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요직에서 한직으로, 보안과 형사들의 한숨

“간첩?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거요”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입력2006-05-16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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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탄압의 상징이던 ‘남영동 대공분실’ 폐지와 보안수사기구 대폭 축소.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이 이는 남북한 화해 분위기에서 한국의 보안경찰이 설 땅을 잃고 있다. 급격히 감소한 간첩검거 실적. 그들은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제는 경찰 내 대표적 한직으로 전락한 보안과 형사들의 애국적인 넋두리.
    요직에서 한직으로, 보안과 형사들의 한숨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현재는 경찰인권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보안과를 없애자고 한답니다. 놀고 먹는 부서로 취급해요. 보안과 형사 수십명이 매달려서 국가보안법 위반자 딱 한 명을 잡았다는데, 참 기막힌 계산입니다. 우리가 운동권 뒤만 쫓고 삽니까? 북한이 ‘혁명을 저해하는 반혁명역량(국군, 경찰 보안과, 국가보안법)을 제거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는데 누구 좋으라고 보안과를 없앱니까. 내일 통일이 된다고 해도 오늘 자정까지 일해야 하는 게 보안형사 아닌가요? 통일이 됐다고 해도 국가 안보 위해(危害) 세력은 파악해야 할 것 아닙니까.”

    20년차 베테랑 보안형사 A씨의 탄식이 시작됐다. 그는 한국 보안경찰의 현주소를 취재하겠다고 찾아온 기자에게 대뜸 “113수사본부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마치 사상검열을 위한 키워드를 묻는 것처럼. 기자가 113수사본부를 그저 드라마 제목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권’ ‘고문’ 등의 얘기를 꺼냈다면 형사의 입은 굳게 닫혔을 것이다.

    최근 경찰의 보안수사대를 없애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남북 화해·협력이 확대되고 있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체제안보를 위해 보안경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러한 의견 대립은 지난해 9월, 민노당 이영순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행자위 국정감사에서 공개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보안경찰관 수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의원의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보안형사 수가 전체 경찰공무원의 2.9%인 2772명인데, 한 해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입건된 사람이 51명(구속자는 37명)밖에 안 되니 국가보안법 위반자 한 명을 입건하기 위해 보안형사 52명이 투입된 꼴이다.”(2004년 경찰청이 이영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최근 23년간 경찰의 보안사범 검거실적은 보잘것없다.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으로 입건된 사람이 1995년에는 286명이었는데 10년이 흐른 지난해엔 8명에 지나지 않았다. 경찰 1인당 한 달 평균 사건처리건수를 비교하면 보안과 경찰관들은 거의 놀고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조사계가 20.4건, 강력반이 6.5건인 데 비해 보안과는 0.002건이다.

    반면 보안수사에 쓰이는 한 해 예산은 약 86억원이다. 단순히 예산 대비 보안사범 검거실적만으로 보면 보안과의 존재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라고 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보안혁신=인원축소’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겁니다. (보안경찰이) 요즘은 학원수사를 거의 하지 않아요. 6·15 공동선언 이후에 ‘위’에서 서로 친구가 됐잖아요. 정치 지향이 바뀌다 보니까 간첩이란 용어가 이상해졌어요. 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분위기잖아요. 검찰에서도 지휘를 안 하다시피 해요. 없어서 못 잡는 게 아니라 잡을 수 있는 실정법이 있어도 이 법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안 잡는 겁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세상이 달라졌다. 남북간의 경제·사회·문화 교류는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해 금강산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했고, 하루 평균 1000명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남북한 교역량이 2004년 6억9000만달러에 이르러 남한은 중국에 이어 북한의 제2교역국이 됐다. 또한 남측의 기술과 자본,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합쳐진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들은 해외 전시회에서 바이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대학가 여기저기에선 통일을 준비하는 모임이 생겨났다. 통일을 준비하는 대학생연합, 흥사단 통일국토대장정, 통일서포터즈 모임이 바로 그것이다.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이들은 인터넷 카페나 클럽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있다.

