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 운운하며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 문제는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는 정부 정책이 사실상 양극화를 부추기는 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양극화 즐기는 부유층과 중산층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빈부격차·차별 시정위원회’를 가동했고, 최근에는 ‘희망한국21-함께하는 복지’라는 사회안전망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양극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경제구조의 양극화는 여러 차원에서 심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돼 소득분배의 양극화가 나타났다. 도시 근로자가구의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7년 0.283에서 2004년 0.310으로 높아졌다. 빈부격차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절대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임금근로자의 경우 절대 빈곤율이 1996년 2.5%이던 것이 2004년 3/4분기에는 4.9%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자영업자의 빈곤율은 같은 기간에 1.6%에서 6.2%로 무려 4배 가까이 급증했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외치는 사이에 수많은 국민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소득분배의 양극화는 고용의 양극화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정규직 임금의 60%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자영업에 과다 진입한 결과 자영업주의 평균소득이 격감했다. 노동부 기준으로 비정규직 비중은 2001년 27.3%에서 2004년 37%로 급증했다. 한시적 근로자를 포함하면 41.3%에서 61.7%로 증가한다. 자영업주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2000년 304만원에서 2004년 248만원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소득과 고용의 양극화 이면에는 산업의 양극화가 있다. 그래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산업부문간, 업종간 그리고 기업규모별로 생산성과 임금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일례로 서비스업의 제조업 대비 생산성은 1990년 143이던 것이 2003년에는 59로 하락했다. 정보통신(IT)업종과 경공업 간의 생산성 격차는 1995년 1.8배에서 2002년에는 5.2배로 벌어졌다.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도 날로 확대돼 제조업부문에서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은 1997년 대기업 평균임금의 64%이던 것이 2002년에는 55%로 떨어졌다.
양극화가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
양극화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세금을 더 내건, 자신이 속한 기업의 경영행태를 바꾸건, 나부터 발벗고 나서야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소수 부유층은 물론이고 다수의 중산층에게도 양극화는 남의 문제로 비칠 뿐이다. 오히려 부지불식간에 그 혜택을 즐기고 있다. 실업자가 늘어나면 종업원이 말을 잘 들어서 경영자가 좋고, 양극화가 심화되면 저숙련 서비스 요금이 내려가 중산층이 덕을 본다.
사회윤리적 차원에서 양극화가 옳지 않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근본적인 주장을 하는 것만으로는 양극화 해결의 동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양극화는 사회윤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양극화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엄청난 사회 비용을 유발하며, 한국 사회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