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호

美 정보기관 개혁 논란 점입가경

“평양 잠입시킬 아시아계 CIA 요원을 찾아라!”

  • 송홍근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11-09 18: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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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식 조직만 16개 정보기관으로 구성된 미국의 ‘정보공동체’. 인간정보·신호정보·영상정보 분야별로 기관을 운영하며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던 미국의 정보조직 운영철학은 9·11테러의 정보 실패를 계기로 180도 변화했다. 기관 간의 상호 운용성을 강화하고 효율적인 중앙통제를 추구하던 개혁의 방향은 CIA와 국방부의 논란을 거쳐 요원 수준의 근본적 개혁으로 옮겨갔다. 일각에서는 극단적인 효율성 추구가 군국주의의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비판도 제기되는데….
    美 정보기관 개혁 논란 점입가경
    서울 종로구 세종로 주한 미국대사관 5층엔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가 있다. CIA 한국지부의 공식명칭은 ORS(Office of Regional Studies·지역조사과). 10월2~4일 열린 남북정상회담 기간에 이곳은 끼니때 요릿집처럼 바빴다. 평양발로 쏟아지는 ‘속보’를 영역해 실시간으로 CIA 본부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CIA 요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미국 대사관의 ORS 팀원들도 모른다. “CIA 자금으로 유학을 다녀온 한국인(이른바 ‘CIA 장학생’)들이 ‘블랙(활동국의 정보기관에 신상을 드러내지 않은 스파이)’으로 일한다”는 바람결의 소문도 있다.

    CIA 한국지부가 배출한 전설적인 인물로는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이 있다. 1970년대 CIA 한국지부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박정희 정권의 핵 개발 계획을 알아내는 큰 공적을 세웠다. 박정희 정권의 한 관계자로부터 핵 개발과 관련한 극비 자료를 통째로 입수해 본국에 보고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한국 정보를 수집하는 미국의 IO(Information Officer)는 CIA의 ‘블랙’, ‘화이트(활동국의 정보기관에 신상이 알려진 스파이)’만 있는 게 아니다.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전세계에 배치된 미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정보부대가 획득한 인간정보, 영상정보를 취합한다. 국무부의 정보조사국(INR)도 한국 정보를 취합한다. 그뿐인가. 미 국가정찰국(NRO)은 자체적으로 첩보위성을 운용해 사진정보와 통신정보를 수집해 CIA와 국가안보국(NSA)에 제공한다. NRO는 출범 후 30여 년 동안 그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은 비밀기구. 1961년 설립됐지만 1992년에야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그 존재를 시인했을 만큼 비밀리에 운영돼왔다.

    CIA, DIA, INR, NRO, NSA…

    세계 각국의 정보를 흡수하는 통로로는 NSA를 빼놓을 수 없다. ‘정보의 블랙홀’이라고 할 만한 NSA는 전세계에 걸쳐 하루 30억통의 전화를 훔쳐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2년 설립된 NSA는 ‘No Such Agency(그런 종류의 기관 없음)’ ‘Never Say Anything(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이라는 수사에서 알 수 있듯 1990년대까지 그 실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NSA는 유선전화, 휴대전화, 팩스, e메일, 전보, 항공기의 전파를 가리지 않고 수집한다. ‘에셜론’은 통신정보를 획득한 뒤 각국의 사전(dictionary)에서 뽑은 키워드(keyword)로 정보를 분석한다. 당신이 e메일로 “미국을 폭탄(Bomb)으로 공격하겠다”는 편지를 쓴다면 NSA 주도로 이뤄지는 ‘에셜론’이 걸러낼지도 모른다. 때로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학교 연극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had ‘bombed’ in a school play)고 말한 여학생이 에셜론 디렉토리에 폭탄 테러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이름과 전화번호가 등재됐다는 얘기도 있다.

