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진 가락 속, 아홉 가지 맛과 정성구절판에는 아홉 번의 정성으로 아홉 가지 음식이 담긴다. 이 음식을 찹쌀가루 묻힌 쇠고기 전병에 싸먹으면서 한 번의 정성이 더 들어간다. 도합 열 가지 맛과 정성이 한데 어우러진 요리의 매력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초겨울로 접어든 11월 중순. 잉꼬부부로 소문난 경기소리 명창 김영임(金榮姙·52·중앙대 예술교육대학원 국악과 교수)씨와 개그맨 이상해(60)씨 부부가 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S빌라를 찾았다. 집안에 들어서니 현관부터 온통 꽃 천지다. 화병에 꽂힌 꽃, 물 위에 띄운 꽃, 벽마다 걸린 꽃그림, 그리고 촛불에선 라벤더 꽃향내가 풍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배경삼아 거실 한쪽에서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는 장구다. 그 옆에는 이런 노랫말이 적힌 종이쪽이가 놓여 있다.
“풋고추, 절이김치, 문어, 전복 곁들여 황소주 꿀 타 향관이 들여 오리정으로 나간다. 어느 년(年) 어느 때 어느 시절에 다시 만나 그리던 사랑을 품 안에 품고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에~어 화둥게 내 건곤…”
경기잡가(京畿雜歌) 중 ‘출인가(出引歌)’의 일부로 이도령과 춘향이 오리정에서 이별할 때 주고받은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김씨는 8월28일 국립국악원에서 이 곡을 포함해 경기 12잡가를 3시간에 걸쳐 완창했다. 경기잡가 무형문화재인 묵계월 선생에게서 1995년부터 무려 10년간 가다듬은 결과물이었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부르다 보면 지겹기도 하련만 김씨는 지금도 같은 곡을 끊임없이 연습 중이다. 남편 이씨가 전하는 김씨의 평소 모습이다.
“항상 노래와 같이 살아요. 차에서도 자기가 부른 노래를 들으면서 연습을 해요.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늘 준비하고 준비하는 정말 놀라운 여자예요.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지는 올해로 27년째다. 1974년 서울 무교동 뉴타운 호텔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다.
“어두운 불빛 아래서 봤는데 아내의 첫인상이 괜찮더라고요. 처음엔 국악을 하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직접 보러 갔죠. 무교동 극장식 무대였는데, 하얀 옷을 입고 나온 모습이 천사 같았어요. 그때 완전히 반했죠.”
이씨는 김씨를 줄기차게 쫓아다녔고 결국 4년 만에 결혼에 성공했다.
이씨는 11월1일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보다 앞선 2003년엔 김씨가 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어 국내 최초로 부부가 모두 문화훈장 서훈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부부는 그동안 남모르게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남편 이씨는 맛깔스러운 입담으로 힘들고 가난한 이들의 입가에 웃음을 선사했고, 부인 김씨는 구성진 가락으로 그들의 시름을 덜어줬다. 부부는 함께 공연해 벌어들인 수입금 중 일부를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쾌척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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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 사진·김용해 부국장 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