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 사람의 삶

‘설위설경(設位說經)’ 인간문화재, 장세일 법사

“원 좀 풀겠다고 들러붙은 귀신들, 잘 달래 제 갈 곳 보내줘야지”

  •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설위설경(設位說經)’ 인간문화재, 장세일 법사

2/6
“양각을 하면 남자가 힘써”

“전에는 음각을 주로 했거든. 요즘은 내가 양각을 해. 음각을 했더니 음이 너무 성해서 못쓰겠어. 어딜 가든 여자들이 더 세게 나대잖아? 그래서 힘이 더 들어도 양각을 하기로 했어. 이제 양각을 한동안 하고 나면 다시 남자들이 힘을 쓸 날이 올 거야.”

여자들이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상을 설위에다 두는 해석이 재미있어 나는 그에게 자꾸 말을 시킨다.

“양각을 하면 남자들이 힘이 더 세질까요?”

“그으럼.”



“아직은 음각을 좀더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야 조화가 맞을 것 같은데.”

“음각도 아주 안 하는 건 아니여. 조화에 맞게 한다 이 말이지. 전에는 아주 음각만 했거든.”

전에는 이 지방에서 경 읽으러 다니는 사람과 목수일 하는 사람의 품삯을 같이 쳐줬다. 설위설경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해졌기에 낮도 하루품, 밤도 하루품이었다. 그러니 한때는 품값도 수월찮이 벌었지만 그게 모이지는 않았다. 태안에서 8대째 터잡고 살아온 이 동네 토박이인 그는 경 읽으러 다닌다 해서 천한 취급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외려 경을 읽어 축귀(逐鬼)를 한다 해서 선비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았다.

“귀신이 실제로 있느냐?”고 물었다. 장세일 법사는 또 예의 그 따스한 웃음을 웃더니 딱 한마디로만 대답했다.

“있으니 하제 없으면 하것어?”

“신장이 움직이니까 알제”

한참 있다 다시 “귀신이 없는데 어뜨케 평생 이일을 하남?” 했다. “그럼 귀신을 봤느냐?”고 다시 물었다.

“귀신이 어데 눈에 보이간?”

“그럼 귀신이 있는지를 어떻게 아느냐?”고 덮어놓고 또 물어봤다.

“신장(신이 내린 막대기)이 움직이니까 알제.”

신장은 누가 잡느냐, 혹시 일부러 움직이는 건 아니냐, 최면상태가 돼서 흔드는 것 아니냐, 신장이 움직인다 해서 그게 무슨 귀신이라는 증명이 되냐, 귀신이 쫓겨 나가면 병이 금방 낫느냐, 그럼 무슨 병이든 병원 가지 말고 귀신만 쫓으면 되느냐… 별별 질문을 다 해봐도 그는 끄떡없이 웃고 앉아 있었다.

“허허 그거야 모르제…. 어디 말로 할 수 있간?”

그러나 먹지도 못하고 곧 죽어가던 사람을 독경으로 벌떡 일으켜놓은 경험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밤새 독경하고 나면 낯빛부터 달라지는 걸 여러 번 봐왔다. 그는 귀신을 쫓아서 낫는 병도 있고 그런 종류가 아닌 병도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종이로 오려 만든 신장에 신장 내림경을 읽으면 신이 강림한다. 그가 하는 방식은 그 신장에다 물어서 일의 사태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귀신이 들어 이 병이 생겼느냐, 물으면 신장이 대답한다. 아니면 흔들고 맞으면 끄덕이는 식으로!

“내야 뭘 아나, 신장이 그렇다니 그런 줄 알제.”

과장도 흥분도 없다. 우직하고 순정한 눈이 끔벅끔벅 뿐이다.

“우리 경전은 불경과 무경(巫經)이 짬뽕이 된 거여. 내가 천수경(千手經)을 아는데 천수경과도 비슷한 데가 많어. 무경은 불경보다 역사가 깊을 겨, 나중에 불경을 따라간 건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게 언제 어디서 왔느냐고 집이처럼 물어보질 않았어. 그런 거 물으면 안 되는 줄 알았네. 그저 외고 까수고만 했제. 역사니 그런 거는 궁금혀도 안 했어.”

그는 1932년생이다. 논이 없는 농부의 둘째아들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 한 2년 다녔다. 한문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이웃에 경문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었다. 담 너머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밤이면 더 잘 들렸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귀에 쟁쟁했다. 낮에 밭일하고 밤에 마실가는 거 말고는 별 오락이 없는 시절이었으니 그 집에 가서 경문을 구경했다. 한자로 된 경문의 뜻이 환하게 보였다. 의미도 마음에 쏙쏙 닿았다. 읽는 소리도 뜻도 자꾸만 좋아졌다. 그러느라 절로 공부가 된 것이다.

“나는 선생이 따로 없어. 그냥 혼자 헌 거여. 아무리 긴 경문도 서너 시간만 들여다보믄 다 외워져버려. 내가 기억력 하나는 참 좋았어. 그걸로 법 공부를 했으면 육법전서를 줄줄이 외는 거는 일도 아니었을겨. 지금도 후회를 한다니깬. 내가 그때 경문 대신 법조문을 외웠으면 지금쯤 요로고 있지 않고 법관이 되얏을 낀데….”

2/6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연재

이사람의 삶

더보기
목록 닫기

‘설위설경(設位說經)’ 인간문화재, 장세일 법사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