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첨단 농축수산업 육성 나선 정근모 명지대 총장

“쾌적한 농촌에서 건실한 프로페셔널로 사는 길 연다”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7-08-08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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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IST 설립의 주역이며, 한국형 표준원자로를 개발해 한국 원자력 기술 발전의 초석을 놓은 정근모 명지대 총장이 최근 ‘농축수산업 첨단화’에 앞장서겠다고 밝혀 화제다. 정 총장은 8월 중 명지대 용인캠퍼스에 연구원을 설립, 1차산업을 초일류 국가 도약의 핵심동력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첨단 농축수산업 육성 나선 정근모 명지대 총장
    추적추적 비가 내린 6월29일 오후, 서울 남가좌동 명지대를 찾았다. 최근 ‘농축수산업의 첨단화’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한 정근모(鄭根謨·68) 총장을 만나려는 참이다. 정 총장은 조만간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 지원 연구원(Pioneering Institute of Agrobiotech Science and Engineering)’을 설립해 ‘녹색과학운동’의 산실로 운영하고, ‘제2의 새마을운동’ ‘제2의 상록수운동’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농축수산 분야 세계 최고 석학을 초대 연구원장으로 초빙하기 위해 막바지 조율 중이며, 연구원 설립을 기념하는 학술심포지엄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명지대는 이에 앞서 지난 5월, 미국 켄터키주립대와 기술교류협약을 체결했다.

    캠퍼스는 이미 방학에 접어들었는데도 총장실이 분주했다. 결재서류를 든 대학 관계자 여럿이 총장실을 들고난 다음에야 정 총장을 만날 수 있었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한 정 총장은 한국 과학기술 발달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수석으로 입학한 경기고를 1년 만에 수료하고 서울대에 차석으로 입학해 젊은 시절, ‘천재과학자’로 불렸다. 스물네 살 때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프린스턴대 핵융합연구원, MIT 원자공학연구원, 뉴욕공대 핵공학과 교수를 지냈다. 귀국해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설립의 실질적인 산파로 기여하고, 한국형 표준원자로를 개발해 국내 원자력 기술 발달에 박차를 가했다.

    정 총장은 인터뷰가 있기 이틀 전,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에서 특강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1977년 6월 고리원전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해 꼬박 30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도 치렀다고 한다.

    “1968년 시작된 한국의 원자력 기술 발달사에서 고리 원전 1, 2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까지는 ‘턴키(Turn Key)’ 시절이라고 하지요. 재원, 기술, 인력, 어느 것 하나 우리 힘으로 한 게 없고, 오로지 키를 꽂아 돌리는 것만 우리가 했다고 해서 그런 표현을 썼는데, 지금 우리의 원자력 기술 수준이 독보적인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1차산업과 생명과학기술의 접점

    ▼ 농축수산업의 첨단화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무엇인지요.

    “첨단산업이란 단어는, 송곳같이 뚫고 나가는 산업을 가리키죠. 인류 역사는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며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고 기술혁명까지 왔는데, 이것이 정보혁명으로 이어지고, 그 다음 단계는 지식혁명이라고 하잖아요. 지식혁명 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요. 1차산업이 붕괴하면 절대 초일류 국가가 될 수 없어요. 지정학적인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식량과 에너지만은 반드시 자립능력을 갖춰야 하죠.

    그런 점에서 1차산업의 첨단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대개 첨단기술이라고 하면 농업을 제외하는데, 실상 생명과학기술과 1차산업은 연결고리가 많습니다. 생산종류 증대, 저장기술 등을 포함해서 말이죠. 또 1차산업 하면, 흔히 먹는 것만 생각하는데, 석유 값이 오른 다음 옥수수 값도 엄청 올랐다고 하지요? 옥수수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고기능 작물 생산이 중요합니다. 품종 다양화로 식량을 확보하고 바이오 에너지로도 활용할 수 있죠.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 바이오에너지의 힘이 막강해질 겁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국가는 탄소세(稅)를 물어야 하는데, 농작물로 에너지를 개발하면, 농작물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좋고, 탄소세도 감면되니 엄청난 경쟁력이죠.”

    ▼ 1차산업의 첨단화에 명지대가 나선 데는 어떤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가 한국 사랑의 집짓기운동(해비타트) 이사장을 맡고 있어요. 지난해 홍수가 났을 때, 농림부에서 3억원을 지원하면서 이재민을 위한 긴급 주택시설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명지대 용인캠퍼스에서 5.5평(18.18m2)짜리 50가구를 지어 강원도 인제와 평창으로 옮겨갔는데, 농림부 장관이 직접 나와 맞아줬어요. 그때 자리를 같이한 우리 대학 남백희 교수(생명과학정보학부·상자기사 참조)가 ‘고기능 벼농사로 우리 농업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지금보다 10배 이상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하니 장관께서 명지대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군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죠.”

