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10·9’ 이후 북한, ‘플랜B’를 말한다

모든 시나리오의 결말 “김정일 체제 붕괴 대비해야”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6-11-03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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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랫동안 ‘북한 정권의 교체’를 차근차근 준비해온 워싱턴과 이를 수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베이징. ‘핵을 가진 나라가 정권교체 없이 핵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는 명제 앞에서, 경제제재, 군사행동, 인위적인 정변유발 공작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의 결말은 현 북한체제의 붕괴로 향한다. 쿠데타와 내란, 막대한 난민발생과 주변국 군대의 진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가시권 안에 들어온 핵실험 이후,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03년 여름, 이른바 ‘2차 북핵위기’로 고전하던 청와대 안보관련 당국자들은 미국이 가진 몇 가지 선택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방향을 두고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견해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봄까지만 해도 미국의 카드는 국무부의 ‘외교적 해결론’과 국방부의 ‘제한공격론’으로 압축돼 있었다. 그러나 여름에 들어서면서 부통령실이 내민 ‘비(非)군사적 방법에 의한 정권교체’카드가 강력하게 부상했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 안보부처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해 7월24일 미국 정부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게 ‘모종의 임무’가 주어져 있다는 게 정설이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의 적실성을 검토해 백악관에 보고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국무부와 국방부, 부통령실 사이의 이견이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특히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의 갈등은 청와대도 직접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격렬했다.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을 핵심으로 하는 네오콘 진영은 한 발짝 비켜서서 조용히 제 갈길을 가는 형국이었다.

    북핵 문제를 담당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국무부나 백악관 NSC 채널에 공을 들인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강도 높은 시나리오를 주장하는 미 국방부와는 ‘코드’가 맞지 않았다. 이 문제는 이후 청와대 NSC가 각종 군사현안을 두고 미 국방부와 마찰음을 빚게 된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제한공격 시나리오가 갖는 위험성 때문에 이후 백악관의 북핵정책이 일단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로 공식방향을 잡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 의사가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혔고, 정권 자체를 교체하는 것(change)이 아니라 체제의 성격을 개방으로 유도하려는 것(transform)이 목표라고 구체화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 우선’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원칙은 집권 2기에 접어들어 파월 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현 장관으로 교체된 후에도 대체적으로 유지되었다.

    “컨센서스 만드는 중”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한공격 시나리오나 정권교체 시나리오 자체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끊임없이 언급한 ‘레드 라인’은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행동이 남아 있음을 의미했다. 기독교보수주의 세력을 배경으로 둔 네오콘은 ‘북한자유화법안’ 추진, 관련단체 지원 예산의 파격적 증액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북한 정권 교체의 ‘기반’을 다져왔다.

    한미연합사가 추진한 작전계획 5029에 대해 지난해 초 청와대가 격렬히 반대한 것은, 이 계획이 기본적으로 ‘김정일 유고(有故) 이후 북한의 상황에 미군이 개입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미 태평양사령부가 북한에 대한 다양한 군사적 압박을 통해 체제 내부의 위기를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작전계획 5030이 추진되어 김정일 위원장 소재지에 대한 위협성 군사행동이 있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2004년 여름 3차 6자회담 직후, 딕 체니 부통령과 폴 윌포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네오콘 핵심 인사 사이에서는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호로위츠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미국의 대북정책 : 수단과 인식’이라는 메모가 회람됐다. 그해 9월 ‘뉴스메이커’가 공개한 이 메모는 “북한 장성들이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벗어나 탈출하려는 신호가 (미국에) 많이 접수되고 있으며, 특히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500~1000명의 고급장교·관료가 잠재적으로 배반의 가능성을 띠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탈북자의 미국 망명 허용을 법제화해 ‘배신’을 유도해야 한다는 이 메모의 권고는 같은 해 10월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현실화했다.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9일 핵실험 이후, 그간 6자회담 중심 해법을 주도해온 미 국무부의 처지가 곤혹스러워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0월3일 핵실험 예고 선언이 나온 직후 북한에 가장 강경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은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였다. “북한은 핵과 미래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그의 10월4일 발언은, 끝내 핵실험이 강행될 경우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가장 타격을 입을 사람이 ‘협상파’인 그 자신이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핵실험 이후에도 부시 행정부 내의 ‘온도차이’는 계속 감지되고 있다. 특히 대북 군사행동에 관해서는 미국 정부 역시 한국 못지않게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10월10일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같은 시각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국은 군사적 유사 상황에 대비한 전쟁 계획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이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언급은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것이겠지만, 핵실험으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만큼 협상파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외교안보연구원 김성한 미주연구부장은 “미국이 일단 ‘다자적 접근의 기수’라는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수위를 꽤 양보했지만, 제재의 의지가 약하거나 줄어든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워싱턴은 근본적으로 김정일이 핵을 쉽게 포기할 리 없다는 전제를 갖고 있으며, 현재는 정권교체 등 다양한 대안의 방법과 가능성을 놓고 정부 내의 컨센서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정권교체 없는 핵 포기’ 전례 없어

