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본인 발주, 본인 수주’ 논란 소송, 이정우 전 청와대정책실장 패소

김재원 의원 “이 전 실장,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며 고소한 뒤 ‘소 취하’ 제의”

  • 김재원 국회의원·한나라당 jwkim@assembly.go.kr

    입력2006-11-14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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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12월9일 이정우 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나를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 10월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내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의 전개과정을 밝히고자 한다.
    ‘본인 발주, 본인 수주’ 논란 소송, 이정우 전 청와대정책실장 패소
    누구든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이를 회복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대통령도 소송을 제기하는 우리나라에서 공직자의 소송을 무턱대고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공직자가 자신의 공적 업무에 대한 국민의 문제 제기를 개인의 명예훼손으로 규정해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는 논란이 있는 일이다.

    2005년 8월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가 발주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협의 모형연구’라는 용역비 3000만원의 연구용역을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수의계약으로 수주한 사실을 공개했다. 필자는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밝힐 것을 요구했으며,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부도덕한 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 정권 들어 ‘위원회 공화국’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정부 내에선 위원회가 많이 늘었다. 10여 개의 대통령자문국정과제위원회는 각 부처가 가진 의결권, 심의·조정권과 상충하며 총리의 헌법상 내각 통할권이나 국무회의, 관계 장관회의를 무력화하는 옥상옥(屋上屋)의 기구라는 논란이 제기되어왔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감사원은 대통령자문위원회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어지간하면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 과정에 필자는 예산집행명세를 결산하면서 대통령에게 자문하기 위해 설치된 국정과제위원회의 위원장이 본인에게 수의계약으로 업무와 관련된 용역을 준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일이 지난 2005년 9월17일 ‘신동아’는 필자의 예결위 질의를 인용해 이정우 전 정책기획위원장의 재직 중 정책기획위원회 연구용역 수주 사실과 이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내용을 보도했다. 한나라당 김대은 부대변인은 이 보도가 나간 후 ‘혈세(血稅)도둑’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정우씨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며 “국제약속을 지키기 위한 공식 업무’를 ‘혈세도둑’으로 매도했다”고 공개리에 주장했다. ‘청와대브리핑’이 이를 신속히 전했다. 또 이를 여러 언론이 받아서 보도했다.

    이정우씨는 예고대로 12월5일 필자와 김대은 부대변인, ‘신동아’ 기자, 동아일보, 동아닷컴의 대표자 등 7명을 상대로 1인당 2억원씩 모두 1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씨가 손해배상청구 소장에서 밝힌 핵심은, 연구용역은 전임 이종오 정책기획위원장 시절에 위원장이 자신을 포함해 경영자단체, 노동계, 대학교수 등 학계를 망라한 전문가들을 연구위원으로 위촉해 해외시찰 용역 계획을 잡은 것인데 이종오 전 위원장이 퇴임하고 자신이 신임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연구대표를 승계했을 뿐이어서 대외적으로 연구용역 공모를 한 뒤 다른 공모자를 제치고 수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송 취하할 테니 동의해달라”

    이씨의 주장에 구구절절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변호하게 마련이다. 필자는 성격상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 좀 사정이 달랐다. 그는 공인(公人)이었고, 그저 자신을 변명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필자를 상대로 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도 변호사를 선임해 적극적으로 재판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정우씨의 주장 중 전임자인 이종오씨가 정책기획위원장 시절 이 용역 계획을 수립했고 자신은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임명된 이후 이 계획을 승계했다는 부분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는가. 이정우씨는 전임 위원장의 계획을 승계한 것뿐이며 용역 수주 계약은 본인이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우씨는 “정책기획위원장은 무보수, 비상근”이라고 했다. 필자는 청와대 측에 정책기획위원장에게 나간 예산 명세를 요구했으나 청와대는 무응답이었다. 정부의 2004년도 세입세출예산 각목명세서에는 2004년 한 해 동안 정부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에게 장관급 월정직책급 1230만원, 위원장실 업무경비 6000만원 등 793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돼 있다. 대통령자문위원회는 회의 참석자에게 회의수당을 지급하므로 이씨도 이를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는 있지만 청와대측은 아직도 이씨의 수입 명세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소송과정에서 이정우씨는 직책급은 보수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직책급은 위원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소요되는 경비를 책정하여 지급한 것이고, 직무수행의 대가로 지급되는 보수라고 할 수 없다. 보수라고 함은 직무수행의 대가로서 직무수행자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되는 금전적 이익을 말하는 바 직책급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지출되는 것이고 직무수행자에게 귀속되는 것은 아니므로 보수라고 할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정우씨가 필자를 상대로 무리하게 소송을 벌인 이유는 그로부터 한참 후 알 수 있었다. 소송이 진행되던 2006년 7월경 필자의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정우씨 변호인측이 “소송을 취하하고 싶으니 소(訴) 취하에 동의를 해달라”고 요청해왔다는 것이다. 민사소송법상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소송을 취하하고 싶을 때는 반드시 피고측 동의를 구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소송을 당한 사람의 처지에서는 원고가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하면 골치 아픈 송사에서 해방되는 것이므로 얼른 취하에 동의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마음껏 때렸으니 그만 싸우자”?

    필자의 문제 제기는 ‘정부 예산 집행(대통령자문기구의 용역 발주)에 대한 감시’라는 국회의원의 정상적 의정활동이었다. 또한 그 내용도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 의견표명이었다. 특히 필자가 이정우씨의 용역수주의 부당성을 제기한 자리는 국회 회의석상이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한 발언에 대해서는 헌법상 면책특권이 인정된다. 국회의원이 권력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독립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헌법상 보장한 것이다. 유성환 전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한민국은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 국시다”라고 발언하여 문제가 된 이른바 ‘국시(國是) 발언’ 사건 이후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발언하면서 이를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경우에도 면책특권이 광범하게 인정된다’는 것은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로 굳었다.

    ‘본인 발주, 본인 수주’ 논란 소송, 이정우 전 청와대정책실장 패소
    김재원

    1964년 경북 의성 출생

    서울대 법대 및 동 대학 행정대학원 졸업

    1987년 31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1994년 36회 사법시험 합격

    부산지검 검사, 국무총리실 행정사무관

    現 제17대 국회의원(한나라당),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장관급의 대통령 최측근 자문위원장을 지낸 인사가 이런 국회의원의 공무 활동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물어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내용으로 공개리에 공격하다가 사건이 잠잠해지자 소송을 취하할 테니 동의해 달라면서 ‘이제 나는 마음껏 때렸으니 그만 싸우자’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판결을 받아보겠다”며 소 취하 동의를 거부했다. 법원에 재판을 계속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법원은 원고(이정우) 패소 판결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공무와 관련된 일이고 어느 정도의 타당성 있는 문제 제기라면 수용하고 포용하는 것이 공직자의 바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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