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원 10명의 노력만으론 부족, 원외 지도부가 뒷받침할 것
- ■ 나는 특정 정파 소속 아닌 ‘당파(黨派)’ 소속
- ■ 한나라당은 재보선 승리 도취, 열린우리당은 우왕좌왕
- ■ 재창당 및 당명 개정 요구는 시기상조
- ■ ‘여성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 할말 없다
●1945년 황해도 해주 출생 ●1968년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 주민조직가 훈련 ●1988∼92년 천주교도시빈민회 회장 ●1991∼99년 서울 관악구의회 1, 2대 의원(무소속) ●1997년 ‘국민승리21’ 여성위원장 ●2000∼04년 민주노동당 부대표
지난 4·15 국회의원총선거에 이어 새삼 민주노동당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한국 정당사 초유의 ‘원내 정당-원외 지도부’라는 묘한 구조가 가져올 정치실험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민주노동당을 이끌어갈 김 대표의 의중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빈민운동가 출신으로 1997년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의 여성위원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민주노동당 창당 후 당 부대표와 서울시지부장으로 활동해왔다.
6월12일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사 대표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그의 사무실은 소박하다. 책상, 컴퓨터 등 몇몇 집기를 제외하곤 그 흔한 책들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날마다 일정을 소화하기 바빠 권영길 전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으로 옮기고 난 뒤에도 아직 자신의 짐 정리를 전혀 못했다고 한다.
사무실 창가엔 얼추 30개쯤의 난(蘭) 화분과 화환들이 줄지어 있었다. ‘빈민운동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30여년의 도시빈민운동 이력이 말해주듯 ‘한국빈민문제연구소’에서 보낸 축하 화환, 대학생 시절 청계천 ‘뚝방’에서 김 대표와 함께 빈민운동을 벌였던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보낸 난 등도 눈에 띄었다. 책상 위에도 난 화분 하나가 한쪽 귀퉁이에 오롯이 놓여 있었다. 화분에 달린 리본에는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 대표는 단신(短身)이지만 온화하고 푸근한 인상이다. 그는 “그래도 싸울 일 있을 땐 무섭게 싸운다”며 웃음을 건넸다. 기자에게 손수 녹차를 대접하는 김 대표에게 기습질문부터 던졌다.
“만두 좋아하세요?”
“좋아하는데 이번 ‘불량 만두소’ 사건을 접하면서 야, 이래선 정말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것은 법으로만 다스려선 안 되고 국민들이 단호히 응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게 바로 민생침해죠. 만두는 특히 어린이들이 많이 먹잖아요. 어린이에게 좋은 음식을 줘야 하는데 어른들의 상혼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해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일 하나부터 바로잡는 게 민생정치지요.”
민생정치를 유독 강조하는 민주노동당의 수장(首長)답게 김 대표는 질문을 매끄럽게 받아넘겼다.
투표시스템 문제, 곧 원인 공개
-이번 당 지도부 선거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총선이 끝나자마자 치러진 선거였고, 충북과 제주지역은 유세조차 못했을 정도로 기간이 짧아 더 많은 당원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온라인 투표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투표가 연기됐는데, 정확히 어떤 문제점이 있었고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원인을 공개하라는 당원들의 요구가 빗발치던데요.
“선거방식이 너무 늦게 결정 나면서 외주업체에 발주했던 프로그램 개발시간이 촉박해서 생긴 문제였던 것으로 압니다. 선관위에서 보고서 작성을 끝냈으니 곧 당원들에게 공개할 겁니다.”
-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민주노총에서 당 대표 경선 후보자를 내지 않은 건 이상한데요?
“지난 4년간의 당 활동을 계승하면서도 변화된 정치상황에 맞춰 당을 혁신하는 대표, 그리고 당내 다양한 견해와 그룹을 통합할 수 있는 대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일 겁니다. 민주노총을 주축으로 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굳이 대표가 아니더라도 대의기관에 대한 할당제를 통해 충분히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5만여 진성당원을 자랑하면서 왜 유권자는 2만6000여명뿐인가요?
