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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떠나는 미군, 흔들리는 한미동맹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과 한국의 딜레마

‘줄서기’ 요구하는 미국, 부릅뜨고 노려보는 중국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hamora@donga.com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과 한국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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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한미군 감축을 둘러싼 논의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안보공백과 대북억제력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와 이에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의 자세다. 일본 같은 ‘확실한 줄서기’를 요구하는 미국과 한반도를 향해 미사일을 조준하는 중국.
  • 과연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와 시간은 있는가.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과 한국의 딜레마

6월7일 열린 9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 주한미군 감축문제를 심도 깊게 논의한 자리였다.

“일본이 미일동맹 강화를 거부하면 동남아는 중국의 안마당이 됩니다. 일본이 역할 분담을 거부하면 미 의회와 여론은 안보무임승차를 고수하는 일본과의 동맹을 파기하라고 요구할 것이고요. 미국이 동아시아 개입정책을 포기하면 힘의 공백상태가 초래되어 일본은 홀로 중국과 맞서야 합니다.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1996년 초 일본은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걸프전 당시 파병 대신 재정지원만으로 버틴 일본에 대해 미국은 “계속 무임승차 전략을 선택하면 안보우산을 거두겠다”고 암시했고, 국내에서는 미일동맹 강화와 대중국 압박이 불러올 긴장상황을 경고하며 미·중·일 다자안보체제만이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해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ASEM(아시아유럽정상회담)에서 싱가포르의 고촉통(吳作棟) 총리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 총리에게 앞서의 말로 미일동맹 강화를 ‘권고’했다. 이 말은 결국 하시모토 총리가 최종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곧 이어 4월 일본은 미군의 역내 안보활동을 지원하는 병참기지 역할을 맡는다는 내용의 ‘신미일안보공동선언’을 미국과 함께 발표하기에 이른다.

2004년 한국에 밀려오고 있는 고민은 8년 전 일본이 처했던 것과 흡사하다. 주한미군 2사단 보병여단 3600명의 이라크 차출 소식, 뒤이은 한미양국의 해외미군재배치검토(GPR) 협상, 2005년 말까지 1만2500명의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는 미국측의 제안 등으로 안보관련 당국자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대북억제력 약화와 안보공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고, 이른바 ‘협력적 자주국방’을 위한 천문학적 예산규모도 중구난방으로 흘러나온다.

주한미군의 재편이 단순히 한국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배치 작업의 일환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한국을 일본, 괌과 연결하는 하나의 기지로 형성해 역내 분쟁개입과 대중국 압박용으로 사용하겠다는 군사전략을 갖고 있다. 단순한 병력규모 변화를 넘어 한반도 안보환경의 근본적 재편을 불러오는 이러한 구상은 중국의 반응을 염려할 수 밖에 없는 한국에게는 ‘운명을 가르는 딜레마’나 다름없다.



과연 미국이 향후 동아시아에서 그리려 하는 그림은 무엇이고, 이는 한국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하는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이후 한국군의 전력은 어떻게 재편되는가. 반세기 동안 유지되어온 한미동맹의 성격과 연합작전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현재 상황을 하나하나 정리해보기로 하자.

한국, 일본, 괌이 ‘한 세트’

1990년대 초반 걸프전과 1차 북핵위기를 겪은 클린턴 행정부는 주요한 두개의 전장에서 동시에 승리를 거둔다는 ‘win-win’ 전략을 채택한다. 더 많은 군사력이 필요하게 된 미국은 이전 정부의 미군 감축 방침을 철회하고 아시아와 유럽에 각각 10만의 미군을 유지하기로 결정한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부시행정부는 이러한 전략을 더욱 공세적으로 발전시켰다.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영토점령이나 정권교체 등의 적극적인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듬해인 2002년 5월 발표된 ‘방어계획지침(Defense Planning Guidance)’을 통해 미국은 미국 본토(1)를 안전하게 방어하고, 4개 지역에서 분쟁을 억제하고, 2개 전장에서 ‘신속히’ 승리하며, 그 중 1개 전장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한다는 1-4-2-1 개념을 공식화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전략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미군이 첨단군사기술을 통해 군대를 경량화·신속화해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을 추진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력구조 재편작업과 함께 미국의 주요 전략연구기관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군대를 양대전쟁 전략에 부합하도록 재편하기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그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대규모 미 지상군이 대북억제력을 위해 고정배치 돼 있어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 즉 ‘전략적 유연성’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를 위해 주한미군을 현재의 임무와 구도에서 탈피시켜 괌이나 일본의 미군 전력과 보다 강하게 융합시킬 필요성이 대두됐다. 즉 북한과의 전면전을 위해 무겁고 둔중하게 설계된 미2사단 대신 보다 빠르고 가벼우면서도 적은 수로 구성된 신속기동부대를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태평양사령부의 작전범위에 포함되지만 독자적으로 의회에 보고하는 한미연합사의 독특한 지위 역시 주일미군 등 다른 해외주둔 미군과 동일한 체계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 안보정책 결정자들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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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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