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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독신의 탄생’

금욕의 두 얼굴

  •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ja1405@chol.com

‘독신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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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불교나 힌두교의 금욕은 기독교의 금욕과 의미가 다르다. 이들 종교는 집착과 소유욕을 고통의 원인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집착과 소유욕을 끊어버리기 위한 노력에서 금욕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금욕은 끝없이 이어지는 윤회의 고통을 종식하고, 신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영적 해방, 즉, 해탈이나 열반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그런가 하면 금욕은 결혼한 여자가 아내와 어머니로서 져야 하는 짐을 벗겨줌으로써, 공부를 하거나 학자가 되거나 공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금욕이 핵심적 가치가 되면서 정통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그리고 그리스도교까지 한편으론 여성을 요물로 보면서 다른 한편으론 성녀로 숭배했다. 금욕을 선택한 여자에겐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준 것이었다. 사실 성과 가족에 대한 관심은 우리를 끊임없이 땅으로 인도한다. 금욕을 통한 독신은 물질세계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게 함으로써 영적인 관심을 가지게 하는 기반이 될 거라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종교공동체를 단단하게 다지는 중요한 믿음체계가 된다.

물론 금욕과 관능을 동시에 상징하는 시바(Shiva)를 존경하는 힌두교는 관능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금욕을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는 재가기(在家期)가 있다. 재가자로 살면서 부부는 성교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영혼의 성숙을 위해 성을 즐기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마하트마 간디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처녀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자신의 의지력을 테스트했듯이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금욕으로 정력을 보존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금욕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금욕을 통해 정액에 담긴 소중한 생명력을 아껴서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세속적 욕망을 포기하고 신과 하나가 되는 해탈의 길에 이르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금욕이라는 것이다.”



정결한 고독이 가져온 여유

문제는 비자발적인 금욕이었다. 근대사회에서 특히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된 혼전순결, 하인과 하녀의 금욕, 가난해서 결혼을 못한 총각의 금욕, 수감자의 금욕, 이들에게 금욕은 고역이었다.

“지금도 매일 6000명의 소녀가 음핵을 절단당하고 있으며, 순결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아까운 목숨이 죽어 나가고 있다. 이렇게 혼전순결을 지키기 위해 자행되는 악랄한 행위는 거의 일방적으로 여자만 당하고 있다.”

이와 같은 비자발적 금욕에 대해 애보트는 분명히 보람보다 희생이 훨씬 크다며 부정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금욕의 역사를 넓게 돌아보고 있는 애보트는 금욕 그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상황에 따라 금욕은 분별 있는 희생일 수도 있고, 악랄한 고역일 수도 있으며 목숨을 지키는 수단일 수도 있고, 영적 계시를 얻는 수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자발적인 금욕을 빼면 그는 금욕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어 자칫 금욕과 독신을 권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해체를 겪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후기자본주의 시대는 독신이 꼭 금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에 독신은 옮긴이 이희재의 말대로 활발한 성적 활동을 하기에 더 유리한 조건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값어치가 있다.

도처에서 성적 이미지의 융단폭격을 맞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에 주변으로 밀려난 금욕이 결코 많은 이가 생각하듯 가련하고 쓸쓸하거나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애보트의 생각이다. 그는 강조한다. 전통적으로 금욕은 신체적 강인함과 지구력을 끌어올리고 집중력과 지력을 연마하는 수련의 길이었음을. 그가 어떤 금욕과 어떤 독신을 긍정하는 것은 그 자신의 체험에서 연유한 것이기에 단단하고 유연하다.

“한때 나도 성에 탐닉하고 몰두한 사람이지만,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정결한 고독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독립과 평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깊이 빠져들었을 때 느꼈던 질투심이나 소유욕에서 해방되니 홀가분하다. 살림에 대한 강박관념에서도 벗어나 여유롭다.”

신동아 200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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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ja1405@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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