    NSA는 한국에도 SUSLAK(Special U.S. Liaison Advisor-Korea)으로 알려진 거점을 갖춰놓았다. SUSLAK은 한국의 통신감청 부대 777부대에 자금과 첨단 감청 장비를 제공하고 북한에서 획득되는 신호정보를 함께 분석한다. 북한발 정보의 분석력은 민족, 언어상의 이점으로 777부대가 더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밖에 9·11테러 이후 행정부 내 각 부처에 분산된 대(對)테러 기능을 통합해 세워진 매머드 조직인 미국 DS(국토안보부), 연방법 위반행위 수사와 공안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FBI(연방수사국), 항공 및 위성사진 기술문제를 담당하는 국방부의 화상지도작성국(NIMA)도 핵심 정보기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듯 분야별로 운영되는 미국의 정보기구는 공식적으로 총 16개에 달한다. 각각의 기구는 고유의 업무목표와 수행능력, 자신들만의 문화, 신조를 갖고 각개약진해왔다. 실제로 운영되는 정보기관의 숫자는 45개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각 기관에서 수집된 한국 등 세계 각국의 정보는 워싱턴의 행정부 혹은 싱크탱크 관련 인사를 비롯해 CIA, DIA, INR, NRO 등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간다. 한국어 아랍어 중국어 파르시어(이란) 파쉬투어(아프가니스탄) 우르두어(파키스탄)를 구사할 수 있는 IO가 특히 주목받는다는 최근 소식은 이들 기관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신경망을 뻗치고 있음을 방증한다. 가히 ‘제국’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美 정보기관 개혁 논란 점입가경

    2005년 12월 미국 ‘뉴욕타임스’가 공개한 NSA의 주요 도청기지.

    흔들리는 ‘견제의 원칙’

    그러나 이렇듯 막강한 조직과 엄청난 예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9·11테러를 막아내지 못했고, 이는 워싱턴 고위당국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건 이후 벌어진 광범위한 내부감사와 조사를 통해 9·11은 미국 정보기구들의 대표적 ‘정보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실태 파악에 실패한 사실이 기름을 부었다. 9·11위원회는 “미국 정보기구들은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불협화음을 냈을 뿐”이라고 평가했으며, 팻 로브츠 상원의원은 “이란이 몇 년 뒤에 핵무기를 갖게 될지 우리는 모른다. 그 답을 전해줄 (정보기관) 사람들 역시 모른다”고 비꼬았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다 한들, 기관 간 공조와 조율이 부실한 상황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자명해진 것이다.

    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정보공동체는 지금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뉴욕타임스’에서 정보기관을 담당하는 팀 와이너 기자는 최근 ‘포린 폴리시’ 9/10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지난 60년 동안 1급 비밀 정보 서비스를 창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숙련된 분석관과 용기 있는 공작관으로 구성된 새로운 정예부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보공동체 개혁에 나선 미국의 목표는 “정보기구 간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개혁의 방향은 크게 네 가지다. ▲정보공동체 통합 강화 ▲정보기관 간 협력 확대 ▲정보공동체의 문화 개선 ▲최첨단 기술정보 도입이 그 것. 반대로 일각에는 이러한 개혁이 군국주의적, 제국주의적 정보독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 토대 위에 세워진 미국 최초의 정보기관은 CIA다. CIA는 1947년 7월26일 트루먼 당시 대통령이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에 서명하면서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미국에 법률적 근거를 가진 정보기관은 없었으며 정보·국방·대외정책 기구는 분리돼 있었다. 정보기구의 조직화는 미국적 가치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CIA가 출범하는 데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CIA가 창설된 이유는 제2의 진주만 기습을 예방하면서 미래 전략 구축에 필요한 정보를 대통령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동안 어떤 정보기관에도 ‘정보 독점권’을 주지 않았다. 그물처럼 얽히고설킨 조직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해온 것이다.

