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단거리미사일ㆍ한국형전차ㆍ한국형고등훈련기ㆍ한국형전투기의 원가 부풀리기 실태
- 이원형 구속배경에 잠수함 탐지장비 하청업체간 분쟁
- 천용택의 처남, 조카, 그리고 린다 김
- 천용택ㆍ이원형에게 뇌물 건넨 군납업자 J씨의 화려한 비리 행적
- 해군함정 레이더 납품 특혜시비에 휘말린 전직 참모총장
- 지상신호정보수집 향백사업과 정보자주화 논란
- 지나친 규제, 통제, 전문성 부족이 군납비리 부추겨
원가(原價)감사 전문가로 통하던 김 중령의 직무가 사실상 중지된 것은 지난 1월초 대기발령이 나면서다. 한달 후엔 직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으로 전보됐다. 인사발령의 계기가 된 것은 지난해 12월 감사관실 요청으로 총무과에서 작성한 ‘육군 장교 원복 인사통제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서다. 이 공문에 따르면 김 중령이 감사관실에서 방출당한 이유는 ‘감사로 알게 된 행정상 기밀을 누설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중령은 지난 수년간 감사를 통해 국방부와 업체의 비리를 원칙대로 적발한 데 따른 ‘보복 조치’라고 주장한다.
6월초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유보선 국방부 차관이 방위산업체(이하 방산업체)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첩보를 부패방지위원회로부터 넘겨받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유 차관은 국방부 기획관리실장이던 2002년 군납품 원가와 사업내용에 대해 국방부 감사를 받은 방산업체 2곳으로부터 로비를 받아 선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형단거리미사일사업(천마사업)과 한국형전차사업(K1A1) 제작사인 두 업체는 2001년 국방부 감사관실 감사과정에서 원가를 부풀려 수백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이 드러나 추징금이 부과되자 감사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때 국방부는 재심회의를 통해 환수된 금액의 절반 이상을 업체들에 되돌려줬는데 그것을 유 차관이 주도했다는 게 검찰에 접수된 첩보의 요지다. 이에 대해 유 차관은 “당시 기획관리실장으로 회의를 주도했을 뿐”이라며 “당시 국방부 조치에 대해 감사원이 추후 확인했으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정됐으며 업체 로비를 받은 적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당시 두 업체에 대해 원가감사를 실시한 장본인이 바로 김 중령이다. 김 중령은 “원가를 부풀린 업체로부터 환수한 돈을 다시 돌려준 것은 부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인사발령을 통한 김 중령의 감사직무 정지조치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기밀을 누설해서’가 아니라 ‘기밀을 누설할 소지가 다분해’ 보직해임된 김 중령은 올 가을 계급정년으로 전역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는 자신이 적발한 군납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단언한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들과 군납업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김 중령의 주장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군 수사기관에는 군납비리와 관련된 첩보들이 넘쳐나지만 그중 수사로 이어지는 것은 많지 않다. 업체간 과잉경쟁에 따른 음해성 첩보가 많은 탓도 있지만, 인력과 장비 부족, 그리고 상부의 간섭과 압력으로 수사권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대형 군비리 수사사례를 보면 고위층이 관련된 사건의 경우 종종 축소·은폐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군고위직 인사들 줄줄이 연루
군납비리는 워낙 흔해 병으로 치지도 않지만 근절되지 않는 감기처럼 군내에 만연해 있다. 수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군납비리는 전체 비리의 일부일 뿐이다. 보안을 중시하는 군의 특성상 드러난 비리보다 드러나지 않는 비리가 훨씬 많은 까닭이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군납비리 사건은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올 들어서만 벌써 특전사 낙하산 납품비리를 비롯해 네댓 건의 대형 비리사건이 발생했고 지난해엔 인천공항 외곽 군공사 발주비리, 이원형 전 국방품질관리소장 뇌물수수 사건 등이 눈길을 끌었다.
군 고위직 인사들도 군납비리 사정권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인사청탁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군 수사당국의 내사를 받아오다 최근 무혐의 처분을 받은 문정일 해군참모총장은 비록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군납업자와 몇 차례 식사를 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이유로 국방부 장관 경고조치를 받았다.
