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사장은 자신이 뽑지도 않았고 스타일도 맞지 않는 김감독을 사장 취임 이후 줄곧 교체대상으로 생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내내 “김감독 해고는 시간문제”라는 말이 구단 주변에서 흘러나왔던 것. 김감독이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이틀 뒤 가진 어사장과의 면담에서 들은 첫 마디가 “올해는 ‘LG 야구’가 아니라 ‘김성근 야구’를 했다”는 것이고 보면 김감독과 어사장의 엇박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김감독 또한 시즌 내내 해고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덕아웃으로 향했다고 말한다. 어사장이 현장 사령탑을 돕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성적을 내고 나서 13일 만에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김감독이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 1983년 OB에서 처음 사령탑을 맡은 뒤 다섯 차례나 유니폼을 입고 벗기를 반복한 그지만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낸 뒤 칭찬 한마디 없이 ‘봉변’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감독은 LG가 9승25패로 바닥을 기던 2001년 5월 감독대행으로 사령탑을 맡았다. 2년도 지나지 않아 특별한 전력 보강 없이 하위권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는 것이 김감독의 자부심이다. 특히 모래알처럼 제각기 흩어져 있던 ‘서울 깍쟁이’ 선수들에게 근성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면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것. 지난 11월28일 기자와 만난 김감독은 그래서인지 아직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신바람’이 항상 통하는 게 아니다”
-야구가 일상생활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현장을 떠난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요.
김성근 감독은 11월10일 한국시리즈 대구 6차전에서 10-9로 역전패를 당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새벽 1시에 서울에 도착해 새벽 4시까지 다음 시즌을 위한 훈련계획을 세웠다. 한마디로 야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인 것. 해임된 이후 일상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야구는 어디서나 할 수 있어요. 다만 그늘에서 하느냐, 무대 위에서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무대 밖에서 일한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열심히 하면 그만입니다. 해임통보를 받은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성균관대 야구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제주도에 다녀왔어요. 당분간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줄 생각입니다.”
-시즌 내내 감독 교체설이 돌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팀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던 5월에는 구단 측이 감독 교체를 준비하며 여론을 살피기도 했고, 구단 사장은 전 LG 코치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새 코칭스태프를 조각하기도 했는데요.
“시즌 중에 이런저런 소문은 많이 들었지요. ‘4강에 들지 못하면 해고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면 해고될 것’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사실 구단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유니폼을 벗을 생각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편하게 포스트시즌을 치렀는지도 모르겠고요.”
-‘신바람 야구’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이 해고 이유였습니다. ‘신바람 야구’에 대한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윤태 사장이 말하는 ‘신바람 야구’란 ‘선수들의 기(氣)가 살아야 그라운드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김감독 해임 이후 어사장이 1994년 우승 감독이자 ‘신바람 야구’의 파트너였던 이광환 감독을 일찌감치 차기감독으로 내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감독대행을 맡고 보니 선수들이 경기장 분위기에 이끌려 쉽게 들뜨더군요. 자연스레 자기 위주 플레이를 하면서 자기가 잘못하면 다른 선수가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잘못된 스타의식을 갖고 있었던 거죠. 팀 전력이 엄청나게 강하면 이런 식의 야구가 통하겠지만 지금의 LG는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선수들 모두 동료를 생각하는 ‘책임야구’를 하도록 애를 썼던 겁니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LG팀이 보여준 플레이가 그 전형이 아닌가 싶어요. 비로소 좋은 팀이 됐는데 완성을 못하고 물러난 것이 가장 아쉽죠. 그래도 지난 1년 동안 다져놓은 선수들의 정신은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