 피망(청·홍)은 얇게 썬다.

가장 중요한 소스는 다진 생강과 다진 마늘, 설탕, 소금, 다시마 가루, 참기름, 간장, 굴소스, 두반장, 정종 등을 적당량 섞어 잘 저어 만든다. 생굴을 발효시켜 만든 굴소스에 중국 된장과 고추장을 혼합해 만든 두반장은 중국요리에 꼭 들어가는 재료다. 재료들이 모두 준비되면 오징어와 죽순, 버섯을 먼저 물에 살짝 데친 다음 프라이팬에 기름을 약간 두르고 나머지 야채와 함께 넣은 뒤 소스를 뿌려 잘 섞으면서 볶는다.

도씨가 처음 만든 요리 맛은 어떨까. 도씨 자신은 물론 옆에서 지켜본 후배 모델들도 영 못미더운 눈치다. 하지만 맛을 본 후에는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매콤한 소스에 오징어의 졸깃졸깃하고 담백한 맛과 사각사각 씹히는 부추의 신선한 맛이 어우러져 일품이었던 것.

서울토박이인 도씨의 어릴 적 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선조 때부터 의사나 약재상이 많았던 집안 내력의 영향이 컸다. 비평준화 시절 서울 3대 명문고 중 하나였던 경복고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대학입시에서 의대에 지망했으나 낙방한 후 “고리타분한 의사보다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어떻겠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로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대학시절 도씨는 태현실, 고은아, 황정순씨 등 당대 스타들이 즐비한 극단 ‘신협’에서 이런저런 단역을 맡으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는 듯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무렵 친구의 소개로 ‘왕실모델클럽’ 창단멤버로 합류하면서 인생행로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 수입도 짭짤했다. 맞춤복 패션쇼에 한 번 참가하면 모델료 3만원에 정장 한 벌과 구두 한 켤레가 공짜로 생겼다. 대기업 대졸초임이 월 1만5000~6000원이던 시절이니 상당한 수입이었다. 1973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주문복대회는 모델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 대회에 국내 대표모델로 출전한 도씨는 ‘월드베스트 10’에 뽑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비로소 직업모델의 자부심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대회에서 만난 외국 모델들이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경제적 부를 누리고 있는 게 부러웠다. 해외에서 접한 패션쇼는 하나의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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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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