지난 4월 육군 공병비리 수사과정에서는 군 최고위직을 지낸 예비역 장성 L씨와 S씨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두 사람은 DJ정부 때 군공사를 많이 수주한 D건설 회장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엔 천용택 전 국방부 장관이 군납업체 H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그에 앞서 지난해 6월엔 인천공항 외곽 군공사 비리 수사과정에 김동신 전 국방부 장관의 뇌물수수 혐의가 불거지기도 했다. 2001년엔 문일섭 국방부 차관이 군납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군납이란 말 그대로 군에 납품하는 것이고 군납품이란 그러한 물품을 일컫는다. 군납품 중 군모 소총 등 군용으로만 쓰이는 물품은 군수품이라고 한다. 군납품은 통제품목과 일반품목으로 나뉘는데 조달절차가 서로 다르다.
통제품목은 무기체계 등 특별한 통제가 필요한 품목으로 국방부 획득심의위원회에서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획득이란 무엇을 구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으로 국방부 획득실이 주무부서다. 획득심의를 할 때는 국방과학연구소(ADD), 국방연구원(KIDA), 조달본부(DPA), 방위산업진흥회(KDIA) 등의 기관에서 조언을 하는데, 이와 관련된 모든 회의에 기무사 관계자가 배석한다. 통제품목은 다시 연구개발과 국외수입 품목으로 나뉘는데 연구개발의 경우 국방과학연구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통제품목을 제외한 모든 군납품이 일반품목이다. 일반품목은 별도의 획득절차 없이 조달본부에서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통제품목이건 일반품목이건 계약은 모두 조달본부에서 이뤄진다. 원래는 모든 군납품이 획득절차를 거쳐 조달돼야 하지만 일반품목의 경우 조달본부가 획득기능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군납품 중 군납업체를 통하지 않고 시중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물건, 예컨대 종이 유리 등 상용품은 정부기관인 조달청이 구매를 대행한다.
조달본부에서 구매하는 물품은 각 군이 공통적으로 쓰는 물품이다. 대부분의 군수품은 조달본부에서 구매 여부를 결정하지만 특정 군에서만 사용되는 물품은 군수사령부(군수사)에서 구매한다. 예컨대 해·공군은 안 쓰고 육군에서만 쓰는 장비는 육군 군수사에서 자체 구입한다. 그런데 사실 군수사의 주된 기능은 조달보다는 분배다. 조달본부가 계약한 물품을 업체로부터 납품받아 각 군 소요부대에 나눠주는 역할이 그것이다.
통제품목의 경우 조달본부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국방부 획득과정을 통해 선정된 납품업체와 계약만 체결하면 된다. 반면 일반품목의 경우 조달계획을 세운 후 획득심의에 해당되는 조달판단을 하고 원가를 산정한다.
원가 산정이 끝나면 입찰 및 협상 단계로 들어간다. 모든 계약은 공개입찰이 원칙이지만 특정업체에서만 제작이 가능한 물품의 경우엔 수의계약을 한다. 특히 방산물품의 경우 한번 방산업체로 지정되면 오랫동안 그 자격이 유효하기 때문에 방산업체들이 사실상 독점권을 갖는다.
