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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논쟁

왜 지금 이순신인가

드라마·소설·평전 재조명 열풍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khmzip@donga.com

왜 지금 이순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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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에는 정권 차원에서 이순신을 충(忠)의 화신으로 과도하게 숭배했고, 1980년대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원균의 복권’ 작업이 활발했으며, 1990년대에는 자살설·은둔설 같은 이순신 미스터리가 유행했다. 그렇다면 21세기 이순신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그것은 ‘신화’에서 ‘현실’로 내려온 인간 이순신이다.
왜 지금 이순신인가
“임진왜란은 결코 패배한 전쟁이 아니었다. 침략자의 의지를 끊고 조국의 산하를 지킨 승리한 전쟁이었다.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에도 불굴의 의지로 조국을 지킨 이순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아 마침내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그는 꿈꾸는 사람들의 영웅이다. 우리는 이순신의 생애를 통해 우리의 꿈과 희망을 다시 확인할 것이다.”

8월14일 첫 방영 예정인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제작팀이 밝힌 기획의도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김탁환의 ‘불멸’과 김훈의 ‘칼의 노래’. 연출을 맡은 이성주 PD는 “등장인물의 기본 성격 등 큰 틀은 ‘불멸’에서, 그 속에 담는 정신은 ‘칼의 노래’에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동아일보 2004.4.23).

드라마의 전개방향은, 박제된 영웅 이순신의 외피를 벗긴다는 점과 인물평가에서 양자택일 혹은 흑백논리를 지양한다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불패신화·전쟁영웅이라는 외피를 벗기면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그것은 원칙주의자, 혁신주의자, 비주류, 탁월한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흑백논리를 지양한 인물평가로 재평가받을 사람은 단연 원균이다. 제작진은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심하게 왜곡된 맹장 원균에 대한 평가를 달리할” 것을 분명히 해서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드라마에 한 발 앞서 김탁환씨는 8권으로 개작한 ‘불멸’(황금가지)을 탈고했다. 새로 쓴 ‘불멸’에서 작가는 조선중기 중종 때부터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로 이어지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서 이순신의 위치를 찾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결혼을 했다거나 과거에 떨어졌다 등 단편적인 기록밖에 없는 입신(立身) 이전 이순신의 삶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김씨는 “이순신을 평가할 때 23전 23승이라는 전적(임진왜란)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한 번도 진 적이 없기 때문에 이순신이 위대한 것인가. 소설가는 이순신의 내면세계로 파고들어야 한다. 즉 100명의 장수 가운데 99명이 다 왼쪽으로 갈 때 혼자 관행을 깨고 오른쪽을 선택할 수 있었던 동인(動因)이 무엇인지 캐내는 것이 문학적 탐구 자세”라고 말한다.



최근 김탁환씨와 ‘이순신 폄훼논쟁’을 벌인 소설가 송우혜씨는 정확한 고증을 앞세운 ‘이순신 평전’(7월 출간 예정, 동아일보)을 준비중이다. 여진족 추장 니탕개가 2만여명을 거느리고 변경을 침략함으로써 조선 땅에 28년의 평화가 깨진 계미년(1583년) 전투가 평전의 출발점. 송씨는 이 사건 이후 조선군이 여진족 토벌작전을 대대적으로 펼쳐 수많은 조선의 무장(武將)들이 역량과 명성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토벌작전에서 신립은 명장으로 칭송받았고 원균, 이순신도 나란히 참가해 공을 세웠다.

그러나 7년간 계속된 임진왜란의 소용돌이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크게 엇갈린다. 송씨는 “원균이 이순신과 쟁공(爭功)했다는 사실만으로 명장이라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이순신의 신격화를 조장하는 일”이라면서 “평전을 통해 일부에서 진행되는 역사왜곡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다분히 곧 시작될 드라마와 원작소설을 겨냥한 말이다.

이순신과 7년 전쟁의 진실

이번에는 소설가들의 역사논쟁에 보통사람이 끼어들었다. 전국은행연합회 김태훈 부부장은 민족의 성웅(聖雄)이라는 이순신의 숭고한 이미지가 오히려 친숙한 접근을 막고 있다는 생각에 직접 ‘이순신과 7년 전쟁’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동료 장군과의 불화에 분통을 터뜨리는 인간 이순신을 있는 그대로 복원해 보고 싶었던 것. 원균 모함의 실체, 이순신의 하옥과 백의종군의 진실, 좌수사가 되기 전 미관말직을 전전했던 이유, 7년 전쟁에서 이순신이 벌인 전투의 실상 등 궁금한 점을 하나하나 풀어나간 결과가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가제, 7월 출간 예정, 창해)이다.

‘내게는 아직도 배가 열두 척이 있습니다’(북포스)는 부산고등법원 김종대 부장판사가 쓴 이순신 일대기. 2년 전 김 판사가 쓴 ‘이순신 평전’을 재출간하면서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장수들의 활약상, 이순신과 원균의 반목 등에 대해 꼼꼼하게 주석을 달았다.

그동안 이순신 재조명 작업을 관망만 하던 역사학계도 본격적인 채비를 하고 있다. 서강대 정두희 교수는 “역사연구에서 사료비판은 기본인데 원균 옹호론자들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료에 근거한다’는 주장만 하고 있다”면서 “실록은 굉장히 정치적인 문서로 편찬 당시 누가 실권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서술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순신 평전’을 준비중인 정 교수는 “조선왕조의 정치라는 씨줄과 동아시아의 국제전이라는 날줄이 촘촘히 얽혀있는 얼개 속에서 이순신의 삶을 살펴야 본모습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를 연구해온 명지대 한명기 교수는 올해 안에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관한 책을 쓸 계획이다. 한 교수는 이순신 개인사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속성을 먼저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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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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