“당권규정이 매우 엄격합니다. 입당 후 3개월이 지나야 당권이 생기고, 입당한 지 오래된 당원들의 경우도 당권 확정 이전 12개월간 3개월 이상 당비를 내지 않으면 당권이 정지됩니다. 이런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다 보니 당권자 수가 좀 적었던 거죠.”
-이번 선거에 유권자의 63.3%만 투표에 참여했는데, 당원 충성도가 높은 민주노동당치곤 의외로 투표율이 저조합니다.
“총선 직후라 당 조직의 피로도가 높았습니다. 게다가 온라인 투표가 한때 중단됐던 점도 투표율에 영향을 줬던 것 같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선거기간은 짧고 후보는 많다 보니 당원들이 투표기준을 제대로 설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전의 ‘권영길 대표 체제’와 어떤 차별성을 가질 것인지 자못 궁금한데요.
“정치적 조건이 많이 변했습니다. 따라서 그에 걸맞은 계승과 혁신이 필요하죠. 진성당원제와 평당원 민주주의, 정책 위주의 당 운영, 민중운동 진영과의 연대는 계승돼야 할 것이지만, 원내와 원외를 아우르는 새로운 대중정치활동의 전형을 만들어내는 것은 새로운 과제라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이 이번에 당직과 공직(의원직)을 분리하게 된 이유는 뭡니까.
“민주노동당은 사회운동적 정당이라는 성격과 원내 정당이란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으로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까요? 원내 정치로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방지하면서 원내외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뤄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중에 인지도가 높은 의원 당선자들이 당직을 떠남에 따라 대중정당으로서의 외연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기존 정당같이 원내 중심으로 정당이 운영되는 입장에선 어렵게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오히려 민주노동당은 원내외가 똘똘 뭉치니까 대중정당화에 더 유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내정치와 원외투쟁은 하나의 활동”
-신임대표로서 당을 활성화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 봅니까.
“당을 국민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선 민주노동당의 정책이 보다 더 정교하게 가다듬어져야 할 것이고 정책과 당을 설명하는 방식도 보다 더 대중적으로 돼야 합니다. 나아가 당원들이 자기가 사는 삶의 현장에서부터 생활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마인드와 체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의원단이 일상적으로 당 최고위원회의 지도를 받도록 하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당원 직선으로 뽑힌 최고 지도부인 최고위원회의 지도를 받는 것은 조직 구성의 원리상 당연합니다. 의원과 당이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원내 의원단과 원외 지도부라는 특이한 구조하에서 각자 바람직한 역할분담은 어떤 것이라 봅니까. 13명의 최고위원 중 원내를 대변하는 사람은 천영세 의원뿐인데요.
“원내로 진출한 우리 10명의 의원들, 누구보다 훌륭한 국회의원이 되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10명의 노력만으론 부족합니다. 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한국사회 개혁의 상징, 투쟁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원외 정치가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원외 투쟁으로 원내 정치가 힘을 얻고, 원내 정치로 원외 투쟁이 활성화되는 새로운 대중정치를 펼 겁니다. 원내 의원단과 원외 지도부가 역할을 분담할 순 있어도 결국은 하나의 활동일 뿐입니다. 원내 의원단 회의에 당 지도부가 함께 참여하고 일상적인 정보교류를 통해 의정활동을 함께할 계획입니다.”
김 대표는 6월6일 당 대회 당시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당을 혁신해 2012년 집권의 밑그림을 그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을 위한 ‘2012년 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위원회의 구성내용과 역할은 어떤 겁니까.
“말 그대로 2012년 집권의 마스터플랜을 작성하는 게 2012년 위원회의 역할입니다. 최고위원 중 한 분이 위원장을 맡고 당내의 정책·기획·조직역량들을 모아 집권의 비전을 만들고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활동방향을 제시하게 될 겁니다.”
