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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날마다 날 감동시킨 아버지의 춤사위|황병기

  • 글: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잔칫날마다 날 감동시킨 아버지의 춤사위|황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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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가 끝나면 바로 사랑방으로 가서 신문을 읽고 책을 보다가 주무셨다. 그래서 어머니를 비롯하여 식구들이 아버지에게 얘기할 것이 있으면 사랑방으로 가야 했다. 아버지는 식구들이 오는 것을 반기는 표정이었지만, 우리가 옆에 앉아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이나 책을 보다가 당신이 꼭 얘기해야 될 때에만 책을 엎어놓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남의 말은 많이 듣고 자신의 말수는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기발한 발상과 해학이 넘치는 표현으로 사물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하셔서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웃음을 자아냈다. 어느날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어머니를 보고 아버지는 누나와 나를 돌아보면서 “너희 어머니는 이제 제주도 뱃사공이 점심 잘 먹었는지도 알아보고 다닐 것”이라고 해서 어머니조차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아들 칭찬을 하고 싶어했다. 아버지를 되도록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어머니가 “병기는 요즈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요” 하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무엇보다도 부지런한 자식을 대견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짐작해서 한 말씀이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대뜸 “그럴 테지, 다른 사람이 열흘 걸려서 할 일을 하루에 해야 할 테니까. 게으른 놈은 언제나 바쁜 법이야”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식구들은 다 같이 폭소를 터뜨렸다.

“젊은 녀석이 대낮에 하품을 하다니”

스스로도 내가 부지런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어느날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한 아버지의 척도에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무심코 하품을 하다가 아버지께 단단히 꾸중을 들었을 때다. 아버지는 어떻게 젊은 녀석이 대낮에 하품을 할 수 있느냐고 야단을 치셨다. 게으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이셨다. “너, 내가 하품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느냐?”는 말씀에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하품하는 모습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집에서 아버지는 자신에 관한 모든 일을 몸소 하셨다. 옷을 갈아입거나 이부자리를 펴는 일상사까지도 어머니나 누나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방바닥을 닦을 일이라도 생기면 누구에게 시키지 않고 손수 걸레를 가져다 닦고는 반드시 제자리에 도로 가져다놓았다. 필요한 물건은 언제나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갑자기 정전이 되더라도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사소한 부탁이라도 깜박 잊었다고 한 적이 없고, 약속 시간에는 단 1초도 늦은 일이 없었다.

오락은 일절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은 말할 것도 없고 라디오 소리도 싫어했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조차 아버지만 나타나면 얼른 텔레비전을 꺼야 했다. 아버지는 평생 영화관에 꼭 세 번을 갔는데 번번이 재미가 없어서 중간에 나왔다고 한다. 대중잡지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소설 역시 잔소리가 많아서 읽을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인 며느리(필자의 부인은 소설가 한말숙 여사임-편집자 주)의 작품조차 한 쪽도 읽지 않았다. 그러나 신문은 매일 자잘한 광고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읽었다.

운동은 맨손 체조밖에는 안 했지만, 걷기를 무척 좋아해서 틈나는 대로 산책을 즐겼고, 자가용을 놔두고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올 때도 많았다. 공휴일에는 대체로 혼자서 산간의 절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자식들과 장난이나 놀이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외식을 하거나 관광을 하는 법도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아버지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한 장도 없다.

쌀과 연탄만은 넉넉해야

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먹을 것과 땔감이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쌀과 장작 또는 연탄만은 집안에 넉넉히 저장해두어야 한다는 것을 신조로 삼았던 듯하다. 돈이 생기면 무엇보다도 먼저 쌀과 땔감부터 장만해두어야 직성이 풀리셨다는 것이다.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던 아버지는 ‘다방의 커피 한 잔 값이 연탄 넉 장 값과 맞먹는 마당에 연탄 넉 장을 물 한잔으로 마셔버리는 짓을 뭣하러 하느냐’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일력의 얇은 종이를 한 장씩 뜯어서 가위로 자른 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휴지로 썼다. 물론 코 풀어버리는 데까지 구태여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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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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