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상소각은 자본규모를 줄이는 대신 지분을 가지고 있던 주주에게 감자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이번 유상감자와 더불어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BIH는 주당 1000원씩 보상받는 형식으로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돌려받게 됐다. 회사는 껍데기만 남았지만 대주주는 짭짤한 이익을 챙겨간 셈이다. 2002년 대유증권이 이름을 바꾼 리젠트증권과 일은증권의 합병을 통해 태어난 브릿지증권은 합병 이후 2년 동안 지점은 39개에서 29개로, 직원은 814명에서 620명대로 크게 줄어들었다.
브릿지증권은 그러잖아도 외국계 투기자본의 ‘먹고 빠지기’식 단기 투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종업원과 노조 등 이해 관계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딱 걸린’ 셈이었다. 브릿지증권 노조는 장기간 항의농성을 벌여 회사측의 양보를 이끌어냈고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과 대안연대회의 등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계기로 외국계 투기자본의 횡포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브릿지증권 노조는 회사 대주주를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소했다. 투자자본을 빼내가기 위해 고정자산인 회사 건물을 감정가보다도 낮은 가격으로 팔아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 이유였다.
소송대리인인 최진석 변호사는 “브릿지증권의 여의도 사옥과 을지로 사옥의 감정가만 해도 790억원인데 이 건물을 공개입찰도 실시하지 않은 채 감정가보다도 훨씬 낮은 714억원에 매각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또 “이러한 유상소각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면서 “유상소각에 대해서도 업무상 배임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법원의 판단에 맡겨진 업무상 배임 여부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브릿지증권이 국내법을 어기거나 부당 이득을 취한 것은 아니다. 굳이 규정을 어긴 것을 찾자면 지난해 375억원의 유상감자를 실시하면서 ‘향후 1년6개월간 유상감자를 하지 않겠다’고 시장에 공시한 내용을 위반한 정도다. 브릿지증권은 이번 유상감자로 인해 증권거래소에 의해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합법절차’ 강조
문제는 최근 몇 년간 급속하게 늘어난 외국계 자본이 이처럼 ‘합법적인’ 방식을 동원해 자본을 빼내가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상감자를 통한 대주주의 자본 빼내기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의 대주주가 된 JP모건은 2003년 12월 자사주 무상소각과 주주 지분 유상소각을 통해 모두 514억원의 자금을 회수했다. OB맥주에서도 지난해 3월 대주주인 벨기에의 인터브루사가 일부 주식을 유상소각해 1600억원의 돈을 회수해갔다.
유상감자처럼 복잡한 방식이 아니라 주주총회에서 배당액을 대폭 높여 이익을 챙겨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나은행이 대주주인 하나증권은 올해 주총에서 110%의 배당성향을 보였다. 배당성향이란 당기순이익에서 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중. 주주들이 당기순이익보다도 많은 배당금을 챙겨갔다는 이야기다. 하나은행의 대주주는 싱가포르계의 테마섹 홀딩스. 이번 하나증권 주총에서 배당액 결정 역시 하나은행 대주주의 의향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이다.
외국계 파마(PAMA)가 대주주인 메리츠증권은 올해 207%의 배당성향을 보였고 지난해에는 무려 1400%가 넘는 배당성향을 기록했다.
외국자본의 고배당이 날로 증가하는 현상은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국제수지 통계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외국인에 대한 배당금 지급액은 외환위기 직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1998년 5억달러를 기록한 뒤 1999년 10억3000만달러, 2000년 18억4000만달러, 2001년 22억4000만달러, 2002년 24억4000만달러, 2003년 33억8000만달러로 꾸준히 늘고 있다. 올 들어선 4월 현재 외국인에 대한 배당금 지급 누적액이 이미 28억달러를 넘어서 사상최대치 경신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