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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의 햇병아리 변호사 체험기

“공평한 법 앞에 불공평한 사람들… 그들에게 팔이 굽네요”

  •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의 햇병아리 변호사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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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돌아본 사건 현장은 그에게 ‘피의자는 여자친구를 강간한 것이 아니다’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현장에 들어가고 나올 때 두 사람은 다정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목격자가 있었다. 더욱이 피해자는 옷을 가지런하게 입고 나왔고, 외상도 없었다.

그런데 정작 피의자와 피의자의 노부모가 그의 확신을 흔들어놓았다. “강간이 아님을 인정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 같다. 일단 (혐의를)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석방을 시켜놓은 뒤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는 쪽으로 추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심정을 이해 못했던 건 아니에요. 피의자가 경찰서 유치장을 거쳐 구치소에 구속된 지 근 열흘이 지나 있었어요. 피의자는 좌절하고 있었죠. 더욱이 노부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이 구속됐으니 어떻게든 석방부터 시켜놓고 싶었겠죠.”

“저는 변호사잖아요”

3월 중순, 마지막으로 피의자를 접견하고 돌아오는 길에 변호인으로서 변론의 방향을 결정해야 했다. 그 또한 의뢰인의 요구대로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바랄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피의자가 너무 젊었다. 피의자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일곱. 강간치상의 전과를 안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나이였다. 구치소에서 사무실로 오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제가 스물여섯 살에 대학에 들어갔어요. 스물일곱 살 땐 한창 꿈을 꾸고 있었죠. 그렇게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해야 할 나이의 청년이 평생 전과자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순 없었어요. 저는 변호사잖아요.”

결국 그는 끝까지 무죄 주장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피의자와 피해자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성관계에 관해 장시간에 걸쳐 피의자를 신문하며 얻은 확신이 뒷받침됐다.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서둘러 검사에게 제출할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했다.

피의자에 대한 검찰의 1차 구속 만기일을 하루 앞둔 3월17일 금요일 오후가 되면서부터 그는 초조해졌다. 상담하러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 그런데 공무원 퇴근시간인 오후 6시가 다 되어도 피의자는 석방되지 않았다. 깊은 좌절감이 찾아들었다. 그런데 오후 7시경, 그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피의자의 부모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는 선뜻 전화를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아이고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하는 들뜬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석방된 피의자에게서 마중 나오라는 전화가 왔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스물일곱 살 청년의 인생을 구했다는 생각에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죠.”

그는 “깊은 강물 속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고 털어놓는다.

“비록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피의자는 무려 16일 동안 구치소에 갇혀 있었어요. 그리고 그의 부모는 졸지에 ‘강간범의 가족’으로 몰려 이웃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고요. 경찰은 피해자의 진술만을 근거로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우를 범했고, 법원 또한 경찰의 주장이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간과했어요.”

그는 또 “경찰과 법원으로서는 피해자의 진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시민에게 경찰과 법은 무시무시한 존재”라며 “그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시절 찾아온 시련

장 변호사는 잘 알려진 대로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열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공사장 막노동, 택시 운전, 가스통 배달, 식당 물수건 배달 등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면서 가족(어머니와 남동생)의 생계를 이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이렇게 살면 가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 고교 졸업 6년 만에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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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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