    정보는 인간정보(HUMINT·Humane Intelligence), 신호정보(SIGINT·Signal Intelligence) 영상정보(IMINT·Image Intelligence)로 크게 나뉜다. CIA는 그중에서 인간정보(미국내 인간정보는 FBI)에 치중했으며, 신호정보는 NSA가 획득했고, 적국의 시설과 움직임을 촬영하는 영상정보는 NRO의 몫이었다. ‘정보 독재’를 막으려면 HUMINT, SIGINT, IMINT가 각기 다른 기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에서 분리된 것이다. 그래야만 대통령이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이 ‘견제의 원칙’은 가장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물처럼 얽힌 조직이 정보 분석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비등했다.

    CIA와 국방부의 주도권 싸움

    정보기관들의 협조는 9·11테러 당시 납치범들에 대한 정보 교류의 난맥상에서 드러났듯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CIA 사람들은 미국내에서 테러범들을 추적하는 일은 FBI 소관이라고 떠넘긴다”고 꼬집으면서 “미국의 정보기관 조직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복잡해져서 결국엔 호환성 없는 컴퓨터들이 뒤엉킨 것처럼 지휘계통이 엇갈린다”고 지적했다. 16개 정보기구의 조율자는 명목상으로는 CIA 국장(DCI·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이 담당하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실질적인 협조·협력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정보 및 해외 정보의 수집과 정보분석을 통합, 조정하는 기구가 세워져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CIA는 정보예산의 80%를 쓰는 펜타곤과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결과는 펜타곤의 ‘완승’이었다. 2004년 16개 정보기구를 지휘 감독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CIA의 ‘맏형’으로서의 위상은 추락했다. DNI가 정보관련 예산을 감독하고, 국내와 해외의 정보활동을 지휘하는 구실을 맡게 된 것. DNI의 초대 국장은 1980년대부터 국방부의 공작업무를 수행해온 존 네그로폰테 현 국무부 부장관이 맡았다.

    美 정보기관 개혁 논란 점입가경

    2006년 5월 마이클 헤이든 CIA 국장 지명자가 상원 인준청문회에 출석해 선서하고 있다. 현직 공군 대장으로 CIA 국장에 임명된 그의 신분을 두고 워싱턴에서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

    9·11 이후 정보기구 개편의 주도권을 두고 CIA와 펜타곤의 다툼은 치열했다(CIA는 전체 정보예산의 10%, 펜타곤은 80%를 사용). 국방부 예산으로 운용되는 NSA의 불법 도청 사실을 언론에 흘린 것도 CIA였다. 2002년 3월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이끄는 대통령자문위원회는 “국방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NSA, NRO, NIMA가 CIA 국장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9·11 테러 이후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CIA 처지에선 ‘우군’을 만난 셈이었다.

    그러나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은 역공에 나서 방위법안에 방위정보 차관직을 신설하는 내용을 집어넣고 3대 기관뿐 아니라 DIA까지 관할하게끔 했다. 럼스펠드의 이 조처와 관련해 ‘뉴욕타임스’(2002년 10월24일자)는 “럼스펠드는 또 하나의 CIA 국장을 두고 다용도로 쓰려 한다. 울포위츠(당시 국방부 부장관)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결론을 뒷받침하지 않는 분석은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CIA는 (그들에게) 적일 뿐이다”라고 보도했다. 이후 DNI를 신설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펜타곤은 CIA와 벌인 헤게모니 다툼에서 마침내 승리한다. ‘중앙’정보국(CIA)은 더 이상 정보기구의 ‘중앙’이 아닌 존재로 전락했다.

