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3년 라이트 형제에 의해 역사상 최초로 12초 동안 하늘을 난 비행기 ‘플라이어’.
그러나 다음 순간 플라이어의 동체가 갑자기 아래로 기울었다. 오빌은 상승키가 지나치게 아래로 젖혀졌음을 직감했지만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었다. 플라이어는 모래벌판을 잠시 날다 곧 기슭에 내려앉고 말았다. 출발 지점으로부터 120피트(약 36.6m) 떨어진 곳이었다. 플라이어는 정확히 12초 동안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플라이어는 바람을 탄 것이 아니라 분명 바람 속으로 날아갔다. 뒷날 윌버는 이렇게 썼다.
“이 비행이 계속된 것은 12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세계 역사상 인간을 태운 기계가 제 스스로의 동력으로 하늘로 떠올라 속도가 떨어짐이 없이 앞으로 비행한 최초의 사례다.”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 한 인간의 오랜 소망이 성취된 순간이었다. 1903년 12월17일 10시 35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호크.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의 비행 성공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한 가장 위대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형제가 이룩한 업적에 대한 찬사는 인간사에 끼친 영향으로 볼 때 이런 말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거창한 선언서나 펄럭이는 이념의 깃발, 혹은 노도와 같은 군중의 함성은 없었지만 분명 크나큰 혁명이었다.
천상의 세계로
바로 이 12초의 드라마로 인간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를 기점으로 수백만년 동안 대지에 갇혀 지내던 인간은 홀연 저 광대무변의 우주를 인간사의 무대로 귀속시키면서 3차원의 세계로 비약한 것이다. 중세 이래 신의 처소로서 오로지 신의 각별한 은총을 입은 자만이 흘낏 엿볼 수 있던 곳, 그래서 파스칼로 하여금 무한한 외경심을 품게 하던 곳, 동양의 시인묵객들이 비속한 현실의 초월적 지평으로 동경하던 곳, 그 천상의 세계가 이제 인간의 일상적 삶의 영역으로 편입된 것이다.
하늘의 정복은 인간의 행동반경을 무한히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삶을 보는 시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물론 인간의 사회적 관계 또한 변화했다. 이제 니체가 선언한 신의 죽음은 자기 환상에 젖은 철학자의 한가한 객기로만 볼 수 없게 됐다. 키티호크의 세찬 바람을 뚫고 하늘로 솟아오름으로써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누려오던 자연의 정복자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그 전리품으로 신이 누리던 권능의 향유를 더욱 탐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