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시나리오Ⅲ 김정일 有故! 파워게임 카운트다운

‘평시’ - 오극렬 막후에 둔 집단지도체제, ’전시’- 김영춘 ‘최고사령관 대행’체제

  • 고승현 북한군사문제 연구가

    입력2006-11-06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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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북한 급변의 결정적인 고비는 평양 내부의 정변이나 미국의 제한적 군사행동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상에 이상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 시점에 권력층 내부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북한은 조기에 안정을 되찾을 수도, 급격히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북한의 비상대응체계 분석을 통해 평시와 전시로 나누어 권력의 향방이 어디로 향할지 모델링해 보았다.
    시나리오Ⅲ 김정일 有故! 파워게임 카운트다운

    오극렬 조선노동당 중앙위 작전부장. 북한 군부의 막후실세로 지휘관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가운데),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 사실상 북한군 전체를 관할하는 최고군사집행기구의 수장이다.(오른쪽)

    바로 지금 김정일 위원장이 유고(有故) 상태라고 가정해보자. 김 위원장의 유고는 국방위원장의 유고일 뿐 아니라 당 총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장, 최고사령관 등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을 통치해온 ‘단일지도’ 통치권력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 경우 북한은 통치 시스템이 마비돼 즉시 비상사태에 돌입할 것이다. 이후 북한권력의 향방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론적으로 볼 때 김정일 유고가 체제 붕괴 등 급변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반면 ‘김정일 없는 북한’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개연성 또한 마찬가지로 높다. ‘김정일 없는 북한’에서 누가, 어떤 기관이 권력을 대체할 것이며 100만 북한군을 안정적으로 통제할 것인지의 문제는 곧 북한의 비상시 대비체계의 정상적인 가동 여부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오늘날 북한의 김정일이 향유하는 ‘단일지도’ 통치권력은 크게 당 총비서, 국방위원장,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나뉜다. 당 중앙위에서 선출하는 당 총비서는 북한을 당적(黨的)으로 통제하며, 최고인민회의에서 뽑는 국방위원장은 북한을 국가적으로 통제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최고사령관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통제하는 식이다.

    북한의 통치체계는 ‘단일권력’인 이들 3자 간의 역할분담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평시와 비상시에 따라 이들 3자간 역할관계의 비중이 달라진다. 평시 통치체계와 비상시 통치체계의 차이는 이 세 가지 역할의 상대적 비중이 다르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북한의 비상시 체계란 ‘일체 무력의 지휘통솔’ 권한을 가진 최고사령관의 역할을 당과 국방위원장이 지원하는 ‘최고사령관 중심체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평시 체계란 당적인 통제와 국가적 통제를 담당하는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의 역할이 최고사령관의 군사적 통제보다 강조되는 당-국가 중심체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비상시기로 규정하는 경우로는 다음 두 가지를 상정할 수 있다. 우선 전쟁 등이 발발해 최고사령관이 비상시기임을 선포하고 이와 관련해 작전명령을 발동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비상사태를 규정하는 최고사령관 자신이 유고된 경우다.



    ‘전시’와 ‘평시’를 나누는 이유

    북한에서 ‘비상시기’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 위협의 정도에 따라 최고사령관이 비상사태 관련 작전명령을 발동함으로써 성립한다. 물론 여기에는 교전상태를 의미하는 ‘전시’가 포함된다. 이에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은 ‘노동신문’이나 ‘조선인민군’ 신문을 통해 공개될 수 있지만,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와 같이 내부적으로만 행해질 뿐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최고사령관의 비상사태 작전명령에 따라 규정되는 북한의 비상시기는 다음의 다섯 단계로 구분된다. 5단계-전투경계태세 명령, 4단계-전투동원준비태세 명령, 3단계-전투동원태세 명령, 2단계-준(準)전시상태 명령, 1단계-전시상태 명령이다. 이 가운데 5단계 전투경계태세 명령은 인민무력부장이 예비군을 제외한 정규군만을 대상으로 발동한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시기와 한국의 6·3한일회담반대운동 시기, 1968년 푸에블로호 납치, 그리고 1985년에 발령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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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노동당의 조직체계. 형식상 최고기관인 당대회는 원칙적으로 5년에 한 번 개최하도록 되어 있고 필요한 경우 임시당대회 격인 당대표자회를 개최할 수도 있으나, 북한은 1980년 이후로 현재까지 당대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당대회가 열리지 않을 때에는 중앙위원회가 최고기관이지만 중앙위 전원회의 역시 1993년 이후로 개최되지 않고 있다. 전원회의가 개최되지 않는 동안에는 중앙위원회 산하의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하고 지도하도록 규정돼 있다. 예전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이 정치국 상무위원이었으나 김 주석과 오진우가 사망한 현재는 김 총비서 혼자 남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현실적으로는 비서국이 당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셈. 당중앙위 검열위원회는 당의 기강을 담당한다. 그밖에 중앙위원회와 동급기관으로 회계감사를 담당하는 중앙검사위원회와 군사문제를 담당하는 중앙군사위원회가 있다.

