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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⑪

‘3차원 세계’ 내디딘 라이트 형제와 키티호크

문자 발명 이래 인류 최대의 업적, 비행(飛行)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3차원 세계’ 내디딘 라이트 형제와 키티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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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전 노스캐롤라이나. 바람 많은 대서양 연안의 오지(奧地) 키티호크에서 고교 중퇴생 형제가 인류 역사의 새 지평을 연다. 그들이 만들어낸 비행기는 인류의 언어와 사상, 가치를 하나로 모아 전세계에 민주주의를 확산시켰고, 나라를 넘나드는 혁명적 경제활동을 가속화했다. 빌 게이츠는 글로벌 시대의 첫 장을 열었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지금의 ‘초고속 인터넷’에 비유한다.
‘3차원 세계’ 내디딘 라이트 형제와 키티호크
차가운 겨울바람이 모래벌판을 휩쓸며 불어오고 있었다.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형 윌버와 눈인사를 나눈 뒤 오빌은 ‘플라이어’에 천천히 올랐다. 그는 흥분을 억누르며 앞을 잠시 바라보았다. 비스듬한 겨울햇살 속에서 모래벌판은 더욱 황량해 보인다. 숨을 가다듬고 오빌은 엔진을 구동했다. 거친 굉음과 함께 프로펠러가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오빌은 아래 날개의 가운데에 엎드리고 조종키를 잡았다. 점점 빨리 도는 프로펠러 소리를 귓전에 들으며 오빌은 동체를 붙들고 있는 선을 끊었다.

‘3차원 세계’ 내디딘 라이트 형제와 키티호크

1903년 라이트 형제에 의해 역사상 최초로 12초 동안 하늘을 난 비행기 ‘플라이어’.

비행기는 이내 목제 레일을 따라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날개를 붙들고 있던 형 윌버가 구르는 비행기와 함께 뛰는 모습이 힐끗 보였다. 60피트 길이의 레일을 단숨에 달린 후 비행기는 이윽고 하늘로 떠올랐다. 바람이 비행기를 세차게 밀어올리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측정해본 풍속은 시속 27마일, 강풍이었다. 비행기가 너무 급하게 떠오른다는 느낌에 오빌은 상승키를 아래로 약간 잡아당겼다.

그러나 다음 순간 플라이어의 동체가 갑자기 아래로 기울었다. 오빌은 상승키가 지나치게 아래로 젖혀졌음을 직감했지만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었다. 플라이어는 모래벌판을 잠시 날다 곧 기슭에 내려앉고 말았다. 출발 지점으로부터 120피트(약 36.6m) 떨어진 곳이었다. 플라이어는 정확히 12초 동안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플라이어는 바람을 탄 것이 아니라 분명 바람 속으로 날아갔다. 뒷날 윌버는 이렇게 썼다.

“이 비행이 계속된 것은 12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세계 역사상 인간을 태운 기계가 제 스스로의 동력으로 하늘로 떠올라 속도가 떨어짐이 없이 앞으로 비행한 최초의 사례다.”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 한 인간의 오랜 소망이 성취된 순간이었다. 1903년 12월17일 10시 35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호크.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의 비행 성공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한 가장 위대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형제가 이룩한 업적에 대한 찬사는 인간사에 끼친 영향으로 볼 때 이런 말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거창한 선언서나 펄럭이는 이념의 깃발, 혹은 노도와 같은 군중의 함성은 없었지만 분명 크나큰 혁명이었다.



천상의 세계로

바로 이 12초의 드라마로 인간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를 기점으로 수백만년 동안 대지에 갇혀 지내던 인간은 홀연 저 광대무변의 우주를 인간사의 무대로 귀속시키면서 3차원의 세계로 비약한 것이다. 중세 이래 신의 처소로서 오로지 신의 각별한 은총을 입은 자만이 흘낏 엿볼 수 있던 곳, 그래서 파스칼로 하여금 무한한 외경심을 품게 하던 곳, 동양의 시인묵객들이 비속한 현실의 초월적 지평으로 동경하던 곳, 그 천상의 세계가 이제 인간의 일상적 삶의 영역으로 편입된 것이다.

하늘의 정복은 인간의 행동반경을 무한히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삶을 보는 시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물론 인간의 사회적 관계 또한 변화했다. 이제 니체가 선언한 신의 죽음은 자기 환상에 젖은 철학자의 한가한 객기로만 볼 수 없게 됐다. 키티호크의 세찬 바람을 뚫고 하늘로 솟아오름으로써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누려오던 자연의 정복자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그 전리품으로 신이 누리던 권능의 향유를 더욱 탐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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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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