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두환 전 대통령 불법재산환수특위’위원장인 최재성 의원 등이 6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추징금 환수를 위한 촉구대회를 열었다.
그 결과 올해 10월에 만료될 예정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시효가 2020년 10월까지 7년 연장됐다. 또한 추징 대상도 가족을 비롯한 제3자가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불법 재산 및 이러한 재산을 활용해 취득한 재산으로 확대됐다.
그동안 여러 형태로 제안됐던 국회의원들의 개정안을 조정해 만든 이번 법사위 개정안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한 것은 국민 여론에 힘입은 바가 크다. 무엇보다 전 전 대통령이 거액의 추징금을 미납하고 있고 이를 국가가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이 높아지자 국회에서 추징금 납부 대상자가 그 친족에게 이전한 불법재산 및 이를 기반으로 형성한 재산에 대해서도 몰수나 추징이 가능(제9조의2)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이다.
개정법은 특히 불법 재산의 환수 및 세습 방지를 위한 추징 강화에 초점을 뒀다. 검사에게는 몰수·추징의 집행을 강화하기 위해 관계인의 출석 요구, 과세 정보의 제공 요청, 금융거래 정보 제공 요청 및 압수·수색 영장 청구 등에 관한 권한이 부여됐으며(제9조의3), 몰수·추징의 시효는 10년으로 연장됐다(제9조의4).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 추징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견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 역시 뜨거운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 항상 수단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 개정 않아도 시효 연장 가능
이미 입법 배경에서 확인된 것처럼, 이번 법 개정의 주된 논거는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에 대한 추징 필요성이었다. 다만 은닉 재산 추징이 꼭 법을 개정해야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최근 김문수 경기지사는 이번 법 개정에 반대 의견을 표시한 바 있다. 은닉 재산 추징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고, 현행법으로도 추징이 가능한데 굳이 법을 개정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였다. 그의 주장대로 법 개정 없이도 추징이 가능하다면, 이는 불합리한 법 개정일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의 쟁점을 정확히 분석하려면 추징의 대상 및 방법에 관한 법 개정과 시효 연장에 관한 법 개정을 나눠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추징의 대상(제9조의2)에 관해서는 개정 필요성이 크다고 인정할 수 있다. 기존 법으로는 당사자 이외의 가족 등에 대한 추징에 어려움이 적지 않기 때문에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마련함으로써 추징의 대상을 확장하고, 추징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몰수·추징의 집행을 위한 검사의 처분들(제9조의3)도 추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물론 이 조항이 없더라도 검찰이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검찰이 관계기관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용이할 뿐 아니라 이 조항이 검찰의 적극적 활동을 촉구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시효의 연장(제9조의4)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크다고 하겠다. 3년의 시효가 너무 짧아서 은닉 재산을 제대로 추징하기 힘들다고 보기 어려우며, 기존의 법제하에서도 시효 연장을 위한 조치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효에 대한 예외 규정으로 인해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이 문제된다는 비판이 더 아프게 다가올 수 있다.
이 논란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문제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는 근원적인 고민, 즉 법 이념으로서의 정의와 법적 안정성의 충돌 내지 갈등의 문제를 잠시 살펴보자.
법의 이념은 정의(正義)다. 정의로운 법이야말로 진정한 법이라는 점에 대해선 이견을 찾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범죄로 취득한 재산을 추징하는 것은 정의이며, 은닉 재산에 대한 추징의 대상과 방법을 확대, 강화하는 것과 시효를 연장하는 것 모두가 정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은닉 재산의 추징 자체가 불법을 바로잡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正義와 법적 안정성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법적 안정성 역시 정의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갖는 법 이념으로 인정된다. 법적 안정성은 법의 개정, 특히 시효 연장을 통한 당사자의 법적 지위의 변경에 대해 신중할 것을 요구한다. 정의를 내세워서 법을 바꾸는 것은 선의의 피해자를 낳기 쉬우며, 설령 범죄자에 대한 조치라 해도 그들의 인권 또한 존중돼야 한다는 점에서 소급적인 불이익 처분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법 이론과 법 실무에서는 ‘진정소급효’와 ‘부진정소급효’를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미 시효의 완성 등으로 법률 관계가 확정된 이후에 이를 번복하는 진정소급효는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지만, 시효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시효를 연장하는 것처럼 법률 관계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효를 변경하는 부진정소급효는 공익의 필요성에 따라 비례성 판단을 통해 허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을 개정해 시효를 연장한 것은 부진정소급효에 해당하며, 공익적 필요에 따라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 추징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여전히 거세다는 점은 이러한 법 개정의 중요 동인이자 동력이기도 하다.
정의가 법적 안정성에 무조건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 시효제도의 존재 자체가 때로는 법적 안정성이 정의에 우선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의 요청이 강력할 경우에는 정의를 후퇴시키는 것이 오히려 법적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다. 과거 제5공화국 말기의 호헌(護憲) 선언처럼 국민 다수가 정의의 실현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갈등과 법적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에는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합법 내지 합헌의 문제를 벗어나 시야를 넓게 하고 미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우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하늘 무너뜨리는 일’ 없어야
가장 큰 문제는 ‘전두환 특별법’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특정인을 겨냥한 입법이라는 점이다. 특정인을 처벌하기 위한 법, 특정인의 은닉 재산을 추징하기 위한 법이라는 것은 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 만들어진 ‘최진실 법’이 그러하듯이 특정인의 문제를 계기로 법이 만들어진 경우가 드물지 않다. 또 ‘미란다 원칙’처럼 특정인의 사건을 계기로 법 원칙이 만들어진 예도 있다. 그러나 ‘특정인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은 또 다른 문제라 하겠다.
법적으로는 이번 개정이 전 전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 법률에 해당되는 모든 대상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의 일반성’을 깨뜨린 것은 아니라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유사한 상황이 자주 반복될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 훼손과 더불어 ‘사법의 정치화’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상황의 반복은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꾸로 정의를 내세우기 위해서 하늘을 무너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욱이 이번 전두환 특별법의 선례가 잘못 이해돼 법적 안정성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거나 소급효를 가볍게 생각하도록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