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을 마치고 ‘다시 만납시다’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는 평양예술단원들.
평양예술단 멤버들은 꽉 짜여진 공연일정 때문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호주 동포들의 렬렬한 환영 때문인지 하나도 힘들지 않습네다”며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그들은 “고급예술단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전의 다짐을 스스로 깨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 호주 동포들과 포옹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성공적인 호주 공연에 무척 들떠 있었다.
하지만 호주 동포사회 전체가 환영일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보수성향 단체들은 공식적으로 행사 참여를 거부했다. 물론 회원 개인자격의 참여까지 막은 것은 아니지만, 자칫 동포사회의 환영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수단체 회원은 “남북 화해무드를 거스르며 시대착오적인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네들을 환영하지 않는 동포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아울러 호주 동포사회의 순수한 환대를 저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뜻도 있다”고 했다.
5월13일 중국 동방항공편으로 상하이를 거쳐 시드니공항에 도착한 평양예술단은 재(在)오스트레일리아동포련합회(이하 재오련) 등 호주 공연을 준비해온 한인 동포들의 환영을 받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단원 다섯 명과 정장 차림의 남성단원 두 명을 포함한 평양예술단 일행이 공항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와 꽃다발을 받았다. 특히 소문난 ‘꽃미녀’인 여성단원들의 아름다운 용모는 시드니공항을 환하게 만들었다.
호주주재 북한대사관을 대표해서 김창일 공사가 환영을 나왔고, 호주 동포 언론사들도 열띤 취재경쟁에 나섰다. 재오련이 마련한 환영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예술단 일행은 간단한 인사말로 환영식을 대신했다.
평양예술단 현세혁 단장(북한문화성 부국장)은 “이역만리 호주 땅에서 한 핏줄인 동포들을 만나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면서 “조선민족 된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민족의 륭성번영과 6·15 공동선언의 기치 밑에 자주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호주 동포 여러분께 우리 평양예술단은 충심으로 뜨거운 동포애적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공훈배우 오란희는 “러시아, 일본, 아일랜드 등에서 해외공연을 가진 바 있지만 지구 남쪽에 사는 호주 동포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며 “동포들이 공화국의 예술을 통해서 고국의 향취를 맘껏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공항 환영식장의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한 편이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습네까? 요참엔 거저 안면이나 트자는 생각입네다” 하던 북한 관계자의 말에서 평양예술단의 호주 순회공연이 호주 한인사회에서의 교두보 마련에 있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첫 술에 불러버린 배

‘북춤은 이렇게’. 인민배우 리순녀의 춤사위.
한인회는 교민이 많이 사는 캠시에서 가까운 벨모어 RSL클럽(재향군인클럽)에 평양예술단 환영만찬과 공연을 위해 150명분의 좌석과 식사를 예약했다. 그런데 행사 1시간 전쯤부터 동포들이 모이기 시작해 20여분 만에 좌석이 꽉 차더니 급기야 예상인원의 두 배가 넘는 300여명의 동포들이 운집, 주최측이 좌석을 추가로 마련하느라 행사가 30분 가량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인회 조양훈 사무총장은 “북한 공연단체를 처음 만나는 동포들의 기대감이 컸던 데다, 예술단을 성원함으로써 룡천역 참사에 대해 위로의 뜻을 전하겠다는 동포들의 심리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