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족의 근황’을 연기하는 문인들. 왼쪽부터 손정희, 공광규, 이순원, 하성란.
이 날의 배우는 시인 공광규, 소설가 이순원·하성란. 여기에 희곡작가 손정희와 전문배우 오윤홍이 모자라는 머릿수를 채웠다. 연극 ‘이 가족의 근황’은 공광규의 시 ‘겨울 산수유 열매’와 이순원의 소설 ‘수색, 그 물빛 무늬’, 하성란의 소설 ‘별 모양의 얼룩’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색한 것이다.
세 가족이 사는 3층집. 1층 주인집, 2층 민서네, 3층 홀로 사는 소설가. 이들의 근황은 어떨까. 60대의 집주인 공선생에게는 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가 있다. 해설자(오윤홍)가 묻는다. “힘들지 않으세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공선생은 깨어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오늘도 신문스크랩을 한다. 콩새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그린 시 ‘겨울 산수유 열매’가 잔잔히 낭송된다.
소설과 연극의 행복한 만남
‘씨랜드 화재’로 민서를 잃은 2층 부부는 “한 아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화에 화들짝 놀란다. “별 모양의 브로치라고 했어. 하지만 그건 브로치가 아냐. 그건 별 모양의 얼룩이었다구.” 민서엄마(하성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더니 어느새 눈물을 떨군다. 2002년 하성란의 세 번째 소설집 ‘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에 실린 단편 ‘별 모양의 얼룩’이다.
3층 소설가는 유년기의 상처를 보듬고 있다. 아버지의 시앗(첩)을 어머니로 알고 자란 그는, 아직도 강릉에 사는 진짜 어머니가 왜 시앗에게 자신의 이름을 따서 ‘수호엄마’라 불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 작가의 가족사를 토대로 쓴 연작소설 ‘수색, 그 물빛무늬’(1996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의 한 부분이다.
문인극 ‘이 가족의 근황’은 대성공이었다. 아마추어 배우들의 몰입연기는 소설과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고, 중간에 대사를 놓쳐 멀뚱해지는 부분까지 객석은 웃음으로 채워주었다. 불이 켜지자 객석에서 “언제 또 하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한국현대문학관 전숙희 이사장은 “1950∼60년대까지 문인극이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1952년 피난지 대구에서의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최정희, 모윤숙, 김동리, 박영준 등 유명 문인들이 무대에 올랐다. 피난중이었는 데도 극장이 꽉 찼고 밀려온 관객들 때문에 무대 일부가 부서지기도 했다. 관객들의 열띤 호응에 대사를 잊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소설가 박영준씨는 위트가 뛰어나 금방 말을 꾸며내서 자연스럽게 위기를 모면했는데, 미인으로 남성관객에게 인기가 높았던 최정희씨는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고는 당황해 한마디도 못한 채 ‘호호’ 웃고 돌아나온 일도 있었다.”
전 이사장의 유쾌한 회고담은 이 날 공연의 ‘덤’이었다. 오늘날 ‘문인극’은 어쩌다 한번 하는 이벤트가 됐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문인극회’(현대문학)가 운영될 만큼 활발했다. 그후 맥이 끊겼다가 1996년 ‘문학의 해’ 기념작업으로 조경희 전 예총회장, 황금찬 시인 등 팔순을 바라보는 원로들이 무대에 올라 ‘어미새 둥지에서 새끼들 날려보내다’를 선보인 바 있다. 당시 객석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4년 후에는 ‘양반전’이 공연됐다. 돌아온 ‘문인극’이 침체된 한국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