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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떠나는 미군, 흔들리는 한미동맹

즉각적, 감정적 대응은 自主 아니다

‘서먹서먹’ 한미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 글: 최호중 전 외무부 장관·한국외교협회 명예회장

즉각적, 감정적 대응은 自主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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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들이 미국에 반감을 갖는 것에는 분명 미국의 책임이 있다. 국제협상무대에 서보면 미국 대표가 ‘우리가 대국이니까’ 하는 태도를 흔히 취한다. 회의석상에서 다른 나라 대표를 얕잡아보고 자신들의 의사를 무조건 관철시키려는 태도를 필자도 외교현장에서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러나 흥분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를 다루는 노하우는 간단하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즉각적인 대응에는 더욱 감정적인 반응으로 나서는 특징이 있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체계적인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 자주는 아니다.

미국이 어떻게 나오든 ‘늘 그런 식이니까’ 하는 여유 있는 자세로 넘기는 지혜도 필요하다. 외교관은 아무리 강한 압력이 닥쳐와도 냉철한 사고와 전략을 잃지 않도록 훈련받은 사람이다. 극단의 순간에도 우리 입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외교관의 역할이다. 이 훈련이 부족하면 처음에는 감정만 앞세우다가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내주고 마는 악순환에 빠진다. 처음 외교를 담당하는 이들이 쉽게 범하는 오류다.

무역쿼터 같은 경제적인 이슈를 다루는 협상에서도 테이블에 나온 사람은 쉽게 자기의사를 굽히려 들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안보관련 협상에서 국가간의 이견을 조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좀더 자주, 오래 만나는 것뿐이다. 단순히 협상장에서 만난 사이가 아니라 그밖의 공간에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훨씬 쉽게 풀려나가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한 교류가 오로지 정부의 몫이라고 생각하면 그 또한 오산이다. 외교는 외교 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국민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하물며 적장끼리도 예의를 갖춘 교류가 있는 법이다. 지난날에는 한국전쟁에 참가한 한미 군장성간에, 양국 국회의원 간에, 그리고 양국 경제계, 학계, 문화계 인사들간에 우호적인 교류협력관계가 유지됐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러한 것들이 많이 퇴색한 느낌이다. 최근 한미관계의 소원함에는 그러한 교류가 없는 세대가 주도층이 됐다는 점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한미간의 건전하고도 긴밀한 동반자관계의 유지·발전을 위해서는 양국 젊은이 사이의 교류를 포함해 그야말로 폭넓고 다원적인 우호협력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뒤엎으려 하면

외교는 그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외교관이 아무리 특출난 재주를 갖고 있다 해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없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분위기 없이 밖에서 ‘너무 숙이고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비판만 한다면 아무리 테크닉이 뛰어난 외교관도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요즘에는 미국을 아는 것, 미국 사람과 친한 것을 백안시하는 분위기다. 미국에 지인이 많으면 미국의 입장에 경도됐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국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는 말이 흡사 유행어처럼 됐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선입견 없이 임한다’는 태도로 보이는데, 모르는 것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한국 국민들 사이에 고조되고 있는 반미감정 이야기 또한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필자가 외무부 장관이 된 1988년 당시에도 반미 분위기는 만만치가 않았다. 학생들의 시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고, 특히 용산기지 안에 있던 미군 골프장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하늘을 찔렀다. 미군기지에 가로막혀 기능이 상당부분 타격을 입은 동작대교를 건너오다 보면 담장 안으로 새파란 골프장 잔디밭이 눈에 들어오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 처음 만들어진 것이 이른바 ‘4인위원회’다. 우리 외무장관과 국방장관, 주한 미 대사와 미8군사령관 네 사람이 만나는 자리였다. 이 회의를 통해 골프장을 성남으로 옮겼다. 용산기지를 오산·평택으로 옮기는 방안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풀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첫 번째 수순이라는 것, 이야기를 쉽게 풀려면 만남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이때 얻었다.

줄타기 외교의 시대

바꿀 게 있으면 바꿔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새로 시작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언제부턴가 공직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새로 누군가가 임명되면 전임자의 일을 들여다보고 못다 이룬 부분을 완성해내겠다고 하기보다는, 이전의 일은 모두 잘못된 것이니까 아예 새로운 기분으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내겠다고 나서는 것을 참신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는 5년뿐이다. 그 안에 어떻게 과거의 모든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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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호중 전 외무부 장관·한국외교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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