계약과정에서 발생하는 군납비리의 전형은 원가를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원가비리는 군이 업체에 속거나 업체와 한통속이 돼 알고도 눈감아줄 때 발생한다. 글머리에 소개한 원가감사 전문가 김 중령은 “조달본부는 무조건 깎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업체들이 깎일 것을 대비해 아예 비용을 더 올려 청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속거나 한통속이거나
국방부 감사관실은 지난 몇 년 동안 대형 군납사업들에 대한 원가감사를 통해 1000억원대에 이르는 돈이 부당하게 지불된 사실을 적발했다. 그러나 업체의 반발과 조달본부, 감사원 등 관련기관과의 견해 차이, 그리고 국방부 수뇌부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감사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감사원은 이와 관련된 자료를 비공식적으로 넘겨받았으나 아직까지 감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내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 자료는 최근 군검찰과 검찰에도 넘겨졌다. 그에 따라 조만간 군납업체의 원가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감사 차원에서 수사 차원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원가비리에 관련된 군 관계자들과 업체 대표들의 유착관계를 파헤쳐 직권남용이나 향응·뇌물수수 혐의를 조사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업체의 반발은 물론 국방부 내에서 ‘과잉 감사’라는 비판이 있는 데다 감사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이 수사를 하더라도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조달본부 관계자는 “국방부 감사관실에서 지적한 내용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이지만 감사원과도 입장 차이를 보이는 만큼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원가 계산이라는 게 여간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면서 “검찰 수사를 통해 국방부 감사관실에서 적발한 원가비리가 다 사실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군관계자들의 고의성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동아’는 국방부 감사관실에서 문제제기한 원가감사 내용을 단독 확인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99년부터 생산된 한국형단거리미사일(천마사업)의 경우 국방부 감사관실의 원가감사 결과 301억원이 과다산정된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관실은 업체로부터 31억원을 환수조치하고 80억6000만원을 감액하며 190억8000만원을 절감조치 하도록 했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업체는 착수금과 중도금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실제 작업시간에 상관없이 퇴근시간을 연장해 잔업수당을 지급하고 외부에 발주한 가공품을 자체 제작한 것으로 위장하는 수법 등으로 원가를 부풀렸다.
위약금을 감안해 실제 환수조치된 금액은 25억3000만원이었는데 그나마 국방부 재심회의에서 15억3400만원을 도로 돌려주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최종 환수된 금액은 9억9500만원이었다. 대우종합기계가 주 사업자인 천마사업은 2005년까지 8865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며 13개 업체가 부품 생산·조립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형고등훈련기인 T-50의 주익은 KF-16과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감사결과 KF-16보다 날개 크기가 더 작으면서도 비용은 더 비싸게 책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당 가격이 50억원에 이르는 K1A1 전차는 2001년 현대모비스 창원공장에서 처음 출고됐다. 2005년까지 약 500대가 도입될 예정이다.
한국형고등훈련기 T-50 감사에서도 원가가 부풀려진 사실이 적발됐다. T-50 주익(主翼)은 전투기인 KF-16의 날개와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이다. KF-16의 주익은 9억원에 납품됐다. 따라서 KF-16의 날개를 납품한 업체와 계약했다면 가격이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크기가 더 작은 T-50의 주익은 그보다 약 4배가 많은 34억원에 구매계약이 이뤄졌다. 노무비와 경비를 부풀린 탓도 있지만, 비행기 날개 제작 경험이 없는 신규 업체가 외국 업체의 기술지원으로 날개를 제작하느라 로열티 비용이 추가된 게 주요 원인이었다.
T-50의 제작사는 1999년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세 회사가 통합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2001년 시제기가 선보였는데 2009년까지 50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한국형전투기 KF-16의 경우 업체 손실에 대한 이중보상으로 150억원을 손해본 사실이 2003년 감사에서 드러났다. KF-16의 제작사는 애초 삼성항공이었다가 1999년 항공업체 통합에 따라 한국항공우주산업으로 바뀌었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업체는 군에 “비행기를 다 만들었으니 필요 없게 됐다”며 연료주입차 소방차 진공청소차 등의 장비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말하자면 새 차가 중고차가 됐으니 보상해달라는 요구였다.
군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24억원을 보상해줬다. 업체는 “비행기를 다시 만들 경우 사용해야 한다”면서 장비는 그대로 보유했다. 이들 장비를 운용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제작비에 포함돼 있었다. 감사관실은 이를 이중보상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연료주입차의 경우 보상을 받은 뒤 외부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장비들에 대한 보상을 포함해 감사관실이 이중보상이라고 인정한 비용은 150억원에 이르렀다. 감사관실은 업체가 이중보상을 통해 114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이를 환수토록 했으나 아직 환수조치 되지 않은 상태다.