    외국 시장에서 입씨름할 수 있는 요원

    CIA의 위상은 냉전이 종식된 이후 하향세를 걷고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예산과 인원이 크게 줄었다. 1993년 정치첩보 위주에서 경제첩보 위주로 역할 전환을 선언했고, 미국이 보유한 첨단기술의 유출을 막고 각국의 기술 동향을 파악하는 새로운 임무에 방점을 찍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CIA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하면서 사기 저하, 사명감 실종으로 이어졌다. 조지 테넷 전 CIA 국장은 최근 발간된 회고록에서 “내가 부장으로 임명된 1997년 무렵 CIA는 ‘불타는 플랫폼’이었다. 폭풍 치는 바다에 떠다니는 불붙은 석유시추선과 같았다”고 밝힌 바 있다.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9·11테러는 이렇듯 하향추세에 있던 CIA의 예산을 반등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숙련된 인력의 절대 부족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 CIA에서 일하는 분석관, 공작관 중 절반가량이 9·11 이후에 채용됐는데, 40~50대 요원들의 자리를 메운 이들이 생산하는 국가정보평가(NIE·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s)의 수준은 회의적이다. 근무 연한이 10~14년인 분석관은 근무 연한이 4년 미만인 분석관 10명당 1명꼴에 그친다. “CIA에는 속사포처럼 빠른 아랍어를 공부할 계획이 있거나 외국의 재래시장에서 값을 흥정하면서 입씨름할 수 있는 요원이 거의 없다. 미국의 젊은이 가운데서 이 같은 외국어 능력을 보유한 사람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CIA 국장인 마이클 헤이든 장군은 CIA 역사상 가장 미숙한 요원들과 개혁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포린 폴리시’는 꼬집었다.

    CIA는 특히 아랍어와 한국어, 파쉬투어, 우르두어 등의 구사 능력을 가진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을 공작관으로 북한에 침투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 CIA 고위관리는 밝힌 바 있다. 사설 안보전문 기관이 속속 등장하면서 요원들의 민간업체로의 ‘이직 러시’도 일어나고 있다. 스파이 활동에 매력을 느끼는 미국의 젊은이도 크게 줄었다. ‘뉴욕타임스’의 와이너 기자는 “미국 젊은이들 가운데 정보기관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면서 “보렌 장학금(안보담당 국가공무원을 육성하기 위한 장학금)을 현재의 200만달러에서 5년간 200억달러로 증액해 10만명의 고교생에게 파르시어, 한국어, 파쉬투어, 우르두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매코넬의 공개선언

    정보기관의 컨트롤타워 격이던 CIA 국장의 대통령 일일보고가 DNI 국장에게로 넘어간 것은 CIA 몰락을 상징적으로 웅변하는 사건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매일 직보하는 마이크 매코넬 현 DNI 국장은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스파이 중의 스파이’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예비역 해군 중장으로 25년간 군 정보분야에서 일했다. 1차 걸프전 때 정보담당관으로 일하면서 당시 국방장관이던 딕 체니 부통령과도 가까워졌다. 펜타곤 예산으로 운영되는 NSA의 국장도 역임했다. 그런 그가 DNI를 이끌면서 정보공동체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기관과 관련해 미국은 ‘군국주의 국가’로 바뀌었다고 할 만하다. 공군 대장인 마이클 헤이든 CIA 국장을 비롯해 16개 기관 중 절반이, 그것도 핵심기관의 책임자가 군 출신으로 채워졌다. 국방부가 미국의 정보기관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된 셈이다(현역 공군 대장에서 CIA 국장으로 임명된 헤이든은 펜타곤 정보조직에서 커리어를 쌓았으며 DNI의 부국장을 지냈다. 펜타곤이 CIA를 ‘접수’한 셈이다. 그는 DNI 부국장 시절 “CIA의 역할은 대(對)테러 전쟁과 해외정보 수집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 정보기관의 ‘펜타곤 종속화’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군사적 해결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마련인 펜타곤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이 군국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은 9·11 직후 알 카에다와 사담 후세인 정권과의 연계를 찾으려고 펜타곤에 특수정보조직을 만든 적이 있다. 그러나 펜타곤과 달리 CIA는 알 카에다와 후세인이 연계돼 있다고 분석하지 않았다.

