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멕시코 칸쿤 골프클럽

멋진 풍광 속 ‘바람 스승’에게 한 수 배우다

  • 김맹녕 한진관광 상무, 골프 칼럼니스트 kalgolf@yahoo.co.kr

    입력2006-11-06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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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멕시코의 칸쿤 골프클럽은 18홀 내내 호수와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라운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린 깃대가 휘어져 땅에 닿을 정도로 바람이 거세 코스 공략이 결코 만만치 않다.
    멕시코 칸쿤 골프클럽
    비행기가 멕시코시티를 이륙한 지 2시간 만에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는 칸쿤(Cancun) 공항에 도착했다. 멕시코 전통복장을 한 아가씨가 생강꽃으로 만든 흰 레이(lei)를 목에 걸어줬는데 그 향기가 여간 진하지 않았다.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니 바다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친다. 멕시코 남부 유카탄 반도 끝자락에 자리잡은 칸쿤 해안은 멕시코 정부가 1970년부터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를 의식해 개발한 세계적인 해변 휴양지다. 마야문명 최대 유적지인 치첸이사(Chichen Itza)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연평균 기온이 28℃이고 습도가 낮아 사계절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지렁이처럼 구부러진 해변을 따라 세계적인 특급호텔과 리조트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데, 연 250만명이 이곳을 찾아 멕시코 전체 관광수입의 30%를 올려준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짧은 바지로 갈아입고 카리브해의 푸른 물결이 끊임없이 밀려와 흰색 포말로 부서지는 순백의 해변을 걸었다. 해변 카페에서 마티니 한 잔을 마시며 흰구름이 한가롭게 떠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밤이 되자 유흥가의 요란한 조명과 가로등 불빛이 호수에 드리워져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어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산호초 섬 위의 골프장

    창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아침햇살에 깨어나 맨발로 해변을 걸으니 상쾌하기 그지없다. 가벼운 아침 산책은 여행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기에 그만이다. 호텔 뷔페식당에 들어가니 멕시코 음식과 각종 과일이 지천이어서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가벼운 시장기가 돌아 이것저것 먹어보다 작은 멕시코 고추를 하나 입에 넣으니 매우면서도 상큼해 텁텁했던 입안이 금세 개운해진다.

    낭만과 휴양의 도시 칸쿤에서 골프를 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다. 더운 날씨여서 골프복장으로는 짧은 바지가 편한데, 혹시 드레스코드(dress code)로 인해 클럽하우스 입구에서 출입을 제지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호텔촌과 호수를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중앙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20여 분 달리니 칸쿤 골프클럽이 나타난다.

    흰색의 나지막한 클럽하우스에 들어서자 멕시코 모자에 수염을 기른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반바지가 괜찮으냐고 묻자 “여기는 수영복도 좋다”고 조크를 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골프장은 골퍼들로 붐볐다. 칸쿤에는 골프장이 힐튼 골프클럽과 칸쿤 골프클럽밖에 없는데, 힐튼 골프클럽은 보수공사 중이라고 했다.

    칸쿤의 자나 레라존에 있는 칸쿤 골프장은 내륙의 호수와 카리브해 사이에 떠 있는 T자 모양의 산호초 섬 위에 만들어져 있어 18홀 내내 호수와 바다를 보며 라운드할 수 있는 낭만적인 골프장이다. 1976년 로버트 트랜 존스 주니어가 해변 경관을 그대로 살려 설계한 것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도전의욕을 자극하는 자연친화적 골프장으로 평가받는다. 18홀 파 72, 전장 6750야드로 국제규격을 갖췄다. 이곳을 찾은 골퍼들은 칸쿤 지역에 머무는 호텔 고객이 대부분이어서인지 멕시코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백인이었다. 가끔 일본인이나 한국인 몇 명이 눈에 띌 정도다.

    일행 3명이 각자 미화 150달러의 그린피를 내고 1번 홀 스타터로 이동하니 얼굴이 까무잡잡한 캐디가 우리를 반겼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캐디가 “쟈폰니스(일본인)?” 하고 물어 “노, 코리언”이라고 하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고 발로 축구하는 시늉을 하며 연신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외쳐댄다.

    멕시코 칸쿤 골프클럽

    칸쿤 골프클럽은 방풍림 하나 없는 탁 트인 평야에다 물 위에 떠 있는 코스다. 바람이 강하고 방향이 수시로 바뀌니 홀림현상이 생겨 아마추어 골퍼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코스로 나가 1번 홀에서 바다를 향해 힘찬 티샷을 날렸다. 눈과 가슴이 시원해져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머리 위에는 긴 날개를 퍼덕이는 검은 물새들이 괴성을 지르며 선회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흰갈매기떼가 무리를 지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주변 호수에서는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물 위를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느라 연신 점프를 해대는데 이 움직임이 햇빛에 반사돼 은색의 향연을 연출한다.