    북한이 요구하는 양자협상의 성사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미국 내의 상황 때문이다. 막후협상이나 비밀접촉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평양에 대한 워싱턴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유의미한 결론이 나올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이 북한의 뜻을 받아들여 양자협상과 금융제재 해제, 관계정상화 등의 카드를 내준다 해도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핵실험을 실행했거나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이를 폐기한 사례는 딱 두 경우,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이 붕괴한 이후 연방에서 떨어져나온 국가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뿐이다.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서구의 지원과 안전보장을 받기 위해 소련 시절의 핵무기를 폐기했고,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정책) 체제가 몰락하고 만델라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 사실상 새 정권에 핵을 넘겨줄 수 없어 비핵화를 선언했다.

    체제의 변경과 무관하게 핵무기를 포기한 경우는 없다. 제재와 협상을 거쳐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경제지원을 약속받은 리비아의 경우 핵실험과는 한참 거리가 먼, 1990년대 초반 북한 수준의 핵개발 단계였다. 이와 관련해 한국국방연구원 김태우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북한의 핵개발이 협상용이었는지 아니면 애초부터 핵 보유를 목적으로 꾸준히 추진돼온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핵실험이 이미 일어난 현재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통해 그간의 요구사항을 얻어낸다 해도 이미 완성된 핵만큼 강력한 체제안전 보장수단이 되기는 어렵다.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 미국의 공격을 받을 리 없다고 믿는 평양이 현금을 버리고 어음을 받으려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이다. 최소한 워싱턴의 인식은 그렇다.”

    지원 끊기면 5년, 교역 끊기면 2년

    이렇듯 한국 처지에서는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만한 ‘양자대화’의 가능성이 핵실험과 함께 사실상 거의 사라졌다고 가정하면, 남은 가능성의 폭은 극히 제한적이다. 상황은 이미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10월14일 유엔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보다 강력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체제는 실질적으로 ‘유엔의 깃발’을 달 수 있게 됐다. 남은 변수는 경제제재의 수위조절에 공을 들인 중국이 그 실행과정에서 이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할지 정도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어떠한 결과를 낳을까. 워싱턴이, 경제제재에 심한 압박을 느낀 북한이 스스로 6자회담에 나와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오히려 현재로서는 북한 선박에 대한 정선(停船) 및 수색절차 과정에서 우발적인 충돌이 벌어져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가능성 높아 보인다. PSI체제가 출범한 2003년부터 일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 내 강경파가 PSI나 경제제재를 추진하려는 이유가 우발충돌이 일어날 경우 다시 유엔의 승인을 얻어 합법적인 무력제재로 연결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해왔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연구실장은 “미국이 장기적으로는 경제봉쇄를 통해 북한의 경제사정을 악화시켜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 가운데 하나로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군사공격이 야기할 수 있는 전면전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대신 정권교체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제재가 내부 소요나 군사쿠데타 등으로 이어져야 한다. 작전계획 5030이나 북한인권법처럼 그간 쌓아온 ‘기반’을 활용하자는 방안인 셈이다.

    경제제재가 실제로 이 같은 결과를 낳는다면 그에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북한은 경제제재 상황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미국 국제경제연구원(IIE)의 마커스 놀랜드 연구원은 그의 저서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에서 장기집권 국가들의 경제하강과 정권교체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해 김정일 체제의 내구성을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외부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는 5~6년, 대외교역이 봉쇄된 상태에서는 2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0월13일 보고서를 내고 “경제제재에 따른 대외교역 감소는 북한의 거시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며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 훨씬 더 심각한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제재의 방식과 수위에 따라 김정일 체제의 수명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일각에서는 ‘고난의 행군’을 거친 북한이라면 이번 유엔 결의안처럼 ‘허술한 봉쇄’는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그러나 홍순영 전 통일부 장관은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같은 의견을 일축했다. “햇볕정책으로 인해 1990년대 후반 이후 북한 관료들이나 주민들은 상당히 ‘타락’했으며 일정부분 자본주의화했다. 권력엘리트 그룹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1990년대 중반처럼 엄청난 경제위기 속에서도 김정일 체제를 지지하며 버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단언이다(166쪽 기사 참조).

