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코스메틱 언더클래스

  • 김민경 동아일보 출판국 위크엔드팀장 holden@donga.com

    입력2007-08-07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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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메틱 언더클래스
    쇼퍼홀릭들이 모인 자리에선 “오렌지 컬러 멋지네요”라든가 “도대체 디오르의 샘플 세일은 언제 하는 거야?”라는 말이 인사로 오간다. 그런데 요즘은 “얼굴에 레이저했어”라거나 “그 친구, 지방 1000cc를 뺐는데 정말 슬림해졌더군요” 같은 얘기를 하며 눈을 반짝인다. 여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발’이 먹히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악한 사람들의 눈은 포토샵을 쓴 듯 정교한 메이크업을 벗겨내고, 맨 얼굴의 상황을 정확히 간파한다(물론 코스메틱 브랜드들도 숨가쁘게 ‘물광’ 파운데이션 같은 ‘자연스러운’ 메이크업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고 있긴 하다).

    재미있는 건 레이저나 필링(피부 표면을 아주 얇게 깎아내는 것), 보톡스 시술, 얼굴 주름에 지방을 넣거나, 배에서 지방을 뽑아내는 일이 이번 시즌 이브생로랑의 타운백이나 롤렉스의 요트마스터를 사는 것과 똑같은 ‘쇼핑’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를 ‘에스테틱 쇼핑’이라 해도 될 것 같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에스테틱 클리닉에서 하는 이런 미용 시술들은 ‘쁘띠 성형’ 혹은 ‘귀족 성형’이라 불린다. 대부분 쁘띠 성형 시술엔 성형수술에 따르는 입원이나 마취의 부담이 없다. 그래서 성형수술 전의 ‘숙고’와 ‘갈등’도 필요 없다. ‘칼 대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쁘띠 성형은 ‘OK’다. ‘새 옷’을 입는 것과 ‘새로운 피부’를 갖게 되는 것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청담동 빌딩 1층엔 패션 아이템을 파는 부티크들이 있고, 2층이나 3층엔 틀림없이 피부 클리닉이나 에스테틱을 위한 성형외과들이 있다. 피부과병원의 경쟁자는 옆에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이고, 의사는 모델 뺨치게 시크(chic)하다. 쇼퍼홀릭들은 새로 론칭한 브랜드의 하이힐을 살지, 새로 수입됐다는 레이저로 시술을 받을 것인지 고민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경우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에스테틱 쇼핑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번 신으면 ‘중고’되는 신발 사지 말고, 보톡스를 맞든가, 레이저를 해요. 칙칙한 얼굴에 명품 입으면 뭐해. 요즘은 피부에 주름 없고, 머리숱 많고, 몸매 착해야 진짜 ‘트렌디세터’라고.”

    이런 충고를 한 스타일리스트는 배에서 지방을 콜라병으로 두 병쯤 빼냈다. 신발이나 옷은 누구나 한번 큰맘 먹고 ‘질러’버릴 수 있지만 쁘띠 성형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에 진짜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쁘띠 성형이 유행하는 이유도 이런 ‘계급적 차별화’의 욕망 아닐까. 그래서 한 미래학자는 비만한 몸과 거친 피부, 나쁜 자세를 가진 계층을 ‘코스메틱 언더클래스’라고 지칭했다. 최근 생일 선물로 에스테틱 시술권을 받아 ‘어퍼클래스’를 꿈꾸던 나는 시술하자마자 회식 자리에서 과음하는 바람에 최악의 피부상태를 맞게 됐다. ‘코스메틱 언더클래스’란 말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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