미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이 개발한 F-16의 개량종인 KF-16은 1992년 록히드 마틴, 삼성항공과의 계약이 체결된 이후 직구매, 조립생산, 면허생산의 3단계를 거쳐 지금까지 총 120대가 도입돼 실전배치 됐다.
특정업체에 유리한 첩보 제공
군납비리는 획득과 조달 전과정에 걸쳐 발생한다. 획득 주무부서인 국방부 획득실과 구매와 계약을 주관하는 조달본부 및 군수사 관계자들, 개발 및 정책 연구를 하는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방연구원 직원들은 업체의 주요 로비 대상이다. 과정 전반을 감시하는 기무사 관계자들도 로비에 노출돼 있다. 기무사의 보안적격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군납이든 군공사든 응찰 자체가 차단되기 때문에 업체는 기무사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군납비리 수사는 기무의 첩보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물론 기무 본연의 감시기능이 발휘된 결과겠지만 기무의 이권 개입으로 보는 시각도 더러 있다. 군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간혹 기무가 납품업체 선정을 앞두고 특정업체에 유리한 첩보를 제공한다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군납업계에서는 “기무 눈에 든 회사가 이긴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돌기도 했다.
업체가 납품할 물건의 품질을 검사해 합격·불합격을 결정짓는 국방품질관리소(이하 품관소)도 로비의 집중 표적이 된다. 품관소 검사에서 탈락한 업체는 입찰에 응할 자격을 상실한다. 품관소는 또 납품이 이뤄진 후에도 품질검사를 실시해 제품에 하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린다.
품관소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군용모포의 불량품 시비로 곤욕을 치렀다.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 측근 강금원씨가 회장으로 있는 창신섬유의 군용모포가 2001년과 2002년 품질검사에서 불량품으로 판정됐는 데도 2003년분 입찰에서 전량을 낙찰받은 데 대해 품관소의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이처럼 품관소는 업체들에 대해 국방부 획득실이나 조달본부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품관소가 연루된 대표적인 군납비리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이원형 전 품관소장 뇌물수수 사건이다.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의 배경엔 잠수함 탐지장비 개발을 둘러싼 업체간 분쟁이 있었다.
문제의 잠수함 탐지장비는 수중 케이블에 센서를 부착해 잠수함에서 나오는 음파를 감지하는 장비다. 이 장비의 납품권을 따낸 회사는 DJ 정부 때 해군 장비를 많이 납품한 M사였는데, 실제로 이 장비를 개발한 회사는 M사의 하청을 받은 S사였다. S사는 국방과학연구소와 협력해 지난 몇 년 동안 이 장비를 개발하는 데 70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2002년 S사가 장비 개발을 완료해 양산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M사가 하청업체를 N사로 바꿔버린 것이다. S사로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버림받은 하청업체, 청와대에 투서
S사가 볼 때 M사가 하청업체를 N사로 교체한 것은 연구개발비 때문이었다. 업체가 군에 제시하는 납품원가에는 연구개발비와 제작비가 포함돼 있는데, 연구개발비는 당연히 S사에게 돌아갈 몫이었다. 그런데 하청업체를 교체하게 되면 연구개발비는 고스란히 M사의 것이 되는 것이다.
업체 교체의 명분은 케이블 길이가 짧고 센서 크기가 작다는 것이었다. 새로 하청업체가 된 N사가 할 일은 이미 공개된 S사의 기술력을 응용해 케이블 길이를 늘리고 센서 부피를 늘린 유사한 장비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따로 개발비가 들 이유가 없었다.
S사 제품이 ‘불량품’으로 전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국방과학연구소의 제2본부장 황아무개씨였다. 황씨는 N사의 선물투자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이원형 품관소장이 N사 제품에 유리한 검사결과를 내놓아 M사의 하청업체 교체 명분에 힘을 실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년 동안 투자해 개발한 기술을 도둑맞았다고 판단한 S사는 청와대와 국회 등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투서를 접수시켰다. 이 투서는 지난해 10월 이원형 품관소장이 유력한 국방부 획득실장 후보로 거론됐을 때 그의 갖가지 비리의혹을 고발하는 다른 투서들과 함께 위력을 발휘했다.
