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EU 회원국들이 터키의 EU 가입에 부정적인 것은 비단 종교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EU는 터키에 대해 인구 비중에 걸맞게 독일, 프랑스, 영국 수준의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제적 이슈가 된 덴마크의 마호메트 풍자 만평은 EU 내 반(反)이슬람 정서를 키움으로써 터키의 EU 가입에 찬물을 끼얹었다.
핵심 변수, 인도와 중국
인도와 중국은 국제경제 질서를 뒤바꿀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는 2002년부터 경제규모 면에서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네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2025년이 되면 인도의 경제규모는 중국, 미국 다음으로 커질 전망이다. 미국의 전세계 GDP 비중이 21%에서 18%로 줄어드는 반면 인도의 GDP 비중은 6%에서 11%로 증가하고, 2035년 인도의 경제규모는 EU의 주축 4개국(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보다 커질 전망이다. 산업구조 면에서 중국이 저렴한 노동력에 힘입어 제조업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는 반면, 인도는 IT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해 핵협력협정을 맺고 F-16, F-18 같은 첨단 전투기를 팔기로 했다. 미국의 이 같은 행보는 중국 포위정책의 일환으로 전략적 동반자관계 구축을 의미하지만, 인도에는 남아시아의 맹주로 등극하기 위한 채비가 될 수 있다. 인도는 단일 국가경제로는 NAFTA, ASEAN, EU 주도의 경제체제하에서 생존하기 힘들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 미국과 함께 중국을 공동의 경쟁자로 여기는 것이 인도의 외교노선이다. 또한 종교적으로 힌두교가 우세한 인도는 이슬람권인 파키스탄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어 미국과 함께 이슬람 세계를 공동의 적으로 지목할 만한 국가다.
인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구 면에서 막대한 시장 잠재력을 지녔다. 이미 10억명을 넘어섰고 2030년 안에 인구가 중국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처럼 산아제한정책을 펴는 게 아니어서 인도의 노동인구 증가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인도는 아직까지 여성 1인당 3인 이상의 자녀를 낳고 있기에 경제가 성장할수록 구매력도 커져 인도 시장에 대한 기대도 크다.
중국은 2010년까지 ASEAN과 함께 인구 20억의 세계 최대 경제블록이 될 자유무역지역(Free Trade Area)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남미와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에너지 자원 구매자로서 협력관계를 증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반미, 반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한 짐바브웨, 케냐, 콩고, 잠비아, 수단, 베네수엘라, 브라질이 중국이 외교역량을 쏟는 국가들이다.
에너지 자원은 제한되어 있고 그 수량은 점차 고갈되는 상황에서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간의 긴장관계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 세계는, 특히 걸프지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는 위기에 처한다. 미국은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60%를 수입하지만 그중 20%만 중동에서 수입한다. 유럽 국가의 걸프 의존도도 30%를 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한국, 일본, 대만은 전량을 수입하는데 그 75%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인도는 75%를 수입하는데 그중 80%가 중동지역이고, 중국은 40%의 수입분 중 60%를 중동에서 수입한다. 더욱이 중국과 인도의 수입량은 매년 8∼10%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중국이 연초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압둘라를 국빈으로 초청, 전례 없이 극진한 대접을 하며 오일외교를 펼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05년 4월 중국이 인도네시아와 전략적 동반자관계 협정을 체결한 것은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에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다. 또한 중국은 현재 수입분의 28%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산유국에 대한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1995∼2003년 중국이 체결한 상호투자협정 40건 가운데 18건이 아프리카를 상대로 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중 수단은 중국 석유 공급의 8%를 차지하는 국가로 중국국영석유회사(CNPC)가 수단의 오일시추와 송유관 관리까지 책임지고 있다.
세계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알제리,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리비아,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베네수엘라, 카타르)은 베네수엘라를 제외하고 모두 이슬람 영향권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반미 성향이 뚜렷하다. 중국, 러시아, 인도는 이러한 국제관계를 적절히 활용할 기회를 노린다. 이란에 대한 러시아의 핵 기술 제공, 중국의 미사일 기술 제공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중국석유회사 시노펙(Sinopec)은 2억5000만t의 이란 천연가스를 향후 30년간 공급받기로 했다. 700억달러 규모의 이 계약은 이란 국제교역 역사상 가장 큰 액수로 기록되고 있다.
9·11테러의 어부지리
2001년 9·11테러 이후 국제관계 구도를 세 가지로 분류하면,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가담한 국가군, 이란·북한·시리아 같은 테러혐의 국가와 알 카에다 같은 테러단체 지지 국가군, 테러와의 전쟁과는 무관한 테러 무풍지대 국가군이 있다.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어부지리 격으로 덕을 본 두 나라가 있는데, 바로 중국과 러시아다. 이 두 나라는 자국 내 독립 혹은 분리주의자들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제압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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