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수입차 가격 왜 비싼가

초호화 마케팅, 빗나간 과시욕에 수입차 시장은 지금 ‘거품전쟁’

  • 글: 이심기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sglee@hankyung.com

    입력2004-06-30 1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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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량 성능이나 용도는 뒷전. 풀 옵션만 고집하는 빗나간 과시욕이 수입차 가격의 거품을 키우고 있다.
    • 수입차 업체는 업체대로 드라마 협찬에, 연예인을 내세운 판촉행사에 돈을 쏟아부으며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수입차 대중화시대를 앞두고 수입차 가격의 ‘거품’을 걷어낼 방법은 없을까.
    수입차 가격 왜 비싼가
    일본 도요타가 미국의 프리미엄급 자동차시장을 겨냥해 만든 렉서스(LEXUX)의 현지 판매가격은 중급모델인 GS300의 경우 3만8725달러. 한국돈으로 4647만원(1달러=1200원 기준)이다. 가장 고급모델인 LS430도 5만5125달러로 한국돈 6615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렉서스가 태평양을 건너오면 가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GS300의 한국내 판매가격은 미국 현지 판매가격보다 45% 이상 비싼 6780만원이고 LS430은 66%나 비싼 1억1000만원에 버젓이 팔리고 있다.

    올들어 4월까지 국내에서 팔린 렉서스는 모두 158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나 증가했다. 수입차시장 점유율 22.9%로 BMW에 1%포인트 뒤진 2위. 국내 소비자는 렉서스의 ‘L’자 엠블렘이 상징하는 부(富)의 코드(code)만큼이나 엄청난 웃돈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메이커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수입차 가격이 미국이나 유럽의 현지 판매가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다. 수입차 업체들이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례로 세계 최대 자동차메이커인 GM의 캐딜락 SRX의 미국 현지 판매가는 5만9775달러. 한국돈으로 7173만원이지만 한국에서는 8680만원에 팔리고 있다. 럭셔리카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 벤츠도 예외가 아니다. 최상위급 모델인 S클래스 350의 경우 독일 현지 판매가격은 6만840유로(약 8800만원)지만 국내에서는 1억4800만원에 팔리고 있다.



    영국의 고관대작들이 즐겨탄다는 재규어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지 판매가보다 국내 판매가가 비싼 것은 마찬가지이다. 재규어 최상위 모델인 XJ 4.2의 영국 현지 판매가는 4만5193파운드(9712만원, 1파운드=2149원 기준)이지만 국내 판매가는 1억2780만원으로 영국보다 3000만원 가량 높게 책정돼 있다.

    정말 유명 수입차는 전세계를 통틀어 유독 한국에서만 이렇게 비싼 것일까. 업체와 모델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게 수입차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BMW를 예로 들어보자. BMW의 ‘기함(旗艦)’으로 불리는 최고급 7시리즈의 대표주자인 745Li 모델의 독일 현지 판매가격은 8만200유로(옵션 제외한 기본가격). 한국돈으로 1억10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똑같은 차를 미국에서 살 경우 7만3300달러(8800만원)로 20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한국내 판매가격과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국내 판매중인 BMW 745Li에 적용된 옵션(디지털 오디오, 내비게이션시스템, 뒷좌석용 에어컨, DVD체인저, 가죽시트, 이중유리, 실내 우드트림 등)을 미국 판매차량에 적용할 경우 옵션 비용만 1만3635달러가 추가로 발생, 판매가격은 1억6760만원이 된다. 여전히 한국이 미국보다 6000만원 이상 비싸다.

    최고 60%까지 가격차

    미국 시장이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전세계 자동차메이커가 총집결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판매가격이 미국내 가격보다 60%나 비싸다는 점은 소비자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처럼 유독 한국에서 판매되는 수입차 가격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입차업체들은 한국의 높은 세금(관세 등)과 운송비, 옵션을 선호하는 소비자 성향 등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라고 설명한다.

    대부분 배기량 2000cc 이상인 수입차의 경우 특소세 10.8%와 관세 8%, 교육세 5.6% 등 세금만 25% 정도가 부과된다. 여기에 차량 가격의 10%에 해당되는 부가세와 운송비 및 보험료까지 감안하면 현지 판매가보다 35% 이상 비쌀 수밖에 없다.

    메르세데스 벤츠 모델 중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C클래스 200k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 차의 국내 판매가격은 5600만원. 이 모델을 옵션을 뺀 기본 사양으로 독일에서 구입할 경우 2만5400유로(3680만원)면 충분하다. 한국보다 무려 2000만원이 싼 셈이다.