두 달 뒤 이 소장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의해 구속됐다. 국방부 획득정책관으로 재직중이던 1998년 12월부터 약 3년간 저고도 대공화기인 오리콘포 사격통제장치에 대한 성능개량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군납업체 H사 대표 정아무개씨로부터 1억3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수사결과 이원형 소장이 문제의 잠수함 탐지장비 납품비리와 관련된 흔적도 나타났다. 주 납품업체인 M사 대표 최아무개씨로부터 군납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12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 하청업체 S사의 원성을 산 국방과학연구소 황 본부장 역시 비슷한 명목으로 최씨로부터 2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린다 김에게 동업 제의
이 대목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 인물이 이원형 소장에게 뇌물을 건넨 군납업자 정씨다. 유명 여자 탤런트 S씨와의 결혼설로 한때 스포츠신문과 여성지 기자들의 인터뷰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던 정씨는 전·현직 군 고위 장성들과의 친분을 과시해 일찌감치 군납업계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2000년 6월 국회 국방위원장이던 천용택 전 의원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은 지난 5월 천 전 의원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천 전 의원의 경우 기억해야 할 것은 그의 처남인 김아무개씨가 2002년 군납비리 사건에 연루돼 기소중지된 사실이다. 군납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은 김씨는 검찰에 출두하지 않아 수배됐다. 또 천 전 의원의 조카는 미국 LA로 린다 김을 찾아가 몇 차례 동업제의를 할 정도로 무기도입 사업에 적극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린다 김과 천 전 의원 부인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는데 린다 김은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씨 수사의 불똥은 유보선 국방부 차관에게도 튀었다. 1998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이후 약 2년간 정씨 회사의 감사로 재직하면서 매월 200만원씩 받는 등 정씨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사실이 드러난 것.
한 가지 새로 밝혀진 사실은 이미 1992년 국방부 감사관실 감사를 통해 정씨 회사의 비리가 드러났었다는 점이다. 당시 정씨는 군에 보안장비를 납품하던 K전자의 대표였다. 감사관실은 이 회사가 납품기일을 맞추지 못해 수천만원의 손해를 끼친 사실을 발견하고 손실액을 회수토록 했다. K전자의 회장은 통신병과 소장 출신이었다. 정씨는 당시 감사 실무자의 집으로까지 전화해 “회사 망하게 할 거냐. 봐달라”며 선처를 호소하는 한편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각서도 썼다고 한다.
정씨는 또 2000년에는 H사 대표로서 감사원 감사에서 원가비리가 적발돼 이름이 오르내렸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H사는 발칸포를 납품하며 원가가 1350만원인 공기순환기 값을 9500만원으로 부풀렸다는 것이다.
“발주 2주 만에 납품 완료”
군납업계에서는 대체로 실력보다 인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군 고위직 출신이 임원이나 사장을 맡고 있는 업체가 적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업체들은 일단 사업내용을 알고 나면 그 사업의 결정권자나 실무자와 가까운 사람들을 ‘스카우트’해 로비를 시작한다.
2002년 연말 해군에서는 KP-100이라는 초계함(PCC)용 전탐레이더의 신규 도입을 두고 말이 많았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이 레이더는 그해 12월 발주된 지 2주 만에 납품이 완료돼 특혜 시비가 일었다는 것이다.
이 레이더의 납품업체는 이원형 전 품관소장 뇌물사건에 연루된 M사다. 특혜시비를 더욱 그럴듯하게 하는 것은 납품 당시 해군 최고위직 인사였던 모 예비역 장성이 M사의 임원 채아무개씨와 인척이라는 사실이다.
