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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號 70돌 |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지식인

“MB가 하도 말 안 되는 얘길 하기에…”

환경운동가 최열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MB가 하도 말 안 되는 얘길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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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리우환경회의 계기로 ‘지구적 연대’ 절감
  • ● 4대강 사업 추진 논리는 엉터리
  • ● 가장 결속도 높은 집단이 원전 관계자들
  • ● ‘대재앙’ 핵과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MB가 하도 말 안 되는 얘길 하기에…”
최열(66) 환경재단 대표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환경운동가다. 공해추방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재단 등 주요 환경단체를 창립했고, 동강 살리기 운동, 새만금 방조제 반대 운동, 4대강 반대 운동 등 환경운동을 주도해 왔다. 환경 이슈에 관한 일본, 중국 등 이웃 나라와의 국제 연대를 활발히 모색하기도 했다. 광복 70년을 돌아보면서 최 대표는 빠른 산업화가 가져온 환경 파괴에 주목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문화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민주화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운동가이자 지식인인 최 대표에게 원전과 기후변화 등 주요 환경문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1월 26일 서울 서소문에 있는 환경재단에서 진행됐다.

김호기 1949년에 태어나셨죠? 어느새 예순여섯이 되셨습니다.

최열 만 예순여섯 생일을 지난주에 치렀어요.

김호기 광복 70년을 거의 함께한 셈인데, 소회가 어떻습니까.

최열 제 연배가 시대적으로 보면 마지막 전통 세대 같아요. 어릴 때 인스턴트 가공식품 안 먹고 모유를 먹고 자란 세대인데, 우리보다 한 10년 밑은 우유도 먹고 인스턴트 가공식품을 먹고 자랐어요. 우리는 대가족 제도에서 살았던 반면 지금은 완전히 핵가족 시대에 살고 있어요. 우리 세대는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경험한 세대죠.

김호기 환경문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최열 1970년대 중반 감옥 안에서였어요. 강원대 농화학과를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는데, 그때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앞으로 뭘 할지 고민했어요. 많은 친구가 노동 현실이 열악하니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는데, 저는 전공이 농화학이라서 그걸 살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환경’보다는 ‘공해(pollution)’란 말을 더 많이 썼어요. 당시 일본에서 미나마타병이 심했고, 우리나라도 산업화가 진행되면 그런 질병이 생길 것으로 생각해 공해를 다루고 싶다고 한 거지요. 그랬더니 친구들이 “야 인마, 공해라도 배불리 먹고 싶다” “뭔 이상한 걸 한다는 거야?” 하면서 놀렸어요. 문제는 당시 공해를 공부하려 해도 책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어를 배우고 환경을 다룬 일본책을 구해 3년 가까이 읽었어요.

‘나를 제외한 모든 것’

김호기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입니다. 경제성장에 성공해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고, 유신체제에서 보듯 민주주의를 억압한 군부독재 체제였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습니다.

최열 제가 춘천중학교 시험을 볼 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문제로 나왔어요. 우리가 중학교 시험 볼 때가 (1961년 5·16군사정변 이전인) 1961년 2월이에요. 그러니까 실제로는 군사정권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독자적으로 세운 게 아니라 이전 정권 때의 것을 받아들여서 한 거예요. 당시 개도국이나 저개발 국가에서 그 정도의 경제 발전을 한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정치적 탄압은 지금 사람들이 생각도 못할 정도였어요. 공포정치였지요. 요즘 커피숍 같은 데 가면 환하고 좋잖아요. 그때는 모든 다방이 깜깜했어요. 어둑어둑한 데다가 탁자 밑에 도청장치가 있는지를 살펴볼 정도였거든요. 잡혀가면 ‘박살’날 때였으니까요. 그런 시절이었기에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탄압 문제는 역사적인 재조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호기 1982년 공해문제연구소, 1988년의 공해추방운동연합, 1993년 환경운동연합 창립을 주도했습니다. 이 단체들은 선생의 개인사이기도 하고 한국 환경운동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회운동을 둘러봐도 한 개인의 삶과 사회운동의 역사가 이렇게 일치하는 것은 드문 사례입니다.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한국 환경운동을 이끌어오셨는데요, 선생에게 환경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초창기에는 공해 문제로 시작했을 듯합니다만.

최열 처음에는 환경문제를 오염 문제로 생각했어요. 오염은 우리 인간이나 생명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거지요. 환경이란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에요. 그런데 이 환경이란 말은 인간 중심의 단어예요.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디디고 있는 땅, 먹는 식품,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이런 것들이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너무 나빠졌어요. 우리나라엔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오염이라는 게 특별한 경우 말고는 없었지요. 책도 보고 활동도 하면서, ‘아, 인간 중심의 시스템으로 가는 건 안 된다’ ‘인간도 생태의 한 부분으로 생각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공해 문제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85년 온산병 사건이에요. 울산 온산에 공해산업이 들어와 몇 년 만에 주민 1만 명 중 700명에게 뼈마디가 아픈 병이 생긴 사건이에요. 우리가 이것을 사회문제화해 온산병 논쟁이 일어났고, 결국 많은 주민이 즉각 이주했어요. 저는 온산병 사건에 대해 1985년부터 대학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당시 강연 요청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거든요. 공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 개개인의 의식도 중요하지만, 정부 정책이나 기업 환경이 변화하지 않고는 안 돼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업 감시와 정부 정책 비판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다 터진 게 1991년 페놀 사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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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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