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맹호연이 간 지 1300여 년이 지난 2006년, 중국의 봄은 더 이상 서정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세계경제 제패를 내다보며 숨가쁘게 달려가는 중국인들에게 서정이나 낭만은 사치처럼 보인다. 나라 안으로는 동에서 서, 남에서 북으로 거침없는 경제개발 행보를 내딛고 있다. 밖으로는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아프리카, 남미 할 것 없이 대중국(大中國) 건설을 위해, 필요하다면 납작 엎드리기까지 한다.
거대한 중국을 이끄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내치(內治)는 휘하 인사들에게 맡겨놓고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지로 외교사절을 이끌고 다닌다. 어디엘 가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당당하게 발언하고 자신감 있게 교섭한다. 그의 이같은 외교적 행보는 중국경제 발전에 결정적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에너지 확보에 집중되고 있다.
후진타오는 2004년 11월 브라질을 필두로 2005년 1월 베네수엘라, 같은 해 4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한 데 이어, 12월에는 카자흐스탄을, 2006년 1월에는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를 다녀왔다. 최근에는 지난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해 일본으로 향하던 송유관의 방향을 중국으로 돌려놓았다. 후진타오 주석은 유독 러시아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주의를 표방, 경제실패를 맛본 두 나라의 공통점이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알아주는 격’으로 친밀감을 자아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후진타오의 이런 외교적 자신감은 이웃 러시아의 외교정책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한다. 그는 이미 러시아의 수(手)를 다 읽고 있다.
러시아 꿰뚫는 후진타오의 식견
푸틴 정부 출범 이후 러시아는 대(對)서방 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푸틴은 구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답게 전세계의 정보를 수집, 분석, 가공하는 능력이 탁월한 인물로 평가된다. 산 위에서 동네를 내려다보는 격이다.
1999년 푸틴 대통령이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을 당시 우리 언론은 “KGB 출신이라서 철권정치를 할 것” “경제 문외한”이라며 그를 평가절하하기에 바빴다. 러시아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미국 언론의 발표를 여과없이 내보낸 것. 당시 국내 언론은 “푸틴은 국제정치와 경제 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러시아 유학파 국내학자들의 분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는 결국 중대한 실수로 밝혀졌다. 푸틴은 크렘린궁의 주인이 된 직후인 2000년 ‘지나치게 유럽에 편향된 대외경제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내부 분석을 기초로, 서부 러시아 중심의 경제전략의 축을 상대적으로 낙후된 극동 및 시베리아 지역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 전략에는 큰 난관이 있었다.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선 중국에서 생필품과 노동력을 수입해야 했던 것이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곳에 기초생필품공장을 새로 건설하는 데 10∼15년은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