    하지만 옵션 차이를 따져보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당장 한국내 판매차량과 동일한 옵션을 추가하기 위한 비용만 해도 차 가격의 절반에 가까운 1만2600유로가 들어간다. 세금 및 부대비용을 제외한다 해도 당장 5500만원으로 뛴다.

    여기에 운송료 357유로와 운송보험료 9만3000원을 합치면 6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관세 445만원과 특소세 240만원, 교육세 72만원까지 감안하면 가격은 6300만원으로 불어난다. 차 값의 10%인 부가세를 다 합치면 판매가격은 6960만원으로 늘어난다. 등록비는 물론 별도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다량구매에 따른 고정비 절감과 본사와의 가격 협상을 통해 소비자가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에 차를 구입,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에서 예로 든 S350 모델도 이 같은 계산법을 적용할 경우 1억4500만원으로 국내 판매가인 1억4800만원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BMW 차량 중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530i도 마찬가지. 이 차량의 독일내 기본모델 가격은 4만3100유로지만 국내 판매차량과 똑같은 옵션-제논 헤드라이트, 크루즈 컨트롤, 주차경보장치, 컴포트 시트, 선루프, 런플랫 타이어 등-을 설치할 경우 6만2620유로로 가격이 올라간다. 이는 한국돈으로 8760만원. 국내 판매가인 8690만원보다 비싸다는 게 BMW코리아의 설명이다. 물론 똑같은 옵션 사양 차량의 미국내 판매가격은 6840만원으로 한국보다 훨씬 싸다. 그러나 수입차에 대한 양국의 세율과 대량 판매에 따른 운송비 및 보험료 절감분을 고려하면 국내 판매가가 턱없이 높다고만 볼 수 없다는 게 BMW코리아의 설명이다.

    ‘풀 옵션’ 선호가 가격 상승 부추겨

    미국차의 경우는 어떨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GM캐딜락 CTS모델의 미국 현지 판매가는 4만1620달러(4990만원)로 한국내 판매가인 5935만원보다 19%나 싸다.

    김근탁 GM코리아 사장은 이에 대해 “국내 판매차량의 경우 미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기본 모델에 서스펜션, 루프, 트랜스미션, 디지털 오디오 등 최고의 옵션 사양을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수입차 업체들은 환율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현지 판매가보다 국내 판매가격이 더 낮은 경우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폴크스바겐 뉴비틀의 경우 국내 판매가격이 3280만원이지만 독일내 판매가는 2만1250유로(3030만원)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 반면 에어컨, 알로이 휠, 열선내장 가죽시트, 선루프, CD 체인저 등 500만원 상당의 옵션이 추가돼 사실상 국내에서 사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내 수입차시장이 아직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수입차 가격이 높은 이유로 설명된다. 미국의 경우 수입차가 전체 승용차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2003년 기준)이고 일본은 4.8%인 데 비해 한국은 올해 처음으로 2%를 넘는 등 아직 시장 점유율이 낮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

    또한 수입차가 아직 대량으로 판매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수입허가 형식승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모델당 30만∼100만달러의 비용을 차량 판매가에 분산시켜 반영할 수밖에 없어 가격 인상요인이 발생한다는 게 수입차 업계 관계자의 해명이다.

    게다가 딜러가 매달 지출하는 매장 운영비 및 임직원 임금, 물류비, 고객 서비스 및 마케팅 비용 등을 감당하기 위해선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데 판매량이 한정된 상태에서 이를 소화하려면 대당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 한마디로 행정비용과 물류비, 마케팅 비용 등을 실판매대수로 나눈 대당 간접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수입차 업체 관계자들은 이러한 정황을 무시한 채 수입차 업체가 고리대금업 수준의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취급받는 것은 억울하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딜러 마진도 10∼15% 수준으로 다른 국가는 물론 국내 수입차 업체 사이에도 큰 차이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물론 대당 가격이 1억원이 넘는 차값을 감안하면 1대를 팔 때 ‘떨어지는’ 이익은 크지만 마진율만 놓고 보면 다른 명품 브랜드와 비교해 결코 높지 않다는 얘기다.

    다소 의아스럽지만 도요타 등 일본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수입차 판매법인이나 임포터(공식 수입업체)들은 지난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시장 쟁탈전이 과열되면서 업체들이 광고비와 판촉비를 대폭 늘려 출혈경쟁을 벌인 게 원인이었다.

