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이명박 테니스’ 유일 목격자, 이윤훈 남산테니스장 관리인

“독점사용 요청 있었지만, 황제 테니스는 없었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04-27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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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서울시장의 테니스 관련 논란은 엄청난 파장을 불렀다. 그러나 뭔가가 빠져 있다. 바로 이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당사자로 알려진 이윤훈(李潤薰) 한국 체육진흥회 전무의 얘기가 한 번도 나온 적 없기 때문이다. 이 전무를 단독 인터뷰했다.
    이른바 ‘황제 테니스’ 논란이 일자 이명박 서울시장은 사과했다. 열린우리당은 이 시장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결론이 나올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한다.

    그런데 “이 시장이 주말과 휴일 테니스장을 독점 사용할 수 있도록”이라는 표현은 서울시 남산 실내테니스장을 관리·운영한 한국체육진흥회 이윤훈 전무가 서울시테니스회에 보낸 내용증명 공문에서 처음 등장한다. 언론은 이 공문을 인용하면서 황제 테니스 논란을 보도하게 된 것이다.

    이 전무는 이 시장이 남산 실내테니스장을 드나든 기간에 테니스장 관리와 운영을 맡은 유일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이 시장이 테니스를 치는 장면을 계속 지켜본 목격자이므로 당시의 구체적 정황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최근 이 전무를 만났다. 그간 언론을 기피하던 그는 ‘신동아’의 인터뷰 제의에 응했다. 일전에 인연이 있었던 그에게 역으로 조건을 붙였다. ‘체육진흥회 관계자’라는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하겠다면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수용했다. 대신 “사진촬영은 안 된다”고 했다. 에둘러 갈 것 없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는 참았던 말이 많았던 것 같았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길게 얘기했다.

    “원하는 시간에 치지도 못했는데…”



    -이 사건은 ‘황제 테니스 논란’으로 불린다. 작명(作名)이 제대로 됐나.

    “‘이명박 시장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주말과 휴일 코트를 모두 비워 두게 했고, 이 시장이 그 코트를 독점 사용했기 때문에 황제 테니스’라고 하더라. 그러나 이명박 시장은 ‘황제 테니스’를 치지 않았다. 우선 이 시장이 주말과 휴일에 코트를 독점 사용했다는 건 사실왜곡이다.

    이 시장은 코트를 독점하지 않았다. 토요일 오전과 일요일 오전은 다른 팀이 썼다. 이 시장은 이 때문에 매우 불편해 하곤 했다. 이 시장은 매주 일요일 오전 교회에 간다. 예배가 끝난 뒤 곧장 남산 실내테니스장에 오면 11시30분쯤 된다. 이때부터 이 시장은 여러 사람과 함께 돌아가며 복식으로 시합도 하고 코트에서 설렁탕 등 도시락으로 점심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3~4시간 운동한 뒤 테니스장을 나서면 일요일 오후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다른 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요일 오전과 오후 일부 시간대는 다른 팀이 장기계약으로 코트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 팀 때문에 이 시장은 예배가 끝나고 나서 곧바로 테니스를 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았다.

    계약기간이 끝나자 일요일 오전 팀은 내게 계약연장을 해달라고 했다. 내가 이명박 시장의 사정을 얘기하며 ‘서울시테니스협회에 양보 좀 해주면 안 되겠나’라고 했다. 그러나 이 팀의 한 사람은 ‘우리도 이 시간대가 가장 편하다’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이 팀이 계속 같은 시간대를 이용하게 됐다. 이렇게 불편하게 이용했는데 이 시장이 무슨 황제 테니스를 쳤다는 건가.”

    -토요일 오후, 일요일 오후는 이 시장팀이 독점한 게 맞지 않나.

    “그것은 맞다. 그러나 일반 동호인팀도 이 테니스장에서는 다 독점으로 사용한다. 이 테니스장은 코트가 한 개뿐이고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아 사전예약 없이 와서 바로 운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동호인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도 여러 시간 단위로 계약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배타적, 독점적으로 사용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이용자 별로 없던 곳”

    -그러나 이 시장팀이 토요일 오후, 일요일 오후를 독점함으로써 다른 서울시민이 같은 시간대 이 테니스장을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

    “일요일 오전이 가장 수요가 많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후도 좋은 시간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장팀이 그 시간대를 이용한다고 해서 시민의 불편 민원이 테니스장에 접수된 적은 없었다. 서울시 간부가 ‘남산 실내 테니스장 이용시간 문제로 시민 민원이 더러 있었다’는 취지로 언론에 얘기한 걸 나도 안다. 뭘 모르고 한 말이거나 다른 내용의 민원이었을 것이다. 서울시 산하인 남산공원관리사무소와 우리는 위탁 계약 문제로 소송을 벌였던 사이다.