    최고사령관이 3단계 전투동원태세 이상의 작전명령을 발동하면 최고사령관은 북한 내 ‘일체 무력에 대한 지휘·통솔’ 권한을 행사하고 북한의 당, 국가기관, 무력기관, 사회단체의 업무는 최고사령관을 지원하는 비상체제로 전환한다. 민간무력인 노농적위대와 붉은청년근위대 조직도 동원태세를 갖추며 모든 무력기관의 외출, 휴가가 전면 금지된다. 전연군단 등은 즉각 완전한 전투준비태세에 돌입한다. 후방에 있는 부대들 가운데 공군부대, 반항공부대(방공부대), 고사포부대, 인민경비대 부대도 전투준비를 끝내고 내무반을 지상에서 지하갱도로 이동하여 완전한 전투 준비태세를 갖춘다.

    2단계 준전시상태 선포시에는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 민간무력에 대한 비상소집령이 발동된다. 북한 내 라디오와 TV의 정규 프로그램은 모두 중단된 채 전쟁 분위기를 고취하기 위해 ‘전시가요 연곡’과 전쟁영화만을 내보낸다. 전국적 범위에서 청년학생들이 인민군대 입대를 탄원해 나서기도 한다. 한미연합군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이 열릴 때마다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대응군사훈련 등을 실시해왔다. 준전시상태가 전시상태와 다른 점은 실제 교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뿐이며, ‘전시 대비상태’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북한군 최고사령관의 비상사태 관련 명령은 단순히 당의 결정을 집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최고사령관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그 기간이 한정돼 있다는 특징이 있다. 원래 북한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직위는 6·25전쟁 시기 긴박한 전황에 맞게 당의 ‘집체적 지도’에서 일정 정도 벗어나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단일지도 형태의 ‘전시비상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신설된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 최고사령관 개인에게 북한 내 일체 무력에 대한 지휘통솔권이 부여됐고, 당 중앙위와 국가기구들은 전쟁 승리를 위해 최고사령관이 일체 무력을 통한 군사작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전시를 포함한 북한의 비상시기에 최고사령관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예외적인 ‘비상시’가 존재한다. 예컨대 비상사태를 관리하는 김정일 최고사령관 본인의 유고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김정일의 유고는 그 자체로 북한을 비상사태에 돌입케 할 것이다. 이 경우 ‘김정일 없는 북한’이 처할 비상시기를 전시상황과 전시가 아닌 상황으로 구분하고, 이에 대처하는 비상대비체계를 ‘당 중앙군사위 중심체계’와 ‘최고사령관 대행체계’로 설정해 검토해볼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이 김정일 유고시 예상되는 북한의 비상체계 통치형태와 향후 권력의 향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유일한 실체, 당 중앙군사위원회

