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장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강백씨 내외.
그 때문일까. 선교장에선 선가(仙家)의 풍류가 배어나온다. 한국의 지적 전통을 이루는 유·불·선 삼교(三敎) 중 가장 낭만적인 게 선가이다. 유가의 현실참여적 면모와 불가의 초탈적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시절 현실세계에서 부지런히 일하다 은퇴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매력적인 일 아닌가.
호남 민요 중 새를 쫓는 노랫말 중에 ‘배다리 통천댁으로 가라’는 대목이 있다. 그와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선교장의 조상 중 한 명이 통천 군수를 지낼 때 극심한 흉년이 들자 집 창고에 있는 쌀 수천 석을 풀어 백성들에게 나눠줬는데, 그 일 이후 선교장이 배다리 통천댁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선교장 솟을대문에는 ‘선교유거(仙嶠幽居)’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신선이 거처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뜻이다. 선교장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한 후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이곳에 돌아왔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열화당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왼쪽으로 행랑채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