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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눈과 세상만사

  • 일러스트·박진영

화가의 눈과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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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미학은 자연 몰입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여는 화업이지만, 이 화가는 실제로는 ‘도시 문명’의 세례와 세뇌를 받은 ‘서양화가’다. 문명과 자연, 그 관계는 대립인가 화해인가. 문명도시의 출구를 넘어 국토자연의 탐미에 나서고 있는 까닭은 분명하다. 그는 다른 글에서 이렇게 토설한다.

“40년을 그림과 술로 살았다.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1973년 어느 신문에 발표된 글이므로 그때의 40년이라면 1933년부터 40년이다. 장욱진 화백의 그림과 술, 일과 휴식에 경의를 표한다. 우연히 따져보니 나도 40년을 문학과 술로 살았는데 이때의 40년이라면 1966년부터의 40년이다. 그는 같은 글에서 또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 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다 드러내고 나를 발산한다.”

장욱진 미술의 이러한 전력투구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화가는 스스로 철저하다 할 만큼 고립된다. 의도적으로 단절돼 사무치게 한다. 그리하여 당대의 세속성에 동화 오염되지 아니하고 나아가 당대성으로부터 탈출한다.



화가의 눈과 세상만사. 양자 사이에 걸러내기와 바꿔치기가 있다. 세속성, 통속성을 천진성, 천연성으로 걸러내어 이를 미술창작으로 바꿔치기하는 현장 보고서(산문)에 눈뜸과 눈부심이 있다. 화가는 자신이 살던 시대에는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차대에 이르러 대단한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마이스터 또는 마에스트로. 그 어렵고 힘들던 ‘초기 근대화’의 혼란시대에 한국미술, 나아가서는 한국문화예술이 장인(匠人)과 장인정신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작업 방식의 미학이었다. 이 화가의 예술세계는 ‘디지털 문명’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아날로그 미학’의 이전이다. 꼼꼼하고 깐깐한 수작업 창작과정에서 어떠한 기계화한 도구도 상상할 수 없다. 디지털 문명을 만나지 않은 것은 이 화가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국토는 한마디로 ‘문명화한 자연’이다. 문명화하지 않은 자연을 그는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을 테니까.

화가의 눈과 세상만사
朴泰洵

1942년 황해 신천 출생

서울대 영문과 졸

소설가

저서 : ‘밤길의 사람들’ ‘낮에 나온 반달’ ‘국토와 민중’ ‘작가기행’



문명 바깥의 자연이 아니라 문명 내부로 삽입된 자연일망정, 이를 숨 쉴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근래에 새벽 산책 습관을 붙였는데, 미명의 새 지저귐과 우뚝 우뚝한 물체들에 나 또한 빠져든다. 밝음은 못 되지만, 그러나 어둠은 아닌 미명이다. 그 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세상만사의 모든 사소한 표정과 변화가 예쁘고 미쁘고 곱다. 그러나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러한 산책이 산책으로만 마감될 뿐이다. ‘산책담론’의 서사 산문마저 왜 아니 나오는 것일까. 되돌아오는 길에 지난 시대의 ‘화가의 눈’을 되살려 환기해보게 되는 까닭이다. 무장된 눈의 산문정신을….

신동아 200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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