    바로 지금 김정일 위원장의 유고를 가정할 경우, ‘김정일 없는 북한’이 직면하는 최초의 난제는 비상사태 선포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다. 비상사태를 규정하는 최고사령관의 유고 상황이므로 과연 누가, 어떤 기관이 비상사태의 수준을 결정하고 어떤 형식으로 선포하는지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김정일 이후 정국의 주도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므로 매우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우선 이론적으로 살펴보자. 김정일 유고에 따른 비상사태 선포는 조선노동당규약 24조에 규정된 것처럼 당 중앙위 정치국에서 관련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례로 당 중앙위 정치국은 1983년 2월1일 한미 양국의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 당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으며, 1994년 7월8일 김일성 사망 당일에도 비상 정치국 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보아 당 중앙위 정치국이 비공개로 비상사태 선포를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후 김정일 위원장 시대 들어 당 중앙위 정치국은 비상사태와 같은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개최된 사실이 알려진 바 없을 뿐 아니라, 자연적 감소에 따른 결원조차 충원하지 않는 등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언급했듯이 북한은 당 비서국에 의해 실무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 유고 상황에서 당 중앙위가 비상사태 선포와 관련한 주체가 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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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2004년 4월7일 작성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지시’ 문건.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 대비한 ‘전시사업세칙’ 내용을 담고 있어 유사시 북한의 대응체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 역시 제도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간 당-국가체제에서 상상하기 힘든 당 중앙위와 국방위원회의 공동결정 발표가 종종 있었지만, 이는 김정일 총비서가 국방위원장을 겸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에는 김일성 내각수상이 ‘석탄공업을 가일층 발전시킬 데 대하여’(1964년 1월8일)와 같은 주요 사안을 당 중앙위와 내각의 공동결정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이러한 사례는 북한에서는 직책의 중요성이 직책 자체보다는 누가 그 직책에 있는지에 따라 결정돼왔기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다.

    따라서 ‘김정일 없는 북한’에서 국방위원회의 위상은 여타 국가기구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여전히 ‘국가는 당이 만든 당의 강령을 실행하는 제도적 기관’일 뿐이다. 비록 헌법상 국방위원장 유고시 대비차원에서 존재하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명록이 국방위원장 직을 대리할 수 있겠지만, 조명록 국방위원장 대행이 기존 국방위원장인 김정일이 가졌던 ‘일체 무력에 대한 지휘통솔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은 어디까지나 국방위원장을 수석으로 보좌하는 직책일 뿐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승계하는 직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상 김정일의 ‘일체 무력에 대한 지휘통솔’ 권한은 단지 국방위원장뿐 아니라 당 총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장,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최고사령관을 모두 포함하는 단일권한이라다. 더구나 국방위원장의 권한은 엄밀히 말해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의 지도나 위임에 의해 행사된다. 따라서 조명록의 위상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서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지도와 결정을 받아 집행기관으로서 국방위원장을 대행하고 국방위원회를 주도해 나가는 역할에 한정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황장엽 등 북한의 고위 탈북자들은, 장성택 전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같은 당 관료 중 특정인이 김정일 유고 이후 조직지도부장 직을 대리하면서 ‘단일지도’ 형태의 권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그 실현가능성은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당내 2인자로 일컬어지며 ‘포스트 김정일’ 후보 1순위로 거론됐던 장성택의 경우 가택연금설과 복귀설, 당내 알력설 등 그 위상이 극히 불안정한데다, 최근에는 권력투쟁 음모설에 휩싸여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김 위원장 유고시에 당이 장성택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할지조차 미지수다.

    ‘장성택 후계론’의 함정

    또한 장성택 제1부부장의 담당영역이 사법, 검찰, 공안기관 등 비정규군 영역에 한정됐기 때문에 그동안 북한군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할 수 없었다는 점도 한계다. 과거부터 빨치산 계열 군부 인사들과의 인적 연관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군부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적다. 군부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신정권’을 당 관료가 ‘단일지도’ 권력 형태로 통제, 지도해 나갈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사실상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의 당총비서, 국방위원장, 최고사령관 등 ‘단일지도’ 형태의 통치권력 선호는 보편적이기보다는 그 자체로 비상시에 한정된 권력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일의 유고는 한정적인 ‘단일지도’ 형태 통치권력의 소멸을 의미하며, 교전상황 등 전시상태를 제외한다면 북한의 통치형태는 일정기간 집단지도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김정일 유고시 북한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할 주체와 형태의 윤곽이 드러난다. 현재 상태에서 최고지도자의 유고가 발생한다면 비상사태 선포는 당 중앙위·중앙군사위 공동명의 형식으로 발표되거나, 당 중앙위, 당 중앙군사위, 국방위, 인민보안성, 국가보위부 등이 구성하는 비상 정권연합기구를 통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들 기구 가운데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구는 당 중앙군사위원회다. 중앙군사위원회는 당규약 제27조 규정에 의거해 북한 내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할 수 있는 만큼, 최고사령관을 대신해 비상사태 관련 결정을 내리는 형식상 주체가 되리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비상사태 선포권을 가진 북한군 최고사령관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소속기구일 뿐 아니라, 김일성 사망 이후 당 중앙위(정치국)가 사실상 정지된 후에도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비서국과 함께 그나마 그 권한과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징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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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외쪽),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가운데), 김명국 108기계화 군단장(오른쪽)