    “남북한 화해협력 분위기…, 다 압니다. 하지만 보안형사들까지 이런 분위기에 휩쓸릴 수는 없잖아요. 요즘 세상에 우리가 대학생이 데모한다고 마구잡이로 조사하겠습니까? 아무나 잡아들이는 게 아니잖아요. 좌익운동권이면서 반국가행위가 명확해야 합니다. 왜 운동권을 좌익으로 보냐고요? 그들의 조직강령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非)주사계열(ML파)인데도 조직강령에 ‘우리 혁명에 있어 북의 민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형제적 지원과 연대는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한 필수적 관건이다(‘불꽃’ 창간호)’라고 적혀 있습니다. ‘통일’과 ‘민주화’ ‘노동해방’을 명분으로 삼은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요즘은 운동권의 축이 학원에서 노동계로 넘어갔어요. 이제 진짜 무서운 곳은 노동계입니다.”

    노동현장을 끼고 있는 지방 일선서 보안과 형사 K씨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현실을 털어놓았다.

    “예전처럼 동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요. 형사가 부족해요. ‘보안혁신’이 곧 ‘인원축소’입니다. 요즘 2급지 경찰서에는 보안과가 아예 없어졌어요. 정보보안과로 통합됐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민생치안을 강화한다며 보안수사요원 중에서 인원을 빼 갔어요. 보안수사대(구 대공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남지역 어느 보안수사대엔 운전수하고 대장, 과장만 있는 곳도 있어요. 노동계를 움직이는 세력을 파악할 형사가 없는 거죠.”

    운동권 대학생 고문한 밀실

    과거엔 보안경찰을 대공(對共)경찰이라 했다. 대공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이적·외환 등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는 세력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수집하고 위반사범에 대해 수사를 수행하는 경찰을 말한다. 여기에는 간첩과 반국가사범뿐만 아니라 학원과 종교·노동계의 좌경의식화사범에 대한 수사도 포함됐다.

    임종길 전 남영동분실(현 경찰청 보안3과) 수사대장은 대공의 역사를 이렇게 들려줬다.

    “제5공화국 때 치안본부에 대공과가 신설됐어요. 건국 초기에는 내무부 치안국 내 사찰과에서 여론을 수집하는 민정사찰과 외사사찰 업무만을 담당했어요. 5·16군사정변 이후 정보과에 소속됐지요. 그러다 민주화운동이 거세지자 대공과가 대공부로 확장되면서 세분화됐죠.”

    1991년 5월,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개편되면서 기존 대공부가 보안국으로 개편됐다. 치안본부-대공부-대공분실 체제가 경찰청-보안국-보안수사대 체제로 이름이 바뀐 셈이다. 학원과 노동계의 좌익사범 수사를 관장하던 보안4과는 1999년에 폐지됐다.

    치안본부 대공분실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1987년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던 박종철은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관의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이후 국민은 대공분실이라는 말만 들으면 ‘운동권 대학생을 잡아서 고문한 밀실’을 떠올리게 됐다. 대공분실이 반인권적인 고문을 자행하고 자백을 강요하는 밀실수사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5공 말기엔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이 한 해에 300~400명에 달했다.

    대공수사관 출신인 홍승상 전 분당경찰서장은 1980년대를 이렇게 회고했다.

    “(대공수사관들이) 운동권 수사에 매달린 이유가 있었어요. (학생들이) 민주화투쟁만 했으면 통제하고 감시할 필요가 없었겠죠. 1980년대 초 대학에 ‘좌경 의식화학습교실’이 생겼어요. 학교에서 공산주의 학습이 이뤄진 거죠. 따지고 보면 전두환 정권이 그 빌미를 준 셈이에요. 당시에 청계천에서 단파 라디오가 동날 정도였습니다. 북한 대남방송을 청취하기 위해서였지요. 결국 치안본부 안에 ‘좌경 의식화 분실’이 만들어진 겁니다.”

    감청허가서 잘 안 내줘

    홍 전 서장은 “(대공수사관들은) 대학생을 조사하면서 ‘신문의 3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첫째, 가혹행위를 하지 말라. 둘째, 범죄사실을 조작하거나 과장하지 말라. 셋째, 순화 차원에서 신문하라…. 그런데 지키지 않는 수사관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무슨무슨 일을 했고 무슨무슨 범죄사실을 조사해보니 몇 가지가 확인됐다. 이러한 것으로 봐서 이러한 일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이었어요. 이건 분명 과장입니다. 상대는 대학생 아닙니까. 마치 도자기를 다루듯 해야 하는데… 고문에 대해서만큼은 대공수사관들이 정말 뼈저리게 반성해야 합니다.”