    ‘제한적’ 군사공격은 없다

    심심찮게 거론되지만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낮게 평가되는 시나리오가 군사적 제재이다. 유엔 차원의 군사제재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결의안 논의과정에서 제외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으로서도 한반도 전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적지않은 이 시나리오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가 언급하는 ‘최악의 상황’, 즉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감행하거나 핵물질과 기술을 다른 국가·집단으로 유출하려고 시도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1960년대 이래 핵확산을 막는 일을 안보정책의 1순위로 설정해온 미국으로서는 이를 무력으로 저지하고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렇듯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해도, 향후 상황전개에 따라 미국이 대규모 항모전단훈련이나 폭격무기 전진배치를 통해 군사적 긴장도를 높임으로써 대화를 압박할 가능성은 충분하다(104쪽 기사 참조).

    이렇게 형성된 긴장은 아주 작은 불씨로도 폭발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미국이 실제적인 군사공격을 검토한다면, 단순히 핵시설을 파괴하는 제한적인 수준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를 제거하는 차원까지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명분을 가진 유엔 차원의 군사제재라면 문제가 되는 시설에 대한 정밀공격이 이뤄져도 북한의 반격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억제할 수 있겠지만, 미국 중심의 군사행동이라면 ‘순식간에 아예 숨통을 끊어’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는 ‘단두(斷頭·Decapitation) 작전’ 외에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북한 관리’는 당연한가

    이렇듯 핵실험 이후 북한의 미래, 정확하게 말해 미국이 북한의 핵을 제거하기 위해 상정하는 모든 시나리오는 최종적으로 사실상 김정일 체제의 붕괴 혹은 교체라는 결말을 갖는다. 현실적으로 북한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려면 물리적인 수단을 보유한 군부의 쿠데타 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미사일발사와 핵실험 같은 극단적인 카드가 나온 배경에 김 위원장과 혁명 2세대 군부 지도자들 사이의 파워게임이 있을 수 있다는 한국국방연구원 차두현 국방현안팀장의 분석은 의미심장하다(161쪽 기사 참조). 북한 권력층의 심각한 갈등이나 내분은 상황이 조금만 바뀌면 쿠데타 등의 극단적인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는 ‘내적 동력’이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쿠데타가 벌어질 경우의 상황전개를 예측한 고승현 박사는 “쿠데타 세력이 구성할 ‘인민군혁명위원회’ 같은 조직은 권력을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해 주변국가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받으려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쿠데타 모의단계에서부터 외부세력의 조력이나 지원을 확보하려 애쓸 것”이라고 분석한다(114쪽 기사 참조). ‘핵 포기를 조건으로 한 외부세력의 쿠데타 승인 혹은 사전지원’의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평양에서의 쿠데타를 유도하거나 사전 지원할 방법이 과연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미국이 그간 다양한 차원에서 김정일 체제의 안정성을 흔들기 위한 ‘사전작업’을 벌여온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쿠데타나 소요 등을 유발할 만한 내부 개입 수단을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홍순영 전 장관은 “조건을 만드는 일은 미국이 주도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방법이나 김정일 이후 어떤 정권을 세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부분을 중국측에 맡길 것”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미·중 역할 분담론인 셈이다.

    경제제재든 군사제재든 쿠데타 유도든 궁극적으로 북한의 체제교체를 촉발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이후 북한이 과연 국가적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권력투쟁의 결과물로 한국의 10·26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거나, 군사공격이나 쿠데타 시도 등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할 경우, 북한 체제가 내란과 같은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중국과 미국 등 주변국은 이에 개입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우선 핵 보유가 확실해진 지금 북한의 혼란은 미국으로서는 말그대로 끔찍한 악몽이다. 평양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어 핵물질 등이 국외로 반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개입이 확실한 경우, 중국도 이를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북한 지역 내에서 양국군이 조우한다면 두 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도 이러한 상황전개가 바람직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이 무너지면 한국이 관리한다’는, 우리에게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 명제는 국제법과 국제정치의 틀에서 보면 그다지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136쪽 기사 참조). 우선은 주변국의 개입을 적절히 차단하고 한국이 주도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려면, 혹은 실패하더라도 유엔을 통한 신탁통치체제 등 ‘덜 위험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면, 한국 정부는 충분한 국제법·국제정치적 사전준비를 해야 한다는 분석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핵실험 전과 후, 중국의 속내는?

    이렇게 놓고 보면 결국 핵실험 이후 북한의 열쇠는 여전히 중국의 손에 쥐어져 있음이 명확해진다. 경제제재의 수위를 조절해 북한 내부의 권력이상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중국이고, 군사제재에 대한 확고한 반대를 통해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것도 중국이며, 북한체제가 위기에 빠질 경우 평양이 일차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려 할 상대도 중국이다. 심지어는 평양 내에서 암살이나 쿠데타 같은 정치적 격변을 조직할 힘을 가진 나라가 있다면 그 유일한 후보 역시 중국이다.