    1996년 7월 나온 전국 요새화 구축과 관련한 명령이나 수차례 나온 인민군 원수급 군사칭호 수여 명령은 모두 당 중앙위원회 명의였다. 최근에 공개된 중앙군사위원회의 명령 00015호 ‘무기, 탄약들에 대한 장악과 통제사업을 더욱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2004년 3월10일)와 당중앙군사위원회 지시문 002호 ‘전시사업세칙을 내옴에 대하여’(2004년 4월7일)의 발행번호를 보면,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최소한 2개월에 한 번가량은 정기회의나 임시회의를 개최해 주요 국방 현안을 결정해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이들 명령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앙군사위원회는 전쟁에 대비하는 준비 및 국방정책의 심의와 행정기관의 국방과 관련된 업무를 집중적으로 장악해 신속한 진행을 도모하는 ‘비상시 대비기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쟁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김정일 유고시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전투동원태세’ 비상사태 작전명령을 북한 전역에 선포하는 ‘결정’을 행하고 다음으로 이를 공개 혹은 비공개할 것인지, 단독명의로 할 것인지 공동명의로 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주관하는 국방위원회로 하여금 이의 집행을 담당케 함으로써 비상시 북한을 관리해 나갈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유고 사건’ 누가 수사하나

    이렇듯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의해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나면 북한 당·정·군의 모든 업무는 당 중앙군사위원회로 집중되는 비상체제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단일 권력주체를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김정일 위원장만이 향유했던 당 총비서나 최고사령관,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군사위 위원장을 새로 뽑거나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여 국방위원장을 새로 선출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도 얘기했듯 거의 10년 동안 개최되지 않은 당 중앙위 전원회의나 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를 개최하는 작업이 조속히 진행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공식절차가 안정적으로 완료될 때까지의 과도기간에는 당 총비서, 국방위원장, 최고사령관 등 단일지도 권력을 대신해 당 중앙군사위원회나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집단지도’의 형식으로 정책결정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무적으로는 당 비서국 전문부서의 지원을 받아 북한을 비상 통치하는 형식이다. 대내외적으로는 국방위원회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상시기 정책결정을 집행하는 기구 기능을 할 것이다(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비상사태의 수준이 전시상황이라면 통치 주체는 달라질 수 있다).

    비상사태 선포 이후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직면할 첫째 문제는 김정일 유고 관련 수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당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자격으로 당 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었던 한성룡에게 김 주석의 시신을 해부하라고 지시하고 해부소견을 제시토록 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당 총비서인 김 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할 경우 사인(死因)규명 등에 대한 수사는 엄밀히 말해 당 중앙위 소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북한 내 일체 무력을 장악하는 상황전개를 가정하면, 김정일 유고와 관련한 수사 혹은 부검의 주체기관도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될 것이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을 선정해 김정일의 사망이 독살인지, 사고사인지, 병사인지를 규명토록 하고 유고와 관련한 대내외적인 절차를 마무리하도록 지시하는 형식이 예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단지도 형태인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전면에 등장해 주요 정책결정 기구로서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이후 통치권력의 실체는 오극렬 당 작전부장과 친(親)오극렬 계열의 군사파 인물들이 장악할 것으로 관측된다. 오극렬 작전부장이 막후통치 역할을 담당하고 당 중앙군사위 위원인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영춘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김명국 108기계화 군단장 등이 정책결정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이들은 오극렬 당 작전부장이 총참모장에 재임하던 1979년부터 1988년 사이에 승승장구한 유학파 군사지휘관들로서, 당시 오극렬 총참모장의 북한군 현대화·정규화 비전을 공유한 인사들이다.