    386세대는 대공분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시내 한 대공분실에 다녀온 적 있는 P씨는 “대공분실은 마치 교도소 같다”고 증언했다.

    요직에서 한직으로, 보안과 형사들의 한숨

    박종철군이 물고문을 받다 사망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어두운 복도를 따라 신문실이 있고, 그 안에는 책상, 침대, 세면대, 화장실 그리고 욕조가 설치돼 있어요. 대공형사 3~4명이 한 조를 이뤄 교대로 신문했는데, 밤새도록 대답했던 것 같아요. 신문 형사가 누구냐에 따라 그 안에서의 생활이 180도 달라졌어요. 온갖 욕을 퍼붓고 고문하는 형사가 있는가 하면 조근조근 교육하듯이 신문하는 형사도 있었어요. 매일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는 형사도 있었고요. 웃기는 건 20일 후 구치소로 송치되기 전날 밤, 담당형사들과 먹을 것을 사다 놓고 송별식을 했다는 사실니다.”

    최근까지 경찰청과 14개 지방청은 청사와 별도로 30곳의 보안수사대(전 대공분실)를 운영했다. 서울만 하더라도 옥인동, 장안동, 홍제동, 신정동 4곳에 분실이 있다. 경찰청은 2001년 전국의 보안분실 신문실 욕조를 모두 철거했다. 또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인권기념관’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최근 보안경찰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질 정도라고 한다. 강력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들 눈에는 보안과가 ‘놀고 먹는’ 한가한 부서로 비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보안형사들은 보안사범 사건을 수사할 수 없는 ‘현실’을 얘기했다.

    “수사과나 형사과, 지구대 업무는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정보와 보안 쪽 일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결국 하는 일 없이 노닥거린다는 오해를 받는데…. 정보수집활동을 어디 내놓고 하겠습니까. 또 정보활동 내용을 다 말하면 그게 무슨 정보가 됩니까?”

    보안형사가 비밀리에 첩보를 수집한다는 건 옛말이다. 기자가 만난 다수의 보안형사는 수사 현실을 얘기하면서 “개인이 국가보다 앞서는 세상”이라고 하소연했다.

    “요즘은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해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만, 비밀첩보 활동에는 안 맞아요. 우선 통신수사가 힘들잖아요. 간첩용의자의 활동을 살펴야 하는데, 판사가 용의자 애인의 통신감청을 허락하지 않아요. 감청을 위해 범죄구증자료를 확보해도 판사가 인정하지 않거나 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을 때가 많죠. 결국 (검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예산이 많이 들게 되죠. 또한 계좌추적도 힘들잖아요. 예전에는 일가친척 계좌를 다 추적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범죄 용의자만 돼요. 또 인터넷 수사도 맘대로 못해요. 통신회사에서 판사의 영장 허가서를 요구합니다. 검사장 결재를 받아 법원에 가도 하루 이상 기다려야 해요. 더 큰 문제는 법원이 보안사범 용의자일 경우 감청허가서를 잘 안 내준다는 겁니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통신사업자가 검찰과 국정원 경찰 등 정부 수사기관의 요청으로 제공하는 감청 및 통신사실 확인자료건수는 크게 줄고 있다.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사례가 감소한 것은 지난해 8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으로 수사기관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 절차가 검사장 승인에서 법원 허가로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비밀첩보수사를 해야 하는 보안경찰 처지에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걸림돌인 셈이다.

    반면 이러한 수사현실을 놓고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의 기본은 투명성이고 인권경찰을 내세우는 시대흐름에 맞게 보안수사가 비밀수사여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보안경찰의 수사 부진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안보 위해 세력’의 주활동무대인 사이버공간을 관찰할 사이버 보안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엔 최고 엘리트만 뽑혔어요. 가장 똑똑한 형사가 대공형사가 됐습니다. 요즘은 달라요. 베테랑은 인원 축소 조치에 따라 타부서로 이동했고 신참은 아무것도 몰라요.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하는 불온조직에 대해 검색하고 분석하려면 적어도 IP를 추적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이뤄집니다. 보고서와 지침을 인터넷으로 하달해요. 일일이 사이버수사대 협조를 얻어야 하니 여간 불편하지 않아요.”