업계에서는 “레이더 성능이 예전 것만 못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국방부 공보실 관계자를 통해 “정상 절차를 거쳐 납품된 것으로 성능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 레이더는 재투자사업 차원에서 연말에 반납해야 할 예산으로 구입한 것으로 2002년에 이어 2003년에도 납품됐다고 한다. 해군 관계자는 또 “만약 성능에 문제가 있다면 벌써 감사나 조사를 받았을 것 아니냐”며 특혜의혹을 부인했다. 군 수사기관은 최근 이 레이더 도입과 관련된 투서를 접하고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납비리는 앞서 설명한 대로 감시기관인 기무사가 포착하기도 하지만 업체간 분쟁에 따른 투서에 의해 불거지는 경우가 더 흔하다. 몇 년 전부터 자주국방 개념에 따른 장비의 국산화가 강조되면서 군납업계에서는 해외파와 국산파, 곧 수입업자와 국산 제조업자 간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12월 이원형 사건에 연루됐던 케이블 생산업체 Y사는 이런 시각에서 억울해한다. 이 회사 김아무개 회장은 이원형 전 품관소장에게 3400만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항소중이다.
Y사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1997년에 시작된 차기전술통신체계사업(SPIDER)의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특혜를 받아 케이블 납품업체로 선정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물의를 빚었다. SPIDER 규격화 작업이 완료되기 5개월 전에 이미 국방부에 자체개발 계획서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 사전에 개발정보가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
지난해 12월 경찰 수사로 이원형 전 품관소장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자 업계에서는 Y사 김 회장과 이원형 전 소장의 친분이 Y사에 대한 특혜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Y사 관계자는 “돈을 준 건 잘못이지만 특정 품목에 대한 청탁이 아니라 이원형 소장이 규정대로 일을 처리해준 데 대한 감사표시였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산 장비를 개발하는 업체는 수입업체들의 공적이 된다. 장비 국산화가 이뤄지면 밥줄이 끊길 수입업자들이 연합해서 공격하고 있다”며 “이 소장은 부품을 국산화할 경우 5년간 우선납품권을 주는 규정을 준수하며 업자들간 분쟁이 있을 때 교통정리를 잘 해줬다”고 이 전 소장을 옹호했다.
앞서 언급한 해군 함정용 KP-100 레이더를 둘러싼 잡음도 이런 시각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존 장비는 외제인 데 비해 새로 들여온 장비는 국산”이라며 특혜시비가 업체간 분쟁의 산물임을 내비쳤다.
해외 직구매냐, 국내 연구개발이냐는 방산업계의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다. 이러한 논쟁은 특히 대형 무기체계 도입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돼왔다. 한국형전투기, 한국형고등훈련기, 한국형전차, 한국형다목적헬기(KMH) 등 한국형이라는 명칭이 붙은 무기체계사업을 진행할 때는 늘 비용 대 효과 논쟁이 뒤따랐다. 국산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공동 무기개발로 승부 걸어야
방산업계 관계자는 6조4000억이 투입되는 KMH 사업에 대해 “헬기를 총체적으로 만든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공격용이자 수송용인 다목적 헬기를 만들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이 헬기가 개발될 때쯤 외국에선 훨씬 성능이 우수한 헬기가 나와 있을 것이다. 막대한 투자비를 들인 만큼 수출도 해야 하는데 과연 경쟁력이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방위산업 규모는 줄어드는 추세다. 그에 따라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무기를 연구·개발하고 있는데 우리만 독자 개발을 고집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와 전략개념이 다르다. 전략개념이 비슷한 영국 프랑스 등과 공동으로 무기를 개발해 판매시장을 넓혀야 한다.”
국산화 논쟁은 미국에 대한 무기종속화 논쟁과 연결된다. 린다 김의 로비로 유명한 백두사업(감청정보 수집)은 비행기와 시스템 선정을 두고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 3개 회사가 경합했으나 미국의 E시스템사가 승자가 됐다. 역시 린다 김이 관여했던 금강사업(영상정보 수집)도 미국의 로럴사(록히드 마틴의 계열사)가 캐나다 회사를 누르고 납품권을 따냈다.
2002년 자주국방 논쟁에 불을 지핀 F-X사업(차기전투기)의 최종 승자도 미국 회사인 보잉이었다.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던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은 100% 기술이전을 약속했음에도 절충교역 비율 규정을 지키지도 않은 보잉사의 F-15에 패배했다.