    남산 실내테니스장의 코트 이용료는 시간당 4만원인데 4인 복식조가 나눠서 내면 한 사람당 부담금은 크지 않다. 남산 중턱에 있고, 지하철이나 버스는 물론 택시 잡기도 어렵다. 부근에 주택가도 많지 않다. 위치가 나쁘고 접근성이 좋지 않아 원래 이용자가 많지 않던 곳이다. 실내 테니스장이라는 이유로 ‘귀족 스포츠를 누렸다’고 비판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이명박 시장측은 수년간의 남산 실내 테니스장 사용료 600만원을 지난해 12월27일 이모 서울시테니스회 부회장을 통해 이윤훈 전무에게 줬다고 밝혔다.

    -이명박 시장이 600만원을 내놓은 것은 공짜 테니스를 인정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나.

    “테니스장 사용료 계약 당사자는 체육진흥회와 서울시테니스회측이다. 이 시장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었고 테니스회 측의 초청을 받아 테니스를 한 것이었으니 사용료를 낼 의무는 없었다. 아무리 초청 형식이어도 시장이 수년 동안 테니스장을 무료로 이용한 것은 도의적으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시장이 테니스를 할 때 테니스 비용을 냈는지 안냈는지 확인해 가면서 쳤겠나.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그게 이 시장이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아야 할 정도로 대단한 윤리적, 법적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체육진흥회는 서울시로부터 남산 실내테니스장을 임대해 운영해왔다. 그러나 서울시테니스회팀이 테니스장 사용료를 제대로 내지 않는 데다 서울시가 한국체육진흥회에 계약해지를 통보하자 이 전무는 지난해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무는 ‘황제 테니스 폭풍’을 몰고온 ‘이 시장이 주말과 휴일 테니스장을 독점 사용할 수 있도록…’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내용증명 공문을 서울시테니스회에 보낸 것이다. “이 시장이 주말과 휴일 테니스장을 독점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왜 그런 내용의 공문을 보냈느냐”는 질문에 이 전무는 이렇게 답했다.

    “서울시테니스회측이 우리에게 ‘이 시장이 주말과 휴일 테니스장을 독점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사실이다. 그 점을 내용증명으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주말과 휴일시간대를 모두 독점 사용하지는 않았다. 공문과 사실 사이에 모순이 없다.”

    “기자회견 주선할 수도”

    -서울시와의 소송은 어떻게 진행됐나.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선 이명박 시장을 소송에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내 변호사가 남산실내테니스장 문제와 관련된 소송에서 법원에 낸 이의신청서에 이명박 시장을 거론했다. 부득이한 경우 이 시장을 증인으로 부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지 않았다. 이러면 언론의 관심을 받을 것이고 이 시장이 테니스 문제로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나는 이 시장 문제를 거론하지 말기를 변호사에게 부탁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소송에서 이기기는 싫었다.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행정권의 오용사례에 대한 소송이었으며 이 시장은 소송의 대상이 된 계약과는 무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황제 테니스 논란이 불거졌을 때 당사자이면서 언론의 취재요구에 잘 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엔 제3자적 입장에서 관망하는 처지였다. 열린우리당측이 황제 테니스 진상조사단을 꾸린 뒤 진상을 조사하던 중 ‘황제 테니스에 대해 가장 잘 알 테니 기자회견을 원하면 주선할 수도 있다’고 내게 말했다. 내가 ‘기자회견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황제 테니스 아니다. 누구나 코트를 배타적으로 독점한다’며 아는 것들을 얘기했더니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전직 테니스선수인 보험설계사 안모씨가 지난해 12월20일 테니스장 사용료 2000만원을 대신 냈고, 이명박 시장도 일주일 뒤 사용료 600만원을 줬다. 그 돈을 모두 직접 받았나.

    “2000만원은 안씨로부터 직접 받았다. 어떤 사람과 같이 왔더라. 600만원도 내가 직접 받았다. 돈을 받을 때 이모 서울시테니스회 부회장이 시청에 있는 우리은행에서 찾아가지고 왔다고 했다.”

    황제 테니스 논란이 발생한 후 이 전무는 “당신이 이명박 시장 테니스 문제를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안씨가 당신에게 2000만원을 줬다는 식으로 기자들에게 설명하려 한다. 동의해 줄 수 있겠냐”는 서울시테니스협회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 전무는 “내가 언제 협박했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 시장 주변 일부 인사의 경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왜 그러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왜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거짓으로 해명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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