    보안수사대에서 터줏대감 격인 C씨는 “일선서 보안과는 ‘원로원’이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경찰은) 승진하면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타부서로 옮겨가지만, 보안형사는 전문성을 인정받아 거의 이동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흐지부지됐습니다. 보안경과가 사라진 거죠. 요즘은 퇴직하기 직전 쉬러 오는 부서로 전락했어요. (보안과에 오려고) 온갖 ‘빽’을 동원해요. 원로원이 돼가는 겁니다.”

    탈북자 관리업무에 주력

    보안부서를 지휘하는 관리자도 보안통(通)이 아니기는 마찬가지.

    “일선서 과장은 경정입니다. 지방경찰청 과장은 총경이고요. 경찰청에는 치안감이 있고 총경, 경정이 있어요. 최근 2~3년 동안 보안통이 아니라 비(非)보안통이 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보안통 중에 경무관으로 승진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요. 총경 승진자는 해마다 한두 명에 그칩니다. 공안검사도 줄줄이 옷을 벗고 나가는 추세이니 할말이 없죠. 어쨌든 실무 책임자인 일선서 과장이나 경찰청 과장은 보안을 아는 보안통이 와서 지휘해야 해요.”

    얼마 전 한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전국 보안형사의 인적사항과 표창 및 공적 자료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안수사요원의 신상명세야말로 비노출 자료인데 정말 큰일났다”고 답답해했다.

    이 같은 요청을 한 의원은 민노당 이영순 의원이다. 이 의원의 보좌관인 김모씨는 “경찰청과 지난 2년 동안 싸워서 겨우 받아냈다”면서 “한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보안형사 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고 자료 요청사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동국대 임준태 교수(경찰행정학)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 의회가 보안수사의 특수성을 인정해 관련 예산을 절대 밝히지 않는다”며 이 의원의 요구에 우려를 나타냈다. 임 교수는 또 “선진국에서는, 보안수사관들이 오랫동안 보안업무에만 종사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보안수사기구의 책임자는 바뀌지 않는다”며 보안수사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보안경찰이 당면한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최근 보안형사를 괴롭히는 골칫거리 중 하나가 바로 탈북자 관리다. 북한 이탈 주민 보호가 보안경찰의 새로운 업무영역이 된 것이다. 1999년 경찰청 보안국의 임무에 ‘북한 이탈 주민 관리 및 경호안전대책 업무’가 추가됐다. 현재 전국의 탈북자 수는 8000명을 웃돈다.

    “보안경찰이 탈북자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어요. 탈북자는 크게 두 부류입니다. 첫째는 직접 휴전선을 넘어온, 정치적 동기가 분명한 부류입니다. 주로 1990년대 이전 탈북자지요.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엔 다릅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중국에 건너갔다가 한국으로 넘어와요. 남한 가면 집도 주고 돈도 준다고 하니 너도나도 오는 거죠. 최근에는 범죄자가 많이 들어와요. 생각해보십시오. 집 주지요, 생활보조금 주지요, 무료로 교육시켜주지요. 또 취직하면 급여의 50%를 정부가 보조해줍니다. 왜 안 오겠습니까. 보안경찰은 이들이 동사무소에 가는 것부터 취직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책임지고 있어요. 통일부나 보건복지부, 노동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맡을 일을 대신 하는 거예요.”

    보안경찰은 탈북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애로사항을 파악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등 탈북자의 조기 정착을 돕고 있다. 서울의 경우 양천구와 강서구, 노원구에 탈북자가 모여 사는 곳이 있다. 양천경찰서의 경우 1000명이 넘는 탈북자를 20여 명의 직원이 관리하는 실정이다. 보안경찰의 탈북자 관리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북한 이탈 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상 탈북자의 신변보호는 경찰의 임무가 아닙니다. 본래 통일부와 국정원의 업무입니다. 그런데 보안경찰의 절반이 탈북자 신변보호에 매달려 본연의 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어요.”

    보안수사조직 통제 필요

    보안형사들은 탈북자에게 무조건 온정주의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탈북자끼리 싸워서 경찰서에 온 일이 있었는데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데 대한민국 법이 적용되느냐’고 반발하더라고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런데 위에서는 ‘탈북자들이니까 봐주라’고 지시합니다. 탈북자 중에는 사업차 중국에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들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도 탈북자가 중국에서 히로뽕과 마약을 밀수해 판매하다가 적발됐지 않습니까.”

