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캠퍼스는 이미 방학에 접어들었는데도 총장실이 분주했다. 결재서류를 든 대학 관계자 여럿이 총장실을 들고난 다음에야 정 총장을 만날 수 있었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한 정 총장은 한국 과학기술 발달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수석으로 입학한 경기고를 1년 만에 수료하고 서울대에 차석으로 입학해 젊은 시절, ‘천재과학자’로 불렸다. 스물네 살 때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프린스턴대 핵융합연구원, MIT 원자공학연구원, 뉴욕공대 핵공학과 교수를 지냈다. 귀국해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설립의 실질적인 산파로 기여하고, 한국형 표준원자로를 개발해 국내 원자력 기술 발달에 박차를 가했다.
정 총장은 인터뷰가 있기 이틀 전,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에서 특강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1977년 6월 고리원전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해 꼬박 30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도 치렀다고 한다.
“1968년 시작된 한국의 원자력 기술 발달사에서 고리 원전 1, 2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까지는 ‘턴키(Turn Key)’ 시절이라고 하지요. 재원, 기술, 인력, 어느 것 하나 우리 힘으로 한 게 없고, 오로지 키를 꽂아 돌리는 것만 우리가 했다고 해서 그런 표현을 썼는데, 지금 우리의 원자력 기술 수준이 독보적인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1차산업과 생명과학기술의 접점
▼ 농축수산업의 첨단화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무엇인지요.
“첨단산업이란 단어는, 송곳같이 뚫고 나가는 산업을 가리키죠. 인류 역사는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며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고 기술혁명까지 왔는데, 이것이 정보혁명으로 이어지고, 그 다음 단계는 지식혁명이라고 하잖아요. 지식혁명 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요. 1차산업이 붕괴하면 절대 초일류 국가가 될 수 없어요. 지정학적인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식량과 에너지만은 반드시 자립능력을 갖춰야 하죠.
그런 점에서 1차산업의 첨단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대개 첨단기술이라고 하면 농업을 제외하는데, 실상 생명과학기술과 1차산업은 연결고리가 많습니다. 생산종류 증대, 저장기술 등을 포함해서 말이죠. 또 1차산업 하면, 흔히 먹는 것만 생각하는데, 석유 값이 오른 다음 옥수수 값도 엄청 올랐다고 하지요? 옥수수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고기능 작물 생산이 중요합니다. 품종 다양화로 식량을 확보하고 바이오 에너지로도 활용할 수 있죠.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 바이오에너지의 힘이 막강해질 겁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국가는 탄소세(稅)를 물어야 하는데, 농작물로 에너지를 개발하면, 농작물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좋고, 탄소세도 감면되니 엄청난 경쟁력이죠.”
▼ 1차산업의 첨단화에 명지대가 나선 데는 어떤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가 한국 사랑의 집짓기운동(해비타트) 이사장을 맡고 있어요. 지난해 홍수가 났을 때, 농림부에서 3억원을 지원하면서 이재민을 위한 긴급 주택시설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명지대 용인캠퍼스에서 5.5평(18.18m2)짜리 50가구를 지어 강원도 인제와 평창으로 옮겨갔는데, 농림부 장관이 직접 나와 맞아줬어요. 그때 자리를 같이한 우리 대학 남백희 교수(생명과학정보학부·상자기사 참조)가 ‘고기능 벼농사로 우리 농업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지금보다 10배 이상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하니 장관께서 명지대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군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죠.”
▼ 대학의 농업 관련 첨단기술 연구만으로 침체된 농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 지원 연구원’은 △농축수산 품종의 다양화 △다양한 고부가가치 농축수산물 생산 △바이오 에너지 및 환경연구를 위해 총 21개 분야를 연결할 계획이에요. 농업 전문가뿐 아니라 에너지 전문가, 기계공학 전문가, 농업경제 전문가 등이 참여하죠. 우리 연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1차산업을 사양산업이 아닌 전향적인 첨단산업으로 만드는 겁니다. 연구원 이름이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 지원연구원’인 것도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구가 현장의 기술 신장으로 이어지도록 서비스하겠다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그렇게 정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