F-X사업의 경우에서 보듯 미국은 그동안 한국에 판매한 어떠한 무기체계에 대해서도 기술이전을 약속한 바가 없다. 이는 무기종속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백두 비행기만 하더라도, 비록 우려와는 달리 기능에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미국측이 소프트웨어 관련 핵심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아 한국군의 독자적인 정보분석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흥미를 끄는 것은 백두사업에 비견되는 향백사업의 향방이다. 이 사업은 북한군의 신호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감청시설을 백령도 등 지상에 설치하는 것이다. 백두사업이 비행기로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라면 향백사업은 지상장비로 같은 일을 하는 셈이다. 향백사업의 사업비는 2000억원대에 이른다. 예산은 국정원이 대고 운용은 정보사가 할 예정이다.
사업자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미국과 독일 회사의 2파전 양상을 띠고 있다. 독일이 100% 기술이전을 약속하고 있는 데 비해 미국은 기술이전에 소극적이고 장비 가격도 더 비싸게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미국 회사에 유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에 미국통이 많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납품회사로 미국 회사가 선정될 경우 한국의 정보자주화는 요원하다는 비관적인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보자주화의 꿈
군납업계에서는 국방정책의 일관성 부재를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모 방산업체 관계자는 이를 군납비리의 원인으로까지 꼽았다.
“장관이나 정권이 바뀌면 사업이 취소되거나 수정되는 등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 보니 전력증강사업과 같은 대형사업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은 업체들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업체들의 해외 마케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되니 업체들이 부품을 싼값에 수입해 조립생산하면서 원가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이익을 내려 한다.”
지난해 국방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해·공군 C4I사업(전술지휘통제자동화사업) 예산을 크게 삭감했다. 파이가 줄어들다 보니 컨소시엄을 형성했던 업체들간에 다툼이 일었다. 지난해 1단계 사업이 완료된 군사정보 통합처리체계사업(MINS)도 올해는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2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군 수뇌부의 정보화 마인드 부재가 정보자주화를 늦추고 있다. 예산을 줄이면 그만큼 사업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군납비리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대체로 제도의 결함보다는 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제도 자체엔 큰 문제가 없는데 제도를 운용하는 방식과 인력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획득업무 총리실 이관 추진
군납 업무를 보는 한 영관장교는 “군납비리는 곧 인사비리”라며 “지휘관이 돈과 이권이 생기는 보직에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앉히거나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지휘관에게 뇌물을 바치는 환경에서 군납비리의 싹이 자란다”고 말했다. 이 장교는 또 기무사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강조했다. 군납 과정 전반에 관여하는 기무사가 제 기능을 못하거나 부패할 경우 군납비리가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군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군납비리의 주요 원인으로 군 조직의 폐쇄성을 꼽았다. 뭐든지 보안이니 비밀이니 하면서 감추고 공개하지 않는 풍토가 비리를 조장한다는 것.
모 방산업체 대표인 H씨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그는 “획득 규정이나 절차는 지난 10년 이상 보완하고 수정해온 것이므로 별 문제가 없다”며 “지나친 규제와 통제, 그리고 군의 전문성 부재가 비리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웬만한 정보를 다 공개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게 비밀이다. 그러니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비밀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부정한 로비로 발전되는 것이다.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모든 사업이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 업체들이 실력보다 인맥에 의존하는 것은 군의 실무자들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자기와 가깝거나 잘 대해주는 사람이 있는 업체로 기울어지게 된다. 군이 전문성을 갖추면 무기도입의 경우에도 에이전트(대리점)를 거칠 필요 없이 직접 외국 회사와 협상할 수 있다. 그러면 그만큼 비리 소지가 줄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정부는 무기도입 업무를 관장하는 국방부 획득실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고 견제 기능이 없다는 군 안팎의 여론에 따라 획득업무를 국무총리실로 이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총리 직속으로 획득청을 설치해 민간인들이 중심이 돼 획득심사를 하고 국방부는 집행기능만 갖게 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무기를) 쓰는 당사자가 결정하는 게 사리에 맞다”며 반발하고 있으나 잇따른 군납비리 사건으로 명분을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