-당 혁신방안에 또 어떤 게 있나요?
“이번에 새로 도입된 지도-집행체계인 최고위원회를 잘 운영하는 게 가장 큰 혁신이죠. 나아가 평당원들의 목소리가 당 사업에 더욱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인터넷 베이스를 강화하고 당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투표시스템을 설치할 겁니다. 집권을 위해 당의 약한 고리인 여성과 지역에도 투자하겠습니다.”
-이런 다양한 과제와 사업들을 2년의 임기 중 다 실현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임기가) 짧죠. 하지만 집 지을 때 하루 아침에 뚝딱 짓지는 않잖아요. 중요한 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그 기초작업을 성실하게 해서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탄탄대로로 나갈 수 있는 작업을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 2012년 집권의 밑그림을 확실히 그리겠다고 공약했습니다. 18대 대통령선거가 있는 2012년쯤이면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확실히 검증완료하는 시기가 될 거라 봅니다.”
-취임사에서 ‘민생과 개혁을 위한 정치’를 논의하는 5개 정당 대표 회동을 제안할 것이라 밝혔는데 진척이 있나요? 회동이 성사될 것으로 보시는지….
“6월12∼16일로 예정된 정책위의장선거가 끝나 당3역이 제대로 갖춰지면 공식제안을 할 계획입니다. 이에 앞서 6월7일 국회 개원식 후 노무현 대통령과 5당 대표가 가진 환담에서 5당 대표 회동을 공론화했고요. 다른 정당들이 정쟁은 그치고 민생과 개혁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성사되리라 봅니다.”
“민생·통일문제, 균형적으로 병행”
-이번 당 지도부 선거에서 최고위원 13명 가운데 사무총장과 여성부문 최고위원 등 8명이 당내 정파 중 하나인 전국연합 계열의 민족자주파(NL) 계열로, ‘싹쓸이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복잡한 정파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나갈 생각입니까. 당 안팎의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성장통(成長痛)입니다. 성장하기 위해 거치는 통과의례로 볼 수 있습니다. 정당 안에 특히 진보정당 안에 다양한 노선이 경쟁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다만 이런 노선경쟁이 한 분파의 이익이나 당의 이익만을 위한 게 아니라 노동자·서민의 이익을 실현하고 국민의 이익을 실현하기에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경쟁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실천적 측면에서는 치열한 토론과 단일한 실천이 중요한데요, 집단지도체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 통합 단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 안팎에선 김 대표가 정파 갈등을 무난히 조정해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김 대표 스스로는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굳이 따지자면 나는 당파(黨派)입니다. 내 소속은 민주노동당이죠.”
-이번 선거에서 소위 NL계열 인사들이 많이 당선됐다는 것 때문에 예전 ‘범(汎)좌파’의 영향력이 컸던 권영길 대표 체제와 비교할 때 당 정책 면에서 변화가 예상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특히 그간 매진해온 개혁민생정치 대신 이라크 파병,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등 미국 관련 문제를 우선순위로 둘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요.
“우리는 민생정치와 통일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간다는 입장입니다. 평등과 자주의 이념을 내걸고 실제 그렇게 해왔고요. 그것이 또한 강령에 맞는 정신이거든요. 따라서 어느 하나를 우선시하기보다는 균형을 잃지 않도록 두 가지를 병행할 겁니다. 지도부 구성을 두고 특정 정파가 더 큰 영향력을 지닌 것처럼 비쳐 염려들을 많이 하는데 사업의 우선순위를 따지기보다는 두 가지를 평행선상에 둘 겁니다.”
-정파 면에서 볼 때 당 지도부와 의원단간에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편으론 김 대표가 친화력이 뛰어나고 원만한 성품이어서 정파 갈등을 무난히 조정해낼 것이란 기대감도 큽니다. 같은 이유로 천영세 의원단대표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은데….
