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현재는 경찰인권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20년차 베테랑 보안형사 A씨의 탄식이 시작됐다. 그는 한국 보안경찰의 현주소를 취재하겠다고 찾아온 기자에게 대뜸 “113수사본부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마치 사상검열을 위한 키워드를 묻는 것처럼. 기자가 113수사본부를 그저 드라마 제목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권’ ‘고문’ 등의 얘기를 꺼냈다면 형사의 입은 굳게 닫혔을 것이다.
최근 경찰의 보안수사대를 없애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남북 화해·협력이 확대되고 있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체제안보를 위해 보안경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러한 의견 대립은 지난해 9월, 민노당 이영순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행자위 국정감사에서 공개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보안경찰관 수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의원의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보안형사 수가 전체 경찰공무원의 2.9%인 2772명인데, 한 해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입건된 사람이 51명(구속자는 37명)밖에 안 되니 국가보안법 위반자 한 명을 입건하기 위해 보안형사 52명이 투입된 꼴이다.”(2004년 경찰청이 이영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최근 23년간 경찰의 보안사범 검거실적은 보잘것없다.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으로 입건된 사람이 1995년에는 286명이었는데 10년이 흐른 지난해엔 8명에 지나지 않았다. 경찰 1인당 한 달 평균 사건처리건수를 비교하면 보안과 경찰관들은 거의 놀고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조사계가 20.4건, 강력반이 6.5건인 데 비해 보안과는 0.002건이다.
반면 보안수사에 쓰이는 한 해 예산은 약 86억원이다. 단순히 예산 대비 보안사범 검거실적만으로 보면 보안과의 존재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라고 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보안혁신=인원축소’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겁니다. (보안경찰이) 요즘은 학원수사를 거의 하지 않아요. 6·15 공동선언 이후에 ‘위’에서 서로 친구가 됐잖아요. 정치 지향이 바뀌다 보니까 간첩이란 용어가 이상해졌어요. 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분위기잖아요. 검찰에서도 지휘를 안 하다시피 해요. 없어서 못 잡는 게 아니라 잡을 수 있는 실정법이 있어도 이 법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안 잡는 겁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세상이 달라졌다. 남북간의 경제·사회·문화 교류는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해 금강산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했고, 하루 평균 1000명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남북한 교역량이 2004년 6억9000만달러에 이르러 남한은 중국에 이어 북한의 제2교역국이 됐다. 또한 남측의 기술과 자본,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합쳐진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들은 해외 전시회에서 바이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대학가 여기저기에선 통일을 준비하는 모임이 생겨났다. 통일을 준비하는 대학생연합, 흥사단 통일국토대장정, 통일서포터즈 모임이 바로 그것이다.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이들은 인터넷 카페나 클럽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