    최근에는 보안경찰의 존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간첩검거 실적이 형편없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비효율적입니다. 2004년 경찰청 예산 중에 보안국 총예산이 85억7000만원입니다. 이 중에 국정원이 관리하는 예산인 특수활동비가 74억3000여 만원입니다. 예산의 87%를 국정원이 관리하고 있는 거죠. 타부서에서 볼 때 보안부서의 예산운영은 투명하지 않아요. 활동명세와 사용명세가 보안이기 때문이죠. 최근 3년 동안 인원이 감소했는데도 예산은 거의 그대로이니 의문입니다. 모든 게 다 비밀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투명성인데 거기에 위배되는 것 아닙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하지 않겠습니까.”(민노당 이영순 의원실)

    “보안업무는 경찰청 내에서 수사·정보·외사·보안국에 두루두루 분산돼 있어요. 업무가 중첩되는 거죠. 딱히 보안부서에서 해야 할 명분이 없습니다. 수사국, 정보국, 외사부,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다 할 수 있습니다. 인권경찰시대에 보안수사대는 폐지해야 해요.”(2월9일 국회 보안경찰개혁토론회 송상교 변호사)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보안형사들도 할말이 있다.

    “북한 전문가들과 정보기관 추산으로는 북한에서 남파한 간첩과 고정간첩이 7000여 명에서 수만명에 달해요. 단순히 ‘간첩’이라는 짐작만으로 검거할 수 있겠습니까? 큰일날 소리지요. 형사나 수사 쪽은 명확한 단서가 있지만 보안에는 단서가 없어요. ‘간첩’이라는 단서가 포착되기까지 수년 또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검거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인권이 배제됐다는 겁니다. 국민 상당수가 ‘공작’이란 용어에 거부감을 나타내더군요. 그렇지만 보안형사가 하는 ‘공작’은 ‘조작’이 아닙니다. 정확하고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외국의 보안경찰은 어떻게 활동할까. 세계 각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보안경찰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가정보국(DNI)·연방수사국(FBI)·중앙정보국(CIA)이 있고, 독일에는 헌법보호청(BFV)·연방수사청(BKA)·연방정보부(BND), 영국에는 보안국(SS)과 비밀정보국(SIS), 프랑스에는 경찰청 국토감시국(DST), 일본엔 내각정보조사실·공안조사청이 있다. 모두 우리나라 보안경찰과 흡사한 보안조직이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송상교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보안조직에 대한 통제장치가 미비하다”고 지적하고 “(보안조직에 대한) 고도의 전문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면서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의 예를 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정보기관과 보안조직을 감독하는 감찰관 제도가 있어요. 퇴직한 민간인이 맡습니다. 이들이 해외정보부, 국방신호국, 국내정보부의 활동을 심사하고 모든 기밀문서를 요구합니다. 정보기관 직원에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요. 캐나다의 경우 오스트레일리아와 유사한 권한을 가진 총감독관이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해요. 보안정보심사위원회에는 야당이 추천한 사람도 포함돼 있고요. 위원들은 캐나다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대남공작부 더 강화

    동국대 임준태 교수는 “독일은 정보수집부서와 수사부서가 분리돼 있다”면서 “통일 이후 보안경찰은 과학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에 대한 국제정세를 정확히 예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보안수사체계는 우리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

    “일본에는 우리의 국정원과 미국의 CIA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보 조정기관이 없어요. 내각관방장관 산하에 있는 내각정보조사실이 경찰청 방위청 법무성 외무성 등 타 정보기관과 수평적 관계 속에서 국가 안전보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안경찰과 비슷한 조직은 공안경찰이에요. 공안경찰의 주요 수사대상은 공산당, 중핵파 같은 극좌폭력집단, 극우세력, 적군파입니다.”