“천영세 의원단대표와는 지난 4년간 당 대표단의 일원으로 호흡을 맞춰왔습니다. 천 대표도 원만하고 통합적인 성격인 데다 오직 당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분이기 때문에 의원단과 당 지도부와의 관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다른 정당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계획입니까. 또 4·15 총선 이후 각 정당의 행보에 대해 평가한다면요.
“국민의 눈으로 보고 정책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함께할 부분과 함께하지 못할 부분이 분명히 보입니다. 이라크 파병 재검토 같은 사안에 대해 100명에 가까운 의원들이 당을 뛰어넘어 서명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반면 각 정당들이 4·15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잊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듭니다. 4·15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는 개혁과 민생입니다. 한나라당은 재보선 승리로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기본은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지는 않았나 걱정됩니다. 열린우리당은 강력한 개혁추진세력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역할이 참 크다는 생각에 새삼 어깨가 무겁네요.”
-당 일각에서 당명 개정을 포함한 재창당 주장의 목소리가 불거져나오는데요.
“현재로서는 재창당과 당명 개정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정당들은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선거를 맞이하게 되면 이벤트용으로, 수혈용으로 당명을 바꾸기도 하고 재창당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의 변화속도가 무척 빠르긴 하지만 4년 전 수많은 토론을 거쳐 정해진 강령과 수차례의 당원투표를 통해 제정된 당명을 바꿀 정도는 아직 아닙니다.”
-정치경험이 거의 없는 당 대표로서 다른 당과의 관계설정에 미숙한 부분이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드는데요.
“국회 중심의 중앙정치만이 정치경험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구의회 활동, 30여년의 빈민운동, 민주노동당 부대표로서의 4년 활동도 정치경험입니다. 지역주민들과의 오랜 활동으로 누구보다 민의를 잘 알고 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요. 물론 기존 정치권의 관행과 관례엔 미숙합니다. 그러나 그게 정치력의 본질은 아니잖아요?”
-이번 6·5 재보선에서 득표율이 저조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우선 조직표가 당락을 좌우하는 보궐선거의 특성을 감안해야 합니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의 지역조직은 아직 취약합니다. 취임사에서 밝혔다시피 지역조직에 대한 투자를 통해 중앙정치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제3당에 걸맞은 조직역량과 정치력을 가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강태운 사건’의 교훈
-얼마 전 민주노동당 고문이던 강태운(72)씨가 간첩 혐의로 구속기소됐는데 그는 당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큰 역할을 한 건 아니고요. 한두 번 회의에 나왔고…우리로서는 그 문제에 대해 뭐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민주노동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론 강 고문에 대해 법적 판결이 난 상태이고…. 강 고문이 자신의 행동을 확신을 갖고 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입장에선 잘 모르고 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현행법상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제는 민주노동당이 어떤 일을 할 때 분명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동안은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던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같이 일했는데, 이제는 같이 일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당헌과 강령을 중시하면서 활동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의 발전을 위해 지역과 여성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구상은 어떤 겁니까.
“지구당 상근자 급여를 중앙당이 책임지는 등 정책과 재정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지구당에 도움이 되도록 투자하겠습니다. 여성정치력 향상을 위해서는 여성정치아카데미를 개설하고 여성정치기금을 확충할 생각입니다. 여성들이 자리에 앉아서 정치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노동자·농민과 현장에서 같이 호흡하며 단련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정치를 ‘판갈이’하겠다고 강조했는데, 그 의미는 뭡니까. 구체적 방법론이 있는 건가요?