    바람에 눕는 깃대

    2번 홀에 들어서니 좌측으로 넓은 바다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바다 건너 칸쿤시 관리 청사에는 대형 멕시코 국기가 바람에 휘날린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해 해변을 거니는 이 자유로움. 이 넓은 녹색 정원이 나만을 위해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아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3번 홀에 들어서니 바닷바람이 점점 더 거세진다. 산이 물의 흐름을 막지 못하듯 인간의 힘으로 바람을 막을 수는 없다. 옆 홀의 그린 깃대가 휘어져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이렇게 거센 바람 속에서 골프를 친 것은 일본 오키나와 섬에서 가을 태풍 때 경험한 이래 처음이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아마추어 골퍼들은 대개 힘으로 정면 돌파하려고 한다.

    물고기는 정면으로 물을 거스르지 않고 주당(酒黨)은 술과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적인 프로들은 강한 바람 앞에 맞서 도전하기보다는 자세를 낮춘다. 바람과 타협하는 현명한 샷을 한다는 뜻이다. 기술적으로 앞바람 앞에선 탄도가 낮은 볼을 쳐야 하고, 반대로 뒤바람일 때는 티를 높게 꽂고 높은 탄도의 공을 쳐 바람에 공을 실려 내보낸다.

    코스의 맨 끝에 있는 5번 홀은 파3 홀로 170야드다. 티잉그라운드에서 티를 꽂는데 어찌나 바람이 강한지 날아갈 것 같다. 평소 5번 아이언으로 치면 충분한 거리지만 두 클럽 크게 3번 아이언을 잡았다. 낮은 탄도의 공을 치기 위해 공을 중앙에서 약간 옮겨 오른발 쪽에다 놓고 풀스윙을 했지만 높이 솟구쳐 오른 공은 앞바람 탓에 100m도 날아가지 않고 중간쯤에 떨어졌다.

    다시 9번 아이언으로 온 힘을 다해 세컨드 샷을 쳤지만 역시 거리가 짧아 앞 벙커에 빠져버린다. 벙커 샷을 하니 모래가 온몸으로 날아와 머리부터 신발까지 모래투성이이다. 바람은 그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린에서 퍼트를 하기 위해 마크를 하고 공을 내려놓으니 바람에 밀린 공이 자꾸만 움직였다. 그린에서 긴 거리의 앞바람 퍼트는 바람의 저항을 받아 덜 굴러가고, 뒤바람일 때는 조금만 건드려도 떼굴떼굴 잘 굴러간다. 바람이 세게 부는 탓에 감각이 무뎌져 거리 맞추기가 쉽지 않다.

    7번 홀에서는 티를 높게 꽂고 드라이브 샷을 날렸다. 강한 뒤바람을 타고 350야드 정도 날아간 것 같다. 앞바람일 때는 200야드 남짓밖에 안 나가 자존심이 좀 상했는데, 그나마 뒤바람에서 이 정도 비거리를 내니 어깨가 으쓱으쓱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은 거리 130야드를 피칭웨지로 공략했더니 공은 뒤바람을 타고 그린을 훌쩍 넘어가 바닷물 속으로 빠져버린다.

    매번 샷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은근히 짜증이 난다. 방풍림 하나 없이 탁 트인 평야에다 물 위에 떠 있는 코스여서 수시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다보니 홀림 현상이 생겨 어떤 클럽을 잡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옆바람이 불 때는 군대에서 소총사격할 때처럼 오(誤)조준을 해야 바람을 타고 공이 그린에 떨어진다. 캐디는 이곳에서 25년째 일을 해서인지 코스에 대해 소상이 알고 있어 공격해야 할 목표를 정확히 알려주지만 공이 마음대로 날아가질 않으니 그저 애만 태울 뿐이다.

    강한 바람 속 그린 공략 요령

    8번 홀에 들어서니 전망 좋은 해변을 따라 멕시코 원주민들의 초가집처럼 생긴 고급 주택들이 늘어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전반 9홀을 마치고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멕시코 음식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스코어를 따져봤더니 동행한 사람 모두 바람 탓에 점수도 엉망이고 골프도 재미없다고 투덜댄다. 필자도 ‘바람만 안 불었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골프 대가 벤 호건의 명언을 떠올려보았다.

    멕시코 칸쿤 골프클럽

    칸쿤 골프클럽이 위치한 멕시코 칸쿤 해안은 세계적인 휴양지이자 마야문명의 최대 유적지 치첸이사가 있는 곳이다.

