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반전 사학자 하워드 진.
논점은 “국가의 요구에 따라 참전했던 젊은이들이 결국엔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에서 몸과 마음을 다쳐 돌아온 병사들이 겪는 참담한 고통을 열거하면서 역대 미 행정부가 참전군인들에 대한 보상과 처우를 제대로 하기는커녕 ‘잊혀진 존재’로 만들려 한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그의 칼럼을 발췌한 내용이다.
지난해 12월30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제프리 게틀먼의 사진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24세인 게틀먼은 지난해 미군 하사로 이라크전쟁에 참전해 유프라테스 강둑을 경비하다 반미 게릴라가 쏜 파편에 얼굴을 맞았다. 5주 동안 미 육군병원에서 혼수상태로 누워있다 깨어난 그는 결국 장님이 됐다. 2주 뒤 게틀먼은 동성(Bronze Star)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훈장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를 옆에서 돌보는 아버지는 말한다.
“아마도 하느님은 네가 이라크에서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고 여기셨나봐(그래서 너를 장님으로 만드셨나봐).”
이라크 침공으로 인한 미군 사망자는 지난 1월 이미 500명을 넘어섰다. 그렇지만 1명 사망에 부상은 4∼5명꼴이란 사실을 언론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중상을 입었다’는 형식적인 보도만으로는 미 국민들에게 공포를 실감나게 전해주지 못한다.
펠드부시 하사의 부모는 육군병원에 입원한 아들 곁에서 거의 두 달간 병구완을 해왔다. 펠드부시의 어머니는 어느날 병원 복도를 기어가는 여자 부상병을 봤다. 두 다리가 잘려나간 채 기어가는 그 뒤를 이제 겨우 세 살 난 그녀의 아들이 아장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부시의 석유전쟁에 아들 빼앗기다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지구 반바퀴 저편에 있는 이라크로 보내고 싶어 안달했다. 미군 병사들이 무시무시한 첨단무기를 지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반미 게릴라들의 기습공격엔 취약하다. 그래서 많은 병사들이 장님이 되고 불구의 몸이 된다.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불필요한 전쟁의 위험 속으로 젊은이들을 몰아넣은 것 자체가 바로 부시 행정부가 젊은 세대를 근본적으로 배신한 것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부상병들의 가족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그런 점을 파악하고 있다. 루스 아이트켄은 지난해 4월4일 육군 대위인 아들을 이라크에서 잃었다. 그녀는 “이 전쟁은 석유를 위한 거야”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우린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은 바그다드공항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말한다.
“그 애는 자기에게 주어진 명령에 따라 싸웠겠지만, 이번 이라크전쟁은 미국민과 병사들에게 선전되는 그런 전쟁이 아니다. ‘부시의 석유(Bush’s oil)’를 위한 전쟁에서 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다.”
이라크전쟁에서 사랑하는 아들 또는 딸을 잃었거나 크게 다친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만이 부시에게 배신당한 것은 아니다. 이라크 국민도 부시로부터 배신당했다. 이미 두 차례의 전쟁(이란-이라크전쟁, 제1차 걸프전쟁)과 12년에 걸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참담한 고통을 겪어온 이라크 국민에게 부시는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미군의 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펜타곤(미 국방부)은 ‘충격과 공포’ 작전을 자랑스레 발표했지만, 어린이와 부녀자들을 포함해 이라크인 약 1만명이 죽었고 수천명이 불구의 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