“말 그대로 풀뿌리 보수주의가 만연한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를 민주노동당이 나서서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곳으로 바꾸겠다는 의미입니다. 지방자치 판갈이를 위해 지역과 여성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며 지방자치를 통해 진보가 생활 속에 뿌리내렸을 때 비로소 민주노동당도 집권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당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지요. 지방자치학교를 설치해서 후보를 조기에 발굴하고 지역적 조건을 고려한 진보적인 지역정책을 준비해 가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여성 당 대표로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선 할말이 있지만 여성 당 대표, 여성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서는 사실 할말이 별로 없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걸맞은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아픈 데를 찌르느냐”
-6월7일 17대 국회 개원 축하연설 직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의 간담회가 있었는데, 비공개로 이뤄진 것으로 압니다. 이날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국회 개원식 후의 의례적인 자리였기 때문에 긴 얘기는 할 수 없었고, 나는 개혁을 더 열심히 추진하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대통령과 야당 의원들이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고, 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대통령 회담을 이야기했는데, 야당 의원들과 대통령의 만남이 먼저 추진돼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6월9일 청와대 만찬을 하게 된 거죠.”
6월9일 김 대표와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했다. 진보정당 대표와 의원들이 청와대에서 현직 대통령을 만난 건 헌정사에서 초유로 기록될 만하다.
-만찬 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고 했는데,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내가 인사말을 하면서 분위기가 좀…. 사회자가 내게 만찬 인사말을 하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어쨌든 진보정당이 원내에 50년 만에 들어갔고 민주노동당이 대통령 만나는 것도 쉽지 않게 이뤄졌다는 등의 말들을 하면서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한 것에 대해 국민들은 개혁의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죠.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처음부터 그렇게 아픈 데를 찌르느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려 했는데 전반적으론 그렇지 않았어요. 만찬시간이 3시간쯤 걸렸는데 중간중간 다소 격앙된 분위기도 있었고요.”
-당시 김 대표께서 “여러 가지로 (대통령과) 생각이 너무 달라 중간에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첫 만남이어서 참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는데, 어떤 반박을 하고 싶었나요?
“대통령한테 실제로 이렇게 얘기했어요. ‘참 답답합니다. 여러 가지로 다른 면을 느끼게 돼서 답답합니다’라고 했죠. 그랬더니 대통령은 ‘처음 만나서 그럴 겁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면 같은 부분이 더 많을 겁니다’라고 답하더군요. 민주노동당과 노 대통령이 현안 문제들을 보는 시각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대통령과의 두 번째 만남이 이뤄지면 어떤 말부터 하고 싶은가요?
“글쎄요. 두 번째가 언제쯤 될지 모르겠는데…그날 만찬이 끝난 뒤 노 대통령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오늘은 만찬 초청으로 만났지만 다음번엔 민주노동당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민주노동당 대표로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첫 질문을 인터뷰 마지막에 하게 되네요. 30여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빈민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뭡니까.
“정확히 1969년 1월3일부터 빈민운동을 시작했어요. 그해에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에서 지역주민조직 활동가를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각 종교 교단에서 6명을 뽑아 6개월간 현장에서 활동가로 훈련시켰는데 내가 1기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계속 그 길을 걸었죠. 난곡동에서 30여년을 살았는데 재개발로 철거돼 지금은 불광동에 있는 딸의 집 옆에 임시거처를 마련했어요. 기회가 닿으면 다시 난곡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 창신동과 난곡동 등지에서 빈민운동을 할 때 김 대표는 ‘사라 아줌마’ 혹은 ‘사라다 아줌마’로 불리곤 했다. ‘사라 아줌마’는 천주교 신자인 그의 세례명이 ‘사라’이기 때문. ‘사라다 아줌마’는 빈민운동 당시 노인들이 그를 좀더 쉬운 발음으로 부르려다 보니 그런 별칭이 붙게 됐다고 한다.
진보정당의 대표로 우뚝 선 ‘사라 아줌마’는 ‘아줌마는 강하다’는 속설을 사실로 증명해낼 수 있을까. ‘아저씨’들이 지지해온 민주노동당을 ‘씩씩한 언니들의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그가 ‘포스트 권영길’ 체제를 어떻게 이끌지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