    매코넬 국장 체제의 DNI는 16개에 이르는 정보기구들의 통합 강화를 우선 목표로 제시했다. 정부 관련부처를 아우르면서 정보를 종합하고 대통령의 전술적 결정을 실시간으로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 매코넬 국장은 최근 ‘포린 어페어스’ 7/8월호에 직접 기고한 ‘정비되는 정보기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내 및 해외 정보의 수집 및 분석에서 정보기관 간 통합을 강화하고 정보기관의 협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어떤 정보기관도 독자적으로는 그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알 필요’라는 기준에 따라 ‘반드시 알 필요가 있는 관료’에게만 제한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온 기존 정책을 폐기할 것이다. 정보기관들은 데이터의 소유자가 아니라 제공자임을 자각해야 한다. 개별기관의 능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통합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정보공동체는 하루에 수십억 건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이들 정보는 분석관을 통해 모호함이 사라져야만 정책결정을 도울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될 수 있다.”

    DNI는 올여름부터 유능한 분석관으로 구성된 RASER(Rapid Analystic Support and Expeditionary Response·빠른 분석과 신속한 지원이라고 명명된 분석가 집단)를 분석업무에 투입했다. DNI가 각 정보기관이 생산한 정보를 분석한 뒤 정책결정자에게 보고하겠다는 뜻이다. DNI는 북한과 같은 핵심 정보목표에 대해서는 각 기관 간 조율 기능을 맡은 정보조정관(Mission Manager) 제도를 도입했다. 북한담당 정보조정관(상당수 국내 언론에선 북한담당 관리관이라고 쓰고 있다)은 조지프 디트라니가 맡고 있으며, 대테러정보, WMD(대량살상무기), 쿠바, 베네수엘라 담당 정보조정관도 있다.

    DNI는 정보기관의 고용관행도 바꾸었다. CIA는 보안 누설에 대한 우려로 해외에 가까운 친인척이 있는 이민 1, 2세대를 채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코넬 국장은 “이민 1, 2세대 채용을 꺼린 관행은 정보 전문가를 끌어오는 데 장애가 됐다”면서 “현지어에 능통한 미국인을 적극 채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NI의 이런 방침에 따라 CIA도 아시아계 등 미국내 소수민족 출신의 스파이를 적극 채용하기로 했으며 CIA 산하 국가비밀활동국(NCS)이 올들어 채용한 소수민족 출신의 비밀요원은 전체 채용 요원의 27%에 달한다.

    DNI는 또 생화학 나노기술 정보기술 분야의 첨단 기술을 정보수집 및 분석에 이용할 예정이다. 해외언론, 공개자료의 검색기술을 개발해 IO들의 공개된 정보를 가공하는 데 소모하는 역량을 줄이고, 이동식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이를 위해 DNI는 산하에 획득담당 차장직을 신설했다.

    “군국주의의 신호탄”

    앞서 설명했듯, 건국 이후 미국이 정보기관을 여럿으로 나눠놓은 것은 그들끼리의 경쟁과 견제가 대통령에게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공급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보독점’을 막기 위해 명령계통에 따라서만 정보를 공유하도록 규정한 1947년 국가안보법의 정신은, 2004년 테러방지법이 제정되고 2005년 DNI가 신설되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를 통해 DNI는 조정, 분석을 명목으로 정보·국방·외교를 아우르는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정보기관 위의 정보기관’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자신들의 기능을 확대함으로써 다른 기관의 관료적 기능을 넘겨받으려는 펜타곤의 압력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성으로 불리는 찰머스 존슨 전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를 “군국주의의 신호”라고 표현했다. ‘중앙’으로서의 파워를 잃은 CIA뿐 아니라 FBI, 공중위생국(PHS), 연방위기관리국(FEMA) 등도 군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에 당혹스러워한다는 것이다. DNI가 앞으로도 군부의 영향 아래에 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미국의 정보·국방·외교기구가 통합되어가는 가운데 16개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오로지하는 ‘공룡’의 탄생이 위험의 소지를 안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역사가 증명하듯, ‘극단적인 효율성의 추구’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敵)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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