    과연 중국이 이러한 행동에 동참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다. 핵실험 이전에는 대만의 핵무장을 우려하는 중국이 핵을 가진 김정일 체제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징후가 적지 않았다. 스인훙 인민대 교수와 같이 중국 정부에 가까운 일부 전문가들이 “북한의 붕괴가 중국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공공연히 제기하기도 했다. 중국이 2003년부터 북중 접경지대에 대규모의 인민해방군을 배치한 것도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핵실험 이후 대북봉쇄에 강력히 반대한 중국의 반응을 두고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위한 모색기’라는 시각과 ‘북한의 핵무장이 대만 등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이를 감수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이라는 분석이 엇갈린다. 이는 중국이 북한 정권교체 이후의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견차이와도 관련이 깊다. 그러나 핵 실험 이전부터 지금까지 중국 역시 평양의 정권을 붕괴시키는 방안을 대안의 하나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미국은 이미 중국에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라고 설득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진행되는 ‘전략대화’의 미국측 대표였던 로버트 졸릭 미 국무부 부장관은 2005년 8월 베이징 방문 당시 중국 지도자들에게 “장차 한반도가 미국에도 호의적이고 중국에도 호의적이 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중국이 만들어보라”고 권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북한 핵 문제 해결뿐 아니라 한반도의 상황(context) 변화에 어떤 개념적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지 참여자(participant)가 되어달라”는 요청이었다는 것이다. 아리송한 외교적 수사로 치장되어 있지만 속뜻은 단순하다. 김정일 체제의 장래에 대해 중국이 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핵실험 직후인 10월12일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특사자격으로 탕자쉬안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을 워싱턴에 보냈다. 탕 위원이 부시 대통령과 장시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공식 브리핑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그 이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앞으로도 양국의 대화와 협상은 막전과 막후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전세계를 통틀어 그 대화내용에 가장 관심이 클 사람은 바로 김정일 위원장일 것이다. 평양 정권교체와 관련한 이후 상황전개가 결정될 공간이기 때문이다.

    보다 창의적인 ‘플랜B’를 위해

    ‘플랜B.’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대책 1안(案)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사전에 검토하는 대책 2안을 뜻한다. 핵실험으로 그간의 대응이 실패했음이 확인된 지금, 워싱턴은 ‘압박·제재를 통해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킨다’라는 플랜B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중국 역시 이후 상황전개에 따라 플랜B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7월의 미사일 발사 직후 랴오닝성 선양군구에 배치된 인민해방군 제16집단군을 투먼 등 북중 국경에 추가 배치해 총 4만명 규모로 증원한 중국의 조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미·중의 플랜B에 대응하는 한국의 플랜B는 과연 무엇인가. 경제제재·군사행동·쿠데타 유발과 같은 조치로 만에 하나 김정일 정권이 붕괴할 경우, 특히 이로 인해 북한이 내란 등의 혼란에 빠질 경우에 맞서 한국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쏟아져 나오는 수십만의 난민과 대량살상무기의 유출 위험, 북한지역 개입을 두고 주변국이 각축을 벌일 때 한국의 대응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1990년대 중반 북한이 대기근으로 위기를 겪고 있을 무렵, 서울에서는 이러한 방안에 대해 다양한 토론과 논의가 진행됐다. 그러나 곧 ‘고난의 행군’ 시기가 마무리된 1990년대 후반부터 관련논의는 잦아들었다. 특히 포용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급변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 국책연구소가 안보관련 논의의 대부분을 떠안고 있는 현실이다보니, 이후 북한 급변사태 대비책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의 글에서 제시하는 각각의 시나리오는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평양에서의 쿠데타, 김정일 위원장 유고시 북한 정권의 향방 등을 모델링해 제시한다. 현재진행형인 경제제재의 결과와 관련해서는 홍순영 전 장관과의 인터뷰를 참고할 만하다. 이러한 상황전개가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제재가 쿠데타로, 쿠데타가 유고로 이어질 수도 있고, 군사제재가 주변국 개입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을 예측하는 작업과 함께, 외부에서 그러한 상황을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고려했다.

    그러한 상황전개가 한국에 바람직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핵실험 이후 그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플랜B란 당초의 계획이 실패했을 때, 즉 원하지 않던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신동아’가 검토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핵실험 이후의 북한’이라는 사상최악의 난제에 접근하는 한국의 플랜B를 보다 창의적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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