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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동래기생’, 구음(口音) 명인 유금선

“봄날에 사랑은 가고 늙은 소리만 남았소”

  • 이미숙 동아일보 주간동아 아트디렉터 leemee@donga.com

마지막 ‘동래기생’, 구음(口音) 명인 유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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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음은 영탄법으로 가고 과거는 과장법으로 남는다던가. 흘러온 길 탄식 없고 노닐던 풍류는 차림새부터가 다르다. 동래의 마지막 예기(藝妓) 유금선의 소리엔 아직 ‘조선의 향취’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 ‘동래기생’, 구음(口音) 명인 유금선

제1회 부산 학축제 공연을 위해 벚꽃 가득 핀 거리로 나선 윤금선씨.

다시 벚꽃 아래 섰다. 남녘에 부는 4월의 첫 바람이 따스운 날이다. 따스움이 다정해도 바람은 바람이리. 참으로 아득히 먼 길이었다. 꽃 이파리 분분히 떨어지는 길을 온 평생 굽이굽이 돌아 다시 선 자리.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허심청. 오늘의 무대가 있는 곳이다.

신라시대 전설에 허심청은 병든 사슴들이 김 오르는 물에 몸을 적셔 병을 고쳤다는, 동래에서 제일 큰 온천이다.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고서에 이규보나 김종직 같은 당대의 문사들이 온천수의 풍취며 약효를 시로 적어 남겼을 만큼 계곡을 낀 아름다운 노천탕이었다. 고려 충선왕 때 지조 높기로 이름난 박효수는 “황홀하게 꿈속에서 무하유향(無何有鄕)을 노는 듯하다” 했던가. 지금은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온천호텔이 ‘허심청’이란 이름을 달고 들어서 있다.

광복 전, 은빛 비늘 반짝이던 청춘들은 이곳에 술을 차고 모여들더랬다. 금정산을 베개 삼아 벚꽃 흩날리던 노천탕은 일제 강점기 때 인공호수로 변했고, 일대 한량들의 좋은 술자리가 되어주었다. 오늘, 예 놀던 춤 동무는 하나 없고 만개한 봄꽃들만 ‘세월은 모두 춘몽일 뿐’이라며 바람에 너풀거린다.

봄이라 반겨줄 임이 있을까. 그 바람에 밀려 분단장하고 나선 참은 아니건만 일흔일곱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꼿꼿이 선 허리가 선(線)까지 곱다. 쓸데없는 나잇살은 애초 지니지 않고 살기로 작정이나 한 양 일생 지켜왔을 단출한 몸피에 얼비치는 과거. 동래의 마지막 예기(藝妓) 유금선(柳錦仙)이 오늘 소리 할 공연은 제1회 부산 학축제 중 하이라이트인 동래학춤의 구음이다.

“떼 부리는 아이 업고 구경들 오소”

이번 학축제는 지역의 문화·예술활동을 기업이 후원하는 메세나운동의 일환으로 호텔 농심·허심청과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가 기획하고 주최했다. 시간이 되자 허심청 앞마당에 들어서는 인파가 엄청나다. 협회 이성훈 사무국장은 동래에 이렇게 많은 구경꾼이 몰린 건 처음이라고 한다. 봄날 일요일, 날도 좋고 꽃도 좋으니 떼 부리는 아이 업고 잠이나 자려는 남편 깨워 구경이나 해보소∼, 청하지 않아도 온 이가 어림잡아 3000이상이다. 동래에서 한다하는 춤꾼들이 모두 나선 무대이니 드라마 재·삼탕해주는 일요일 오후 TV에 비할 바가 아니겠다.

지난해 10월 ‘전무후무(全舞珝舞)’ 공연을 기획해 강선영 김덕명 김수악 문장원 이매방 장금도라는 국보급 원로춤꾼들을 한자리에 모아 찬사를 받은 무용평론가 진옥섭이 ‘시나위에 맞춰 천천히 지팡이를 짚고 나온 한량이 꾸벅 인사하고 지팡이를 내려놓는 순간부터 차마 잊지 못할 춤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한 학춤의 주인공 문장원(文章垣) 옹의 춤과 유금선의 소리가 어우러지기를 기대했지만, 오늘은 동래학춤 군무(群舞)다. 올해 세수 90의 노 명무(名舞)는 축사로 춤을 대신했다.

뜨거운 피 펄떡이는 남자 춤꾼들이 야류(野遊)를 한마당 풀고 나야 학춤 차례가 온다. 그의 무대다. 동래야류는 탈춤이다. 고성 오광대춤이나 봉산탈춤 하회탈춤 같은 타 지역 탈춤보다 대사가 난해하고 연극적 요소가 많다. 예부터 이 지역은 정월 대보름이면 이렇게 신명을 풀어왔다. 동래야류로 시작한 길놀이가 끝나면 내로라하는 춤꾼들이 추는 학춤으로 대보름 밤은 언제나 더 밝았다.

그러나 오늘은 한낮, 학들이 등장한다. 오늘만은 운중백학(雲中白鶴)보다 화중백학(花中白鶴)이다. 흩날리는 벚꽃 아래 노니는 학들을 볼라치니 “덩-기덕쿵더러러러쿵-기덕쿵더러러러”, 따라 어깨 들썩여지니 굳이 천마리 다 접지 않아도 꿈이 절로 이루어질 성싶다. 학춤은 한 명이 출 수도 있지만 최하 다섯 명에서 300∼400명까지 출 수 있는 춤이다. 한 명이 출 때는 호흡과 흐름, 한 획의 느낌이 중요하지만 군무는 다르다. 수십마리의 학이 일제히 깃을 꺾거나 날개를 펴는 찰나의 유속에 관객들은 함께 빠져들고 즐거워한다.

학들의 시나위에 감기는 꽹과리, 징, 장구, 그리고 북 소리. 네 악기가 내는 고르게 꽉 찬 장단은 매정하게 그의 소리를 막아보려 하지만 일순 엇박자로 흐름을 빗기며 곡을 이끄는 유씨의 구음에 뒤처질세라 잦아지는 학들의 발길, 그 걸음 맞춰 굿거리장단도 잦았다가 휘몰아친다.

서울행 KTX 막차가 밤 9시 30분에 떠나던가, 해가 기운다. 시간이 많지 않다. 허심청 인근의 호텔 그릴로 걸음을 재촉한다. 봄 오후를 설레게 한 춤꾼과 소리꾼을 만나기 위해서다. 몸이 부풀면 정신마저 넘칠세라 춤출 적마다 제 살을 덜어냈는지, 가뿐한 몸피마저 꼭 닮은 두 양반은 살아 있는 동래 역사다. 평생을 ‘춤 기운’에 취해 산 노 명무 문장원은 유금선의 구음이 받쳐주지 않으면 춤이 살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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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동아일보 주간동아 아트디렉터 leem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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