    무시 못할 간접비용

    업계 대표 격인 BMW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5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전년도 640억원의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됐다. BMW코리아는 지난해 판매장려금만 전년보다 4배 이상 늘어난 280억원을 집행했다. 광고비도 전년대비 30% 가량 증가한 139억원을 썼지만 매출은 4570억원을 기록, 14.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도 3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광고 선전비만 100억원을 넘게 쓰면서 출혈경쟁에 합류한 게 원인이었다.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의 공식 수입업체인 고진모터스도 지난해 829억원 매출에 1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2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매출은 2002년 561억원에 비해 47%나 늘었지만 손익구조는 악화된 셈이다.

    하지만 수입차 업체의 경영이 악화됐다는 점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입차 가격을 합리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국내기업도 마찬가지지만 본사 입장에서 해외 판매법인이 대규모 이익을 낼 필요는 전혀 없다.

    판매법인은 적자를 내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높은 가격에 본사 제품을 구입, 매출을 늘려주면 그만이다. 판매법인이 이익을 내지 않더라도 본사가 판매하는 이전가격 자체를 높게 책정해 본사의 이익 확대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다면 일차적으로 판매법인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셈이 된다.

    수입차 가격 왜 비싼가

    고가 수입차 일색의 국내시장에서 최근 혼다코리아가 내놓은 3000만원대 ‘어코드’는 수입차 구매 패턴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국내 수입차 업체가 출혈경쟁을 하면서까지 본사 이익에 기여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각종 옵션 등 알짜 이익을 낼 수 있는 선택사양을 추가하면서 수입차 가격을 높여 본사가 그 혜택을 고스란히 챙겨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도요타의 경우 지난 2002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에만 93억원의 순이익을 내 이중 절반이 넘는 51억원을 일본 본사에 배당하는 ‘효자 판매법인’노릇을 했다.

    그렇다면 차종에 따라 기본 가격에 최소 25%, 최고 50% 가까이 추가되는 옵션을 줄여 차값을 낮추면 되지 않을까. 수입차 업체들은 한국 소비자의 구매 특성상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실제로 BMW코리아는 지난 90년대 후반 수입차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옵션의 ‘거품’을 완전히 뺀 3시리즈 컴팩트모델 100대를 수입한 적이 있다. 대당 가격도 3200만원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시도는 결국 참패로 끝났다. 1년 동안 팔린 차가 손으로 꼽을 정도여서 수입한 차의 대부분이 악성재고로 남아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BMW코리아는 최근 컴팩트 SUV(스포츠 레저 복합차량) ‘X3’모델을 들여오면서 본사에 아시아지역, 특히 한국시장용 판매차량에는 가죽시트와 최첨단 옵션이 반드시 추가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대부분 수입차들의 경우 기본 골격과 디자인을 빼면 현지 판매차량과는 완전히 다른, 거의 차를 개조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관계자도 “수입차의 차량시트를 천으로 만들면 국내 소비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부대장치 역시 풀 옵션만을 선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 소비자를 위해 특별주문된 차를 만든다는 얘기다.

    스포츠카 마니아가 열광하는 포르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가죽시트, 알루미늄 룩 패키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 풀 옵션만을 선호하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는 포르셰 모델은 이런 사양이 기본으로 장착된다. 예를 들어 카이엔터보이의 경우 해외에서는 추가로 장착하는 옵션인 프로트 앤드 리어 파크 어시스트, 터보 휠 등의 다양한 장치들이 국내 판매 차량에는 기본으로 갖춰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옵션 선호 현상이 수입차 업체가 의도적으로 조장한 럭셔리(Luxury) 마케팅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소비자의 잘못된 소비행태만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는 없다. 일부에서는 올들어 수입차 업계에서 유행처럼 번진 PPL(Product Placement) 등이 수입차 과소비 현상을 부추긴 단적인 사례로 지목하고 있다.

    드라마 협찬은 ‘필수’

    아우디의 경우 지난해 차값만 1억8000만원이 넘는 럭셔리 세단 뉴 아우디 A8의 출시를 앞두고 SBS드라마 ‘올인’에 협찬, 사전 붐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드라마 ‘올인’에는 포드의 스포츠카인 빨간색 머스탱과 검은색 링컨 타운카 등이 등장, 각 업체마다 치열한 PPL 마케팅전쟁을 벌였다. BMW도 MBC 미니시리즈 ‘위기의 남자’에서 남자 주인공이 SUV ‘X5’를 타고 다니는 장면이 방영된 이후 판매실적이 대폭 증가하는 효과를 누렸다.

