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료법 전도사’로 나선 김기일 옹
-흔히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차분히 정리할 나이에 박사과정에 도전해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건강이야 좋은 편이니까 괜찮았고, 일본어와 영어 어학시험을 통과해야 논문 쓸 자격을 주는데, 그것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중도에 포기해버릴까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고집스런 성격’ 덕분에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학위를 받았다. 김옹은 이 기간에 단 한 번도 지각이나 조퇴, 결석을 한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실컷 할 수 있다는 데 희열을 느끼며 전심전력했습니다.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전과목이 내가 원하는 건강관련 과목이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운 정보여서 흥미진진했기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신나고 재미있게 공부하고 연구했습니다.”
1945년 20세의 나이로 월남하기 전까지 김옹은 평양의학전문대학에서 수학했다. 1954년 서울대 수의과대를 졸업한 뒤 중고교에서 생물학 교사로 재직하던 중 환갑의 나이에 한양대 교육대학원에서 생물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서울교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했다. 지칠 줄 모르는 향학열로 석사과정에서 전과목 A학점, 박사과정에서 평균 A학점의 성적을 기록했다.
-뒤늦게 박사과정을 시작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65세에 50년간의 교직생활을 접고, 그후 10여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 꼴로 각급 학교와 기업체, 사회단체, 복지회관, 경로대학, 방송 등을 돌며 건강도인술과 중년 및 노년의 건강관리를 주제로 건강관련 특강을 해왔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건강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더 알고 싶던 차에 단국대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과정 학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응시했습니다.”
무좀 치료 효험 본 뒤 14년간 시행
-논문 제목이 ‘요료법이 고혈압과 혈청지질에 미치는 영향’이지요. 건강과 관련한 분야가 많을 텐데 왜 하필 요료법에 관한 것입니까.
“1991년부터 지금까지 14년간 꾸준히 요료법을 실천해오고 있는데, 남녀노소와 빈부에 상관없이 이것만큼 일상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건강법이 별로 없습니다. ‘동의보감’에도 요료법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어 안타까웠지요. 실제 경험한 것을 말로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 아닙니까. 요료법을 좀더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선 객관적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돈 들이지 않고 서민 건강을 유지하고 치유함으로써 사회에 봉사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질병 중 특별히 고혈압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우선 고혈압은 간단한 혈압측정을 통해 정상인지 아닌지 쉽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또 타 질병과 비교할 때 뇨(소변)의 색상이나 성분 등 여러 가지 검사결과가 쉽게 수치로 나타납니다. 다른 하나는, 고혈압이 심각한 순환기계통의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만성질환인데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의학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유병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많지 않습니까.”
-요료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지요.
“요료법은 말 그대로 오줌을 활용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우선 자신의 오줌을 받아 마시는 게 있고, 그 외에 마사지, 관장, 습포 등 여러 방법으로 통증을 가라앉히거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