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을 맡긴 계약이 그 근거였다. 이 조치는 총선 선전과 검찰의 ‘차 떼기 자금’ 추징 포기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 계약서엔 신탁 기간이 ‘1년’이라고 돼 있다. ‘처분 신탁’이라면서 실은 신탁사가 국가에 헌납을 못하도록 돼 있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은 622억원짜리(한국감정원 평가) 천안연수원의 관리·처분 신탁계약을 K부동산신탁회사와 체결했다. 소유권도 이 회사로 이전했다. 특약사항을 둬 대선 자금 공판이 종료된 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업무와 관련된 피고인이 추징금을 물게 될 경우 천안연수원을 처분해 지급하고, 잔금도 국가에 헌납하기로 했다.
천안연수원 국가헌납 계약은 지난 총선 때 ‘대선 자금 차 떼기 정당’이라는 악재를 희석시키는 호재가 됐다. 또 이 조치로 안기부 예산 전용 사건과 관련된 법무부의 수 백억 원대 추징 대상에서 천안연수원이 빠질 수 있었다. 또한 한나라당은 검찰의 대선 자금 추징도 모면했다. 2004년 5월22일 안대희 당시 중수부장은 “한나라당이 천안연수원을 헌납하기로 했기 때문에 불법 대선 자금의 국고환수는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법원도 한나라당 피의자들의 대선 자금 추징금을 비교적 경미하게 선고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천안연수원 신탁계약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이익을 본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했다”는 한나라당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한나라당은 ‘부동산 회사’와 계약한 것일 뿐이다. 더구나 계약에 따르면 K부동산신탁과의 신탁계약(특약 포함) 기간은 1년이다. 1년이 지난 뒤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K사 관계자는 “1년 후 논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K사와의 신탁계약으로 한나라당이 천안연수원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포기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특약’에 따르면 천안연수원의 국가헌납 방식은 연수원 매각 후 그 대금을 헌납하는 방식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신탁계약은 ‘을종’ 계약이어서 K사가 마음대로 매각-헌납하지 못하도록 한나라당이 못박아놓았다. K사 관계자도 “계약상 연수원을 K사 임의로 매각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K사측은 “연수원 매입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이들을 한나라당에 연결시켜주고 있다”고 밝혔다. 모 단체 이사는 기자에게 “신탁 계약 체결 이후에도 연수원 매입건(件)으로 한나라당 인사와 여러 차례 접촉했다”고 말했다. 국가에 헌납했다는 천안연수원에 대해 한나라당은 법적, 현실적으로 여전히 재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탁계약으로 한나라당은 얻을 것은 다 얻었다. 그러나 신탁계약이 ‘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소유권 포기’ 및 ‘국가 헌납’을 확증하지는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는 “가격이 맞지 않아 못 팔고 있다. 팔리면 헌납하겠다”고 한 종래의 ‘구두약속’과 어느 정도 차별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한 헌납 약속을 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자금도 개운치 못한 방법으로 받더니, ‘속죄’도 머리를 꽤 쓴 듯 복잡다단한 방식이어서 또 다른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속죄’와 ‘헌납’ 의지가 확고했다면 국가기관에 부동산째 넘겨주고 손을 털 일이었다.
한나라당의 설명을 들어봤다. 이 당 관계자는 “헌납 의사는 변함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계약상으론 1년 뒤 신탁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신탁을 한 상태지만 연수원 매각 결정 등 중요한 재산권 행사는 한나라당이 하게 돼 있다는 것도 맞다. 국가에 직접 현물로 헌납하는 방법은 3월 당시 지도부가 배제한 듯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개발업을 하는 A씨는 천안연수원 매입을 위해 최근 현지를 다녀왔다. A씨는 “부동산의 덩치가 커서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하더라도 구매자는 제한적이다. 더구나 매각 시기도 한나라당이 결정한다. 구매자와 원소유주간에 이면계약이 없으리라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