    ‘단일지도’ 불가피한 전시상황

    더욱이 군사지휘관 출신인 조명록의 총정치국장 기용이나 작전국장 및 전연 군단장들에 대한 우대, 해군사령관의 인민무력부장 기용 등은 모두 오극렬의 머리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일 시대 북한군 수뇌부 인사의 면면은 그의 군사지휘관 중심의 강군(强軍) 구상이 김정일 위원장에 의해 수용된 형태에 가깝다. 김 위원장의 유고 이후 군부 중심의 집단지도체제가 성립한다면 그 막후 중심에 오극렬 작전부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까지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 유고시 북한권력의 향방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부터 살펴볼 내용은 전시상황에서 김 위원장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에 관한 것이다. 이는 최고지도자의 유고라는 상황에 전시라는 또 하나의 상황이 얹혀진 이중의 비상시기라고 볼 수 있다.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는 집단지도 형태의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유고 이후 상황을 관리해 나갈 공산이 크지만, 전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시상황은 필연적으로 ‘최고사령관’이라는 단일지도 형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유사시 최고사령관을 대행하는 체계를 예측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김정일 위원장 유고 상황에서 북한이 어느 일방과 교전상태에 들어갈 경우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준전시전투동원태세 작전명령보다 한 단계 높은 ‘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전국에 전시동원령을 하달할 것이다. 이를 통해 성립되는 북한의 전시 비상체계는 6·25전쟁 당시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지휘체계와 김정일 위원장의 생존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전시사업세칙’(2004년 4월7일)을 통해 그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생존한 상태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비상 대비체계의 핵심은 당연히 당과 국방위원회가 최고사령관을 지원하는 ‘최고사령관 중심체계’가 된다. 우선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위임에 따라 ‘전시상태 때 정치, 군사, 경제, 외교 등 나라의 모든 사업은 국방위원회에 집중’되도록 규정돼 있다. 전시 북한의 일체 무력에 대한 지휘통솔 권한은 최고사령관 개인에게 귀속되며, 오로지 전쟁 승리를 위해 당·정·군의 모든 업무가 최고사령관 지원체계로 일원화한다. 즉 전시 최고사령관 중심체계는 명실상부한 단일지도 형태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김 위원장 유고 상황에서는 과연 누가 최고사령관을 대행할 자격이 있는지로 귀결된다. 북한군 역사를 통틀어 최고사령관 궐석시 그를 대리하는 ‘제1대리인’은 공식적으로 세 명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6·25전쟁 시기의 김책 전선사령관이다. 당시 최고사령부 부사령관 겸 민족보위상은 최용건이었지만, 김일성 수상은 전선사령관 김책이 최고사령관의 제1대리인이라고 언급했다. 두 번째로는 1986년 6월 유엔사령부 총사령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당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최고사령관 제1대리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바 있다. 끝으로는 1991년 12월24일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기 직전의 김정일 당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있다.

    ‘최고사령관 제1대리인’이 없다

    ‘북한군 최고사령관 제1대리인’으로 언급된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군사지휘관이나 국가 최고위직이 아닌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급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인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할 경우, 논리적으로 북한에서는 최고사령관을 대행할 자격이 있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쉽게 말해 현재의 북한에서는 김 위원장을 대신해 최고사령관을 맡을 수 있는 2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유사시 북한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게 만드는 한 요소다.

    앞서도 말했듯 전시상황이 아니라면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집단지도로도 비상관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긴박하게 상황이 전개되는 전시라면 당의 ‘집체적 지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신속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단일지도 형식의 특수기관이 필수적이다. 사실상 ‘최고사령관’이라는 직위 자체가 이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전시의 경우 부대지휘는 당 위원회가 아니라 군사지휘관의 개인적 판단에 따른 단독 명령에 의해 통솔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의 유고상황에서 북한이 타국과 교전상태에 놓일 경우에는, 전시상황의 특성에 맞게 특정한 한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일체 무력의 지휘통솔권을 부여하는 ‘단일지도 형태의 최고사령관 대행’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최고사령관 대행은 현실적으로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전시 북한군 최고사령부의 수뇌부를 구성하는 인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맡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권력의 집결지

    전시 최고사령부에는 정규군인 조선인민군뿐 아니라 인민보안성 소속의 인민경비대와 노농적위대를 비롯한 민간무력, 호위사령부 병력, 당원과 사회단체원 등 북한 내의 모든 병력과 군사자산이 휘하로 편성된다. 전쟁 승리를 위해 북한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이 하나의 거대한 최고사령부를 중심으로 통합되는 형태이다.

