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仙家의 낭만과 풍류 가득한 120칸 사대부가

  • 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입력2004-07-02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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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강릉의 선교장에는 ‘신선이 거처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뜻의 ‘선교유거(仙嶠幽居)’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에 나아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나이 들어서는 선교장으로돌아와 여생을 보냈다는 효령대군의 후손들. 3만평에 달하는 전통가옥 곳곳에서 이들의 인생관이 묻어난다.
    仙家의 낭만과 풍류 가득한 120칸 사대부가

    창덕궁 부용정과 흡사한 활래정은 선교장에서 가장 멋스러운 곳. 주자의 ‘관세유감’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산수화에서나 나올 듯한 수백 년 된 벽송(碧松)들이 집 뒤를 장식하고, 집 앞으로는 연못의 홍련(紅蓮)들이 연향을 뿜어내는 집. 10대에 걸쳐 300여년간 유지돼온 강원도 강릉의 선교장(船橋莊)은 고택 전문가들로부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된 바 있다.

    대지가 3만평이나 되는 선교장은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통가옥. 큰사랑채 열화당과 작은사랑채, 행랑채, 연지당, 동별당, 활래정, 서별당 등 10여개 건물에 120칸이 들어서 있다. 지금도 계속 집안 규모를 넓히고 있어 조선시대 민간주택의 한계인 99칸을 초과하게 됐다.

    선교장의 지세를 살펴보면 먼저 대관령에서 동해 쪽으로 내려오는 산세 한 가닥이 오죽헌 자리를 만들고, 거기서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가 시루봉으로 솟은 점이 눈에 띈다. 시루봉의 맥은 경포대 쪽으로 올라가면서 여러 개의 자그마한 내청룡과 내백호를 분화해놓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알파벳 ‘U’자 같다. 산세도 높이 200m 내외여서 위압감보다는 편안함을 준다. 청룡과 백호가 활처럼 둥그렇게 감싼 집터의 아늑함 때문일까. 이곳은 문사(文士)들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곳으로 느껴진다.

    이곳을 집터로 잡은 주인공은 효령대군의 11세손인 가선대부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1703∼81)이다. 이내번은 한 떼의 족제비가 일렬로 무리 지어 서북쪽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그 광경을 신기하게 여겨 뒤를 따라갔는데, 이 족제비떼가 지금 선교장이 들어선 땅 부근의 숲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내번은 이곳이 명당이라 판단하고는 선교장을 지었다고 한다.





    仙家의 낭만과 풍류 가득한 120칸 사대부가

    선교장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강백씨 내외.

    선교장을 상징하는 열화당(悅話堂)과 활래정을 지은 사람은 이내번의 손자 오은(鰲隱)거사다. 열화당은 ‘즐겁게 이야기하는 집’이란 뜻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정감을 일으킨다. 또 오은거사는 연못에 연꽃을 심고 그림 같은 정자를 세웠는데 바로 활래정이다. 그는 거진출진(居塵出塵·속세에 살면서도 속세를 벗어나 있음)을 도모한 도가적 취향의 소유자임에 분명하다.

    그 때문일까. 선교장에선 선가(仙家)의 풍류가 배어나온다. 한국의 지적 전통을 이루는 유·불·선 삼교(三敎) 중 가장 낭만적인 게 선가이다. 유가의 현실참여적 면모와 불가의 초탈적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시절 현실세계에서 부지런히 일하다 은퇴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매력적인 일 아닌가.

    호남 민요 중 새를 쫓는 노랫말 중에 ‘배다리 통천댁으로 가라’는 대목이 있다. 그와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선교장의 조상 중 한 명이 통천 군수를 지낼 때 극심한 흉년이 들자 집 창고에 있는 쌀 수천 석을 풀어 백성들에게 나눠줬는데, 그 일 이후 선교장이 배다리 통천댁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선교장 솟을대문에는 ‘선교유거(仙嶠幽居)’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신선이 거처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뜻이다. 선교장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한 후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이곳에 돌아왔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仙家의 낭만과 풍류 가득한 120칸 사대부가

    열화당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왼쪽으로 행랑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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