    근래 각종 드라마에 등장한 수입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그랜드체로키(KBS ‘노란손수건’)와 세브링 컨버터블(MBC ‘인어아가씨’), 메르세데스벤츠의 SUV M클래스(SBS ‘흐르는 강물처럼’) 등 한 손으로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다. 수입차 업체는 차량 제공은 물론이고 드라마 제작비에도 수천만 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 돈은 결국 개인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몫이 된다. 업계에서는 대략 차값의 10% 정도를 각종 마케팅 비용으로 추산하고 있다.

    판매시기와 지역에 따라 수입차의 가격 편차가 심해지면서 적정가격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수입차 가격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일부 수입차 업체들이 딜러십을 남발, 서울지역 내에서도 동일차량의 판매가격이 수백만 원에서 1000만원까지 벌어지고, 딜러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수입차를 정가(定價)에 사면 바보’라는 얘기마저 들린다. 수입차 전시장이 즐비한 강남의 도산대로를 돌면서 흥정하면 얼마든지 가격을 깎을 수 있다는 얘기는 수입차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설로 통한다.

    게다가 최근 2∼3년 동안 일부 수입차 업체들이 대대적인 할인판매 행사를 ‘상설화’하면서 제살 깎기 경쟁을 벌인 점도 수입차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수입차 업체간 시장점유율 격차가 커지고 내수침체의 여파가 수입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실제로 대부분 업체들이 연초부터 유류비 지원, 등록비 면제 등 각종 명목으로 판매가에서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600만원 이상 깎아주는 관행이 일반화됐다. 이 같은 할인 판촉에 익숙해지자 소비자들은 수입차 가격의 거품과 그간 업체가 폭리를 취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많이 남으니 그렇게 깎아주는 것 아니겠냐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수입차 가격=고무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반대의 경우이긴 하지만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이달 중 시판에 나서는 세계적인 명차 ‘마이바흐(Maybach)’도 수입차 가격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최첨단 자동차의 결정체로 불리는 이 차는 최대출력 550마력에 V12 터보엔진을 장착,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단 5.3초에 불과하다. 안전 최고속도는 시속 250km에 달한다. 차체 길이가 6m에 달해 뒷좌석이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 수준이고 600W 오디오시스템, TV수신기, 위성전화 등도 갖추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해 10월, 홍콩의 남쪽 리펄스 베이에 아시아 최초로 ‘마이바흐센터’를 열면서 공시한 판매가격은 62모델이 680만홍콩달러. 등록세를 포함하면 한국돈으로 무려 10억원이나 된다. 차 한 대값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액수다.

    이보다 낮은 등급인 57모델은 570만홍콩달러로 8억8000만원이다. 한때 이 차의 국내 수입 판매가격이 12억원을 호가할 것으로 예상한 ‘그레이 임포터(비공식 수입자)’들이 해외에서 반입, 대당 10억원 이상에 국내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이 차의 국내 판매가격은 62모델이 7억2000만원, 57모델은 6억원에 정해졌다. 홍콩보다 무려 2억8000만원이나 싼 셈이다. 회사측은 홍콩내 판매가격이 현지 최고 부유층의 소득수준과 관세를 포함한 자동차 관련 세제 등 현지 사정을 감안해 책정된 것으로 한국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지만 납득하기 힘들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시장 성숙되면 가격 거품 빠질 것”

    결론적으로 한국의 수입차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비싼 것은 차량의 성능이나 용도보다는 브랜드 이미지나 과시욕을 기준으로 구매하는 소비자의 왜곡된 구매 패턴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그만큼 고가 마케팅을 펼칠 ‘토양’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수입차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이 맞물리면서 대대적인 마케팅 투자가 발생하고 이에 따른 비용 상승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상호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수입차시장이 성숙하면 가격의 거품이 빠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혼다코리아가 고급 세단인 ‘어코드(Accord)’를 3000만원대에 내놓으면서 수입차의 구매 패턴이 좀더 합리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수입차협회의 한 관계자는 “제품의 가격은 소비자 선호도와 시장 경쟁상황, 업체의 마케팅 정책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니겠느냐”라며 “초기 과열양상이 진정되면 자연스럽게 적정 가격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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