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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라진 책의 역사’

인간의 욕망과 책의 운명

  • 강주헌 번역가·펍헙 에이전시 대표 www.allaboutbook.com

‘사라진 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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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스러지는구나!”

셋째는 지식이 곧 권력이라는 지배자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책은 지식을 얻는 최고의 수단이다. 따라서 정복자는 피정복자를 야만의 상태로 몰아가기 위해 책의 파괴를 단행했다. 이런 생각에서 쿠빌라이 칸은 중국에서 도교에 관한 모든 저작을 파괴했고, 바그다드에서도 책 파괴를 주도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지식의 보고인 책을 적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서, 요컨대 지식이 담긴 책을 적에게 넘겨줘 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소중한 책을 스스로 불태운 지배자도 있었다. 예컨대 중국 양나라의 원제는 위나라의 공격에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고이 보관해온 14만권의 책을 불사르며 “문명이 스러지는구나!”라고 안타까워했다.

넷째는 종교적 원인에 따른 분서다. 인간에 의한 의도적인 책 파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기독교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구실로, “지식은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지식의 근원인 책은 불태워야 마땅했다. 이단으로 의심받은 철학자들, 특히 아리우스파와 마니교도가 남긴 책들을 불태웠다. 네스토리우스파도 불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신(新)플라톤학파의 저서들, 마법으로 낙인찍힌 예언서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소장한 사람들의 서재까지 모두 잿더미가 됐다. 심지어 370년 안티오크에서는 그런 책들을 소장한 사람들이 박해와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기독교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눈물을 머금고 그 책들을 직접 불살라버리기도 했다.

이슬람교에서도 종교의 권력화를 위해서 분서를 필연적으로 거쳐야 했다. 무하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에는 “이슬람은 자기보다 앞에 있었던 것을 파괴한다”는 글이 있다. 따라서 적어도 초기에는 그들이 정복한 지역에서 글과 책을 모조리 파괴해서 그 지역민을 문맹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코란을 불태우던 시기도 있었다. 무하마드가 세상을 떠난 후 코란은 여러 판본이 존재했다.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코란의 단일화 작업이 필요했다. 3대 칼리프 우스만은 무하마드의 네 번째 아내인 하프사가 소장한 코란을 공식 판본으로 인정하며 나머지 코란을 모두 수거해 불살라버렸다.

불교도가 다른 종교의 책을 파괴했다는 기록은 소개되지 않는다. 불교의 장서들은 일방적으로 타종교에 의해 파괴되었다. 인도에서도 그랬지만 일본에서 최대의 도서관을 꾸리고 있던 불교 사원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무려 3000여 채의 절과 도서관과 승려학교를 불태워버렸다. 그 때문에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사원에서 수없이 많은 젊은이와 늙은이의 비명 소리가 하늘 끝, 땅 끝까지 울리고 또 울려 퍼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책이 사라질까?

끝으로 분서의 다섯째 원인은 이데올로기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권태를 피하기 위한 심심파적까지 더해졌다. 중국 문화대혁명기에 마오쩌둥을 비롯한 권력자들은 “아는 것이 많은 착취자보다 무식한 노동자가 더 낫다”는 신념하에 “지식을 얻는 자는 부르주아가 된다!”면서 홍위병을 앞세워 책의 파괴를 자행했다. 쿠바의 카스트로는 “혁명 안에서는 무엇이든 주겠다. 하지만 혁명을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안 된다!”고 선언했다. 쿠바에서 책은 체 게바라의 저서와 그와 관련된 담론만 허용되었다. 이 때문에 놀랍게도 쿠바의 국립도서관에는 조지 오웰의 책이 단 세 권뿐이다.

이렇게 다섯 가지 원인으로 책은 파괴되어왔다. 요즘에는 다른 식으로 책의 운명, 적어도 종이로 만든 책의 운명에 어둔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른바 책의 디지털화다. 전세계의 도서관들이 책을 웹에 올리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언어를 통해 미래에 대처하는 능력이 남다른 프랑스에서는 도서관이 ‘비블리오테크’(책을 보관하는 곳)에서 ‘미디어테크’로 이름이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런 추세를 강자의 논리라고 비판하지만 책의 운명에서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종이책은 머지않아 생산이 중단될 것이라고! 심지어 영상 때문에 글의 운명까지 위협받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책이 사라질까. 인간이 강자의 논리에 그대로 순종하며 따라갈까. 종이의 따뜻한 질감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내가 아직 낭만적 생각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저자의 마지막 결론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신동아 200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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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헌 번역가·펍헙 에이전시 대표 www.allabout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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