    이러한 전시 최고사령부의 유일한 전례는 6·25전쟁 때였다. 조선노동당 위원장 겸 내각수상이던 김일성이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민족보위상(현 인민무력부장)인 최용건이 최고사령부 부사령관과 서해안방어사령관을 겸임했다. 최고사령부 전선사령관은 당 중앙위 정치위원이자 내각 부수상인 김책이, 전선사령부 참모장은 북한군 총참모장인 강건이 겸임했다. 최고사령부 작전지휘회의에는 이들을 비롯해 작전국장, 각 군종병종 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앞서 말했듯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할 경우 북한에는 최고사령관을 대신할 자격이 있는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시 최고사령관 대행은 당 관료보다는 전시상황에 맞게 최고사령부를 구성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중에서 선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사작전에 대한 능력을 갖춘 인물은 더욱 유리한 위치에서 최고사령관 대행자격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6·25전쟁 당시 북한 정규군의 규모는 20만명 안팎에 불과했다. 현재의 북한군이 100만명 이상임을 감안하면 유사시 전시 최고사령부의 구성은 6·25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할 것이다. 예컨대 1950년에는 하나뿐이던 전선사령부의 경우 동부·중부·서부·후방·동해안·서해안 등 6개로 나뉘어 구성될 것이다. 각 전선사령부는 몇 개의 군단으로 구성되어 그중 선임군단장이 전선사령관이 된다. 최고사령부 수뇌부의 핵심적인 임무는 바로 이들 전선사령부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현재의 인민군 체계가 그대로 최고사령부 체계로 반영될 경우 최고사령관 대행은 조명록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겸 총정치국장이, 부사령관은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은 김영춘 총참모장이 맡아야 한다. 여기에 각 군종병종 사령관과 작전국장, 통신국장 등이 최고사령부의 수뇌부를 구성하고, 미사일지도국이 최고사령부 직속으로 편성될 것이다. 특히 김영춘 총참모장 예하에는 정규군인 조선인민군뿐 아니라 인민보안성의 조선인민경비대와 민간무력인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인민유격대가 편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군사적 효율성’

    따라서 북한의 전시 대비체계의 핵심인 최고사령관을 대행할 만한 북한군 인사는 군내 서열 2위이자 총정치국장인 조명록이다. 그러나 조명록에게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우선 고령의 나이와 건강이상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더 이상 수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각종 기념대회에 참석하더라도 연설을 하지 않으며 평양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상적인 업무를 관장하지 못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결국 현실적으로 최고사령관의 임무와 권한·역할을 대행할 수 있는 인물은 100만 북한군의 군사작전을 실무적으로 지도해온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군사적 효율성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북한군은 지상군 중심의 군대로, 해공군이나 평양방어사령부, 특수부대나 민간무력조차 지상군 작전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오직 미사일훈련지도국만이 전략부대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있어 그 운용을 최고사령부 작전지휘회의에서 결정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군사작전을 감당하는 역할을 수행해온 사람은 김정일 위원장을 제외하면 당중앙군사위원회를 통틀어 김영춘 총참모장 한 사람뿐이다. 급박한 전시상황에서 김 위원장 유고의 경우 그가 최고사령관 대행으로 옹립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당 중앙군사위원회에는 이외에도 실력자가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이을설 호위사령관이나 박기서 평양방어사령관 등은 정규군의 명령·지휘체계에서 일정 정도 벗어나 김정일 위원장의 예비부대 성격이 강한 부대를 이끌어왔다. 이들로서는 정규군 군사지휘관인 최고사령관을 대행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김명국 전 작전국장 등 비교적 젊은 군부 지도자들은 현재 일개 기계화 군단장에 불과하므로 최고사령관 직위를 수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간 북한의 해군사령부는 일개 군단장급에 불과했기 때문에 해군사령관 출신인 그가 1998년 인민무력부장에 기용된 일 자체가 일종의 파격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유고 상황에서 100만 지상군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직 대행의 권한을 행사하려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더욱이 북한 인민무력부는 부대를 지휘하거나 통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극렬의 한계

    앞서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는 오극렬 당 작전부장이 막후권력의 핵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전시상황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군이 아니라 당 인사인 오극렬이 인민군 최고사령관 대행직을 수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군사작전에 능한 그는 현재 북한군 수뇌부 인사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막후역할을 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최고사령관 대행이 되려면 매우 큰 부담을 져야 한다. 우선 기존의 빨치산 출신 군 원로들과 갈등관계에 있을뿐더러, 현재는 군을 예편한 상태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나 국방위원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극렬이 정권 전면에 나서려면 명분상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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