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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④

‘인생(人生)’

참을성과 끈질김으로 빚어낸 웃음, 고난의 삶을 구원하다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인생(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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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톈진은 중국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통한다. 그런데 그 웃음에는 순전히 정치적인 사건에서 비롯된 고통과 희생조차 심각히 여기지 않고 이를 개인의 실수, 혹은 잘못된 판단에서 기인한 것으로 가벼이 넘기는 중국인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은 1960년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자식을 잃고도 좌절하지 않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인의 안분지족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인생(人生)’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

베이징역에서 톈진(天津) 가는 기차표를 사고 시간이 남아 대합실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즉석라면인 ‘캉스푸’와 치킨 한쪽으로 점심을 해결하던 참이다. 갑자기 대합실 한 구석에 사람들이 동그랗게 몰려선다. 무슨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입에서 침과 거품이 나오는 것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베이징역은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이른바 ‘농민공(農民工)’들로 늘 붐빈다. 마땅한 잠자리가 없으니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대개는 베이징역을 숙소로 삼는다. 30대 후반쯤 됐을까, 머리는 형편없이 헝클어져 있고, 때에 전 카키색 작업복을 입었다. 행색으로 보아 농민공이다.

그런데 쓰러진 사람 주위로 순식간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이 보고만 있을 뿐 누구 하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부축해 일으키거나, 응급 전화를 하는 사람이 없다. 참으로 무심하게 그저 바라만 본다. 중국에서는 조그만 말다툼이 벌어지거나 사소한 일에도 사람들이 금세 벌떼처럼 몰려든다. 관광지에서 요금 때문에 시비가 붙어도 그렇다. 자신을 가운데 두고 많은 사람이 에워싸는 형국이니, 외국인으로서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투고 있는 사람이 외국인이라서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끼리 다투고 있더라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진다.

중국, 구경꾼의 왕국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은 그저 구경꾼일 뿐이다. 시시비비에 관여할 생각, 남의 일에 간섭할 마음이 전혀 없다. 역 대합실에 사람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데 다들 구경만 할 뿐 누구 하나 나서서 손을 쓰는 사람이 없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을 드나들면서 여러 차례 본 광경이지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게 에워싼 사람들은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왜 저렇게 아파하는지, 어떻게 저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구경꾼일 뿐이다.



작가 루쉰(魯迅)은 이런 중국인들의 모습에서 마비된 국민성을 보았다. 루쉰은 “중국에서는, 특히 도시에서는 길에서 병으로 갑자기 사람이 쓰러져도, 교통사고로 사람이 다쳐도 둘러싸고 구경하거나 심지어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많아도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사람은 극히 적다”고 개탄한다. 루쉰은 중국인들이 이렇게 남의 일에 무관심한 이유를 남의 위급함을 도와주려다 도리어 오해를 산 경험, 옳은 일에 나섰다가 도리어 ‘짐승 같은 권력자’들에게 당한 역사적 경험에서 찾는다. 그런 경험이 쌓여 “자기 집 앞 눈이나 치울 것이지, 남의 집 지붕 서리는 신경 쓰지 말라”는 속담이 생겨났고, 이제는 중국의 국민성이 됐다는 것이다.

일찍이 공자도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자리 일에 신경 쓰지 말라(不在其位, 不謀其政).” 자신이 맡지 않은 일에 공연히 간섭하지 말고 자신의 직무나 충실히 수행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과 생활 경험을 통해 중국인들은 길에 쓰러진 사람이 있어도 무관심한 채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됐다. 그래서 루쉰은 중국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대중은 영원히 연극의 구경꾼입니다. 누군가 희생당하는 장면이 등장할 때 그 장면이 감격적이면 사람들은 비극을 구경한 셈이고, 비겁하면 희극을 구경한 셈이지요.”

중국은 구경꾼들의 왕국이다. 중국인들이 공적인 일이나 정치적 민주화에 대해 관심이 적은 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유머의 도시 톈진

영화 ‘인생’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다. 장이머우는 이 영화로 199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남자 주인공역을 맡은 배우 거유(葛優)는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장이머우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도 원작 소설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위화(余華)의 ‘살아간다는 것(活着)’이 원작이다.

장이머우 감독에 따르면 위화가 이 소설을 완성하고 발표하기 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날 밤으로 소설을 다 읽은 장이머우 감독은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장이머우 감독은 소설을 읽으며 평범한 중국인의 인생철학, 인생을 살아가는 전형적인 태도가 흥미로웠고, 그것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고난을 묵묵히 견뎌내는 강인한 힘, 인내심, 그리고 숱한 고난 속에서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결국은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 소설 속 주인공의 낙관적인 태도에서, 그는 중국인의 전형적인 삶의 태도, 중국인의 인생관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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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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