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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김 심경 고백 “손자들이 늙고 낯선 내게 안기지 않아요. 그게 너무 슬퍼”

  • 글: 김옥채 재미언론인 tutuu@hanmail.net

로버트 김 심경 고백 “손자들이 늙고 낯선 내게 안기지 않아요. 그게 너무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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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밀누설 혐의로 미 연방교도소에 수감돼 8년 동안 복역해온 로버트 김이 지난 6월1일 조기 출소했다. 버지니아에 있는 딸의 집에 가택연금된 그는 “미국과 한국, 두 정부에 억울함도 반감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버트 김 심경 고백 “손자들이 늙고 낯선 내게 안기지 않아요. 그게 너무 슬퍼”
“해군성 정보국에서 그동안 못 받았던 월급 다 지급하고, 지난 세월도 보상해주면서 복직을 허용한다면 다시 가시겠습니까?”“노, 노. 절대로…. 24시간 감시당하는 곳에서 내가 왜 다시 일합니까? 다시는 안 가요.”

“이번 일이 있기 전에 18년 동안 일하던 곳이 아닙니까?”

로버트 김은 대답 대신 웃었다. 시골 장바닥 야바위꾼에게 쌈짓돈을 홀린 맘씨 좋은 촌무지랭이 같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 대목이 모든 걸 설명한다. 더 무엇이 있겠는가. 이 이상 그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야수로 변해야 한다.

선량한 눈빛을 가진 사람

김채곤씨. 미국에서는 로버트 김으로 통칭되며 일명 ‘로버트 김 간첩사건’으로 유명한 그는 사바나 초원의 초식동물처럼 선량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인터뷰를 부탁하면서 내가 마치 그의 목을 지나가는 동맥을 깨물어놓기라도 한 듯한 자의식에 빠지고 말았다. 8년의 옥살이와 패가망신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목전에 놓아두고도 너무나 태연하게 풀을 뜯고 있었으니, 그 무엇이 그의 평화로운 눈빛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로버트 김에게서 기밀을 넘겨받은 전 주미한국대사관 해군 무관 백동일 대령 또한 그에게서 이와 다르지 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로버트 김은 페니 한닢 받지 않고도 백동일 대령에게 정보를 제공하고야 말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3일 그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여기는 ○○방송국이다. 그동안 성원해준 재미동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해달라. 내게도 한국과 미국, 두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당신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를 한 적이 있다. 지난해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워싱턴지역 동포간담회 자리에서 이름 없는 한인언론 기자인 주제에 경호진을 뚫고 들어가 크게 소리쳤다.

“부시 대통령에게 로버트 김 사건을 거론하실 겁니까”라고.

인터뷰 도중, 로버트 김은 내 무용담을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들었다. 그는 한참이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제 얘기를 꺼냈답니까?”

“저는 모르죠.”

“그렇죠?”

“뭐가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섭섭하시죠?”

“섭섭한 것도 없습니다. 나도 정부에서 일해봤기 때문에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한국정부도 고심했을 겁니다. 그래서 적극 나설 수 없었는지도 모르죠.”

나는 아주 건조한 사람

로버트 김은 잔뜩 밀려드는 한국언론과의 인터뷰 때문에 피곤해했지만 다음날인 6월4일, ‘집 감옥’으로 나를 초대했다. 그는 완곡하게 자신이 관련되었던 사건에 대해 질문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다른 언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단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이날 로버트 김은 모친의 부음 소식을 접했다.

30분 넘게 설득해서 겨우 얻어낸 인터뷰 기회가 날아갈 판이었다. 다시 인터뷰 약속을 잡는다고 해도 그에게 지난 세월을 추궁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야 한다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필자는 그를 두 번 만났다. 6월4일과 6월8일. 다음은 두 차례 그와 두서없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6월4일 필자는 케이크를 사들고 그의 집으로 갔다. 필자를 맞는 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눈물을 아꼈다. 아마도 8년 감옥생활 동안 눈물이 다 말랐는지도 모른다.

“저는 부모와 인연이 없었나봅니다. 올해 2월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지만 임종을 못했어요. 이제는 어머니마저 떠나셨습니다. 곧 미국으로 오신다고 했었는데….”

-어머님과 각별하셨을 텐데요.

“그렇진 않았어요. 어머니께선 자식들에게 큰 사랑을 주지 않으셨어요. 세상 모든 자식들은 어머님의 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렇게 눈물샘을 틀어쥐고는 놓아주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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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옥채 재미언론인 tutu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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