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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경제 브레인 유종일 교수의 쓴소리

“사후약방문 양극화 대책이 국민을 빈곤의 나락으로 몰고 있다”

  •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경제학 jyou@kdischool.ac.kr

노 대통령 경제 브레인 유종일 교수의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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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가 초래하는 사회 비용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내수 침체가 가장 심각하다. 소득분배 양극화는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계층으로부터 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계층으로 상대적 소득이 이전되는 것을 뜻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양극화는 경제 전체의 소비수요를 감소시킨다. 지난 수년간 소비수요가 극심한 침체를 겪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 경기회복기에 급팽창했던 가계대출이 조정기를 거친 것도 요인이었다. 그러나 양극화라는 구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각종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사분규의 빈발과 노동시장 유연성의 제약이다. 노사분규는 1993년 144건에서 2003년에는 320건으로 늘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노사분규 때문에 빚어진 수출차질액은 같은 기간 5억6400만달러에서 10억5300만달러로 2배 가량 증가했다. 분규로 인한 근로자 1000명당 노동손실 일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0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인 47일과는 비교도 안 된다.

양극화는 정책 왜곡을 초래,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을 저해하기도 한다. 이것 또한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정치 상황에 따라 정책 왜곡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양극화가 특권층의 영향력을 비대화해 경제 전체에는 나쁘고 특권층에게만 유리한 정책이 추진되는 경우다. 한때 투기세력에 유리한 부동산 관련 정책이나 과다한 건설 관련 예산편성을 했던 사례가 있다.

반대로 저소득층을 위한 재정지출 팽창을 유발하는 한편 고소득층은 세(稅) 부담 증가를 회피하는 경우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으로 거시경제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 중남미의 이른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인적자원의 양과 질 함께 훼손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것도 양극화의 폐해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인적자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과거 개발연대에는 저임금 노동자의 근면과 숙련도 축적이 성장의 주된 동인이었다. 그러나 지식기반경제 시대인 지금은 지식노동자의 창의력과 혁신이 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양극화는 인적자원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 및 고용의 불안이 증대되면서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한 것도 양극화 때문이다. 양극화가 미래 인적자원의 양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는 의료 양극화를 유발, 건강 상태에서도 부유층과 서민층의 차이를 벌려놓는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최저 소득수준 가구의 5세 이하 아동의 경우 주요 영양소 섭취량이 권장량의 60∼80%에 불과하다.

양극화는 인적자원의 질도 훼손한다. 미래의 인적자본을 담보로 하는 대출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저소득층의 인적자본 투자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전형적인 시장실패 사례다. 계층간 교육비 지출의 격차가 이를 증명한다. 2003년 기준으로 상위 10%는 하위 10%보다 교육비를 약 4배 더 지출했다.

인적자본 투자의 불평등은 빈곤의 대물림과 같은 계층의 고착화를 낳는다. 서울대 사회대 입학생 중 고소득직 자녀와 저소득직 자녀의 비율이 1985년 1.3대 1이던 것이 2002년에는 16.8대 1이 됐다는 놀라운 통계가 있다. 기회균등의 원칙에 입각한 공정경쟁이 불가능하면 상대적으로 기회 박탈을 경험하는 계층의 근로의욕과 인적자본 투자의욕이 저하된다. 심지어 범죄, 마약, 가정폭력 등 파괴적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

글로벌 경제 시대의 경쟁전략이라는 면에서도 양극화 문제를 짚어보자.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인구대국은 무서운 기세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막대한 저임금노동력을 무기로 강력한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이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급 기술의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면서 지식 콘텐츠가 많은 서비스업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아시아 경제의 성장은 우리에게 기회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들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며 경제는 위축될 것이다.

과도한 비정규직 활용과 저임금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환상이다. 마약처럼 일시적으로 고통을 유예시켜 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몰락을 자초하는 길이다. 거꾸로 우리는 고임금·고숙련·고지식 노동에 입각해서 고기술·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워야 한다. 직장은 학습과 훈련을 포함한 평생교육 체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대다수 노동자를 지식노동자로 키워내기 위한 투자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유럽의 변방국가에 불과하던 핀란드가 오늘날 ‘강소국(强小國)’의 대명사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런 전략 때문이다.

유수한 다국적기업이 한국에 투자할 때는 임금, 지가, 세금 등 비용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수한 인적자원 때문이다. 실현되지도 않을 비용 경쟁보다는 우리의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양극화는 우리의 핵심적인 역량을 파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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