    ‘바람이야말로 좋은 스승이다. 바람은 우리에게 다양한 샷을 구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정신적으로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니 바람이 분다고 불평하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여라.’

    골퍼는 누구나 바람을 싫어한다. 골프가 잘 안 될 때 둘러대는 핑계 108가지 중에 바람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벤 호건의 지론대로 바람을 탓하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후반 9홀에선 좋은 스코어를 기대했다.

    10번 홀 티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이곳 전속 프로가 같이 라운드하고 싶다고 해 함께 후반 라운드를 시작했다. 후레라고라는 이 멕시코 PGA프로는 그 거센 바람 속에서도 어떻게나 잘 치는지 얄밉기까지 했다. 앞바람일 때는 얕은 공으로 그린을 직접 공략하고 뒤바람일 때는 그린 앞 5∼10m 앞에 공을 떨어뜨린 뒤 굴려서 온그린시켰다. 옆바람일 때는 오조준 대신 바람의 방향에 따라 페이드 샷이나 스로볼로 그린을 공략해 우리 일행은 그의 샷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치냐고 묻자 “이곳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어 매일 바람과 더불어 라운드를 하다보니 바람에 적응이 됐다”며 “내년부터는 미국 PGA에서 활동할 계획이니 성원해달라”고 한다. 그는 한술 더 떠 자신은 비바람 등의 악조건에서 우승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날씨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바람 부는 날 골프 잘 치는 비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핀이 비스듬히 기울 정도의 바람 속에서 공을 컨트롤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몸을 유연하게 해 부드러운 스윙을 하라고 권한다. 앞바람이 분다고 순간적으로 힘을 주면 심한 슬라이스나 훅이 나기 때문에 그냥 드라이버를 공에 댄다는 느낌으로 치라고 한다. 또한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은 아이언샷을 찍어 치는 펀치 샷으로 하면 공중에서 백스핀이 걸려 거리가 나오지 않으니 쓸어치라고 충고했다. 더불어 바람 부는 날의 그린 공략 요령도 일러줬다.

    ▲전체적인 바람의 방향을 확인한다.

    ▲그린의 깃발이 어느 쪽으로 펄럭이는지를 본다.

    ▲그린 주변의 나뭇가지나 수면의 물결도 참고한다.

    ▲잔디나 나뭇가지를 날려 풍속을 측정한다.

    ▲핀의 위치를 보고 클럽의 숫자를 가감하되 항상 그린 주변의 해저드 상황을 보고 안전 위주로 간다.

    ▲강한 앞바람일수록 평소보다 한 템포 늦추는 스윙을 한다.

    ▲바람을 탓하며 감정을 폭발시키면 리듬이 깨져 균형감각을 잃기 때문에 스윙이 빨라져 샷을 망친다. 따라서 느긋한 마음을 갖는다.

    ▲되도록 클럽을 짧게 잡는다.

    ▲해안가 골프장은 염분의 영향으로 페어웨이나 그린이 딱딱하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거리 계산과 샷을 한다.

    그의 원 포인트 레슨을 머리에 새기고 마지막 390야드 파4 홀에서 앞바람인데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드라이버를 공에 갖다 대니 똑바로 200야드를 날아갔다. 남은 거리가 190야드여서 3번 우드를 잡아들었는데 바람이 더욱 거세져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공을 오른발 쪽에다 놓고 클럽을 가볍게 올려 샷을 하니 볼이 페어웨이를 따라 낮게 날아간다. 그린 주변에 놓인 볼을 칩샷하니 스핀이 걸리면서 핀에 가서 붙는다. 나의 샷을 지켜보던 후레라고가 “나이스!”를 연발한다.

    골프는 이렇게 노력과 요령에 따라 훌륭하게 변할 수 있다. 골프의 기쁨과 만족은 그것을 구하려는 단계에서 배움이 이뤄졌을 때 온다.

    그린은 ‘시련 통제력 시험장’

    오늘도 칸쿤에서 골프철학과 교훈을 얻었다. 광활한 대자연 속에 만들어진 골프코스 18홀은 시련을 통제하는 능력과 기술을 시험하기 위해 골퍼를 기다리고 있다. 그 난항을 헤쳐 나가는 능력은 개인의 몸과 마음 상태에 달려 있다. 다잡은 마음가짐과 요령을 가지고 대처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결과는 스코어에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은 바람을 상대로 좋은 경험과 기술을 연마하게 되어 기뻤고 덕분에 골프 기량이 한 단계 더 향상된 것 같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다시 코스에 나간다면 성격이 느긋해지고 마음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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