    치안정책연구소 유동렬 연구위원은 “동독 첩보조직 슈타지(Stasi)는 통일 직전까지 첩보활동을 했다”면서 “북한의 대남첩 보활동도 비슷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독은 통일 직전까지 서독 내 극좌조직을 은밀하게 지원했어요. 1972년 동·서독의 긴장완화정책 이후에도 오히려 이 정책을 역이용해서 서독에 대한 간첩활동을 강화했습니다. 통일 후 독일 정부가 공개한 슈타지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동독의 비밀정보기관인 STAST(국가보안부)에 협조한 서독 사람이 무려 1만5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유 연구관은 오늘의 보안수사 현실을 ‘고싸움’에 비유했다. 머리에 있는 사람과 꼬리에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얘기. 앞의 사람이 각도를 5° 틀면 뒤에서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그 각도에 맞추려고 무진장 뛰어야 하는 것이 지금 보안경찰의 처지라는 것. 유 연구관은 통일 전에는 국내방첩과 외사방첩을 병행하되 통일 후에는 외사방첩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대학교수를 지낸 탈북자 Y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표면적으로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한다고 해서 북한의 대남전략이 변한 건 아닙니다. 전술상 달라진 것뿐입니다. 최근 연간 100건이 넘는 지령통신이 남한으로 내려온다고 들었어요. 북한의 대남첩보수집과 공작활동은 남한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치밀합니다. (북한은) 6·15공동선언 이후 대외연락부, 통일전선부, 당35호실,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국 등 대남공작부서를 더 강화했어요. 그런데 남한에선 ‘세상이 달라졌다’면서 축소하고 폐지하려고 하니 이해가 안 돼요. 보안수사는 국가안보를 위해 정말 중요합니다. (보안경찰이) 왜 정치상황에 흔들려야 합니까? 나라를 위협하는 간첩을 잡는 데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지난 3월, 경찰청은 국가보안법 관련 수사를 전담하는 보안수사 인력을 감축했다. 전국 42개 보안수사대가 사용하는 30여 곳의 보안분실 가운데 6곳을 줄이고, 외근 보안수사 인력을 10% 감축하는 등 조직을 개편했다. 보안국 관계자는 “보안수사 수요와 검거 실적이 해마다 줄면서 보안경찰 축소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시대적 상황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전봇대 위에서 흘린 눈물

    조용연 보안국장(치안감)은 “보안경찰은 시대를 파악하는 균형 감각을 갖춰야 한다”면서 “대공수사가 그 진의와 달리 왜곡된 부분이 없지 않다”고 했다. 조 국장은 시대에 맞는 보안업무를 강조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보안경찰이 탈법적이고 위법적인 행태를 자주 보였던 게 사실이다. 지난날의 과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보안경찰이 오늘날 과연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일선서에서 만난 50대 보안형사의 얘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찰에 들어왔어요. 대공형사로 발탁됐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남을 미행해봤어요. 엄연히 말하자면 간첩을 미행한 거죠. 간첩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전봇대가 있었는데, (전봇대에) 올라가서 간첩 용의자를 관찰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전봇대에 매달려서 ‘이러다가 감전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혹시 ‘부모님이 이 광경을 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더군요. 눈물을 삼키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국가를 위해서 단 한 명의 간첩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명예로운 일인가. 내 아들 딸이 아버지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길까.’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봐주지 않아요. 보안경찰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는 겁니다. 사명감이 사라졌어요.”

    기자는 10여 일 동안 20여 명의 보안경찰을 만나봤다. 그들로부터 ‘보안’이란 용어를 수백번 들었을 것이다. ‘보안’을 빼면 그들과 말이 통하질 않았다.

    2006년 오늘, 보안이 그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보안경찰의 위기는 지나친 비밀주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취재를 마치면서 협조해준 보안경찰관들에게 “인터넷에 다 공개돼 세상이 다 아는데 보안형사들만 ‘보안’이라고 말한다”고 찔러보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보안’이란 ‘없어도 있는 척하는’ 것입니다. 우린 사소한 것을 말하지 않는 습관이 배어 있어요. 하나를 말하면 열인들 말 못 하겠습니까. 다 공개되면 적국이 한국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겠습니까. 자꾸 ‘반공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다’고 하는데…간첩이 정말 없다고 생각합니까? 인터넷에 김일성 찬양 문구를 써놓았는데 구속도 않고 경찰에서 부르지도 않는다면 국가보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보안형사는) 존재 자체가 적국에 심리적 위축감을 주는 국가안보의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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