    ▼ 대학의 농업 관련 첨단기술 연구만으로 침체된 농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 지원 연구원’은 △농축수산 품종의 다양화 △다양한 고부가가치 농축수산물 생산 △바이오 에너지 및 환경연구를 위해 총 21개 분야를 연결할 계획이에요. 농업 전문가뿐 아니라 에너지 전문가, 기계공학 전문가, 농업경제 전문가 등이 참여하죠. 우리 연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1차산업을 사양산업이 아닌 전향적인 첨단산업으로 만드는 겁니다. 연구원 이름이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 지원연구원’인 것도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구가 현장의 기술 신장으로 이어지도록 서비스하겠다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그렇게 정한 거예요.”

    내륙지방의 ‘아쿠아 팜’

    첨단 농축수산업 육성 나선 정근모 명지대 총장

    명지대는 지난 5월 켄터키주립대와 기술교류협약을 체결했다.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 지원연구원은 45만평(약 148만7000m2)의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 명지대 용인캠퍼스에 세워진다. 정근모 총장은 “1차산업의 첨단화는 명지대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재단이 같은 강릉의 관동대와 협력하고, 이 분야 권위자들과도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1차산업 첨단화에 기여하고 있는 외국 대학과의 교류도 확대하고, 관련 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외 기업들과 산학협력도 추진 중이다.

    ▼ 5월에 미국 켄터키주립대와 기술교류협약을 체결했다고 들었습니다. 켄터키주립대가 미국의 1차산업을 일으키는 데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지를 알면 명지대의 계획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켄터키주는 미국의 내륙지방인데도 ‘아쿠아 팜(Aqua Farm)’으로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어요. 농촌에서 새우와 생선을 파는 거죠. 결국 과거의 농어업 개념은 무의미해지고, 1차산업이 과학기술과 융합하면 새로운 경쟁력을 지닌 과학기술산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에요. 미국이 1차산업의 대혁명을 위해 주립대(land-grant university) 시스템을 도입한 데서 비롯된 성과죠.”

    19세기 중후반, 미국은 농업기술 향상과 농촌지역 공교육 강화를 위해 주립대 체제를 도입했다. 각 주립대에서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농업기술을 연구하고, 그 연구결과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4H운동의 효과가 컸다.

    “우리 대학이 하려는 운동의 핵심은 1차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프로페셔널로 인정받게 하는 겁니다. 때가 잘 맞았다고 생각하는 게, 한미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농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요. 이러한 위기감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 오히려 호기로 작용할 수 있어요. 단순히 농법을 기계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첨단과학기술을 접목해 고기능 작물, 전혀 새로운 작물을 생산하고, 자연환경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게 우리의 목표예요. 벼농사를 예로 들면, 대개는 기껏해야 통일벼로 수확량을 늘리는 걸 생각하지만, 앞으로 벼도 기능화해야 합니다. 특별 영양소가 들어 있거나 특별 기능이 있어서 그것을 먹으면 병이 낫는 고부가가치 기능성 쌀을 만드는 거죠. 소나 돼지 같은 육종도 마찬가지로 기능화해야 합니다. 석유나 석탄 등 고갈되는 에너지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도 1차산업에서 찾을 수 있고요.

    또 생산물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방법, 보관법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등 총체적인 시스템 공학으로 실질적인 가치창출을 극대화할 겁니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생산한 커피가 미국산 스타벅스가 되지만, 그러기까지 너무 많은 유통과정을 거친 탓에 농가(農家)에 돌아가는 이익은 극히 미미해요. 그런데 인터넷 등을 활용해 유통과정을 단축시키면 농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죠. 이렇게 생각을 전환하면 농촌은 피해 보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받는 곳이에요.”

    자립과 협력을 동시에

    공교롭게도 정 총장을 만나기 하루 전날, 정부는 한미FTA 농업분야 보완대책을 내놓았다. △젊고 활력 있는 전업농 중심 육성을 위해 경영에서 손을 떼는 고령농에게 현금 지급(경영이양직불제) △관세 인하 혹은 수입량 증가로 생산이 감소했을 때 감소액의 85%를 현금 지원(피해보전직불제) △농가등록제를 통해 기준소득보다 낮을 경우 격차의 일부 보전 △농촌 소득원이 농업 외에 제조업, 물류, 관광산업 등으로 다변화하는 여건 조성 △신품종 육종과 우수품종 보급 추진 △첨단 농업·식품 클러스터 2곳 조성 △안정적 판로 구축 지원 등이다. 정부는 ‘단기간에 나타나는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직접적인 피해지원에 나서는 한편, 한미FTA를 계기로 농업과 농촌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방안’이라고 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혁명적이고 실질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 정부가 내놓은 한미FTA 농업 분야 보완대책을 어떻게 봅니까. 피해보전에 중점을 둔 듯한데요.

    “피해보전은 수동적인 대응방식일 뿐이죠. 농촌 사람들이 뒤떨어져 있다고 전제한 정책이에요. 자기 자신의 능력을 투자하겠다는 사람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정부의 농업정책은 그렇지 못해요. 해비타트 운동만 해도 집을 그냥 지어주는 게 아니라 돈을 빌려줘 집을 짓게 하고, 그 과정을 자원봉사자들이 돕는 겁니다. 자립과 협력정신을 동시에 키우는 거죠. 1차산업을 일으키는 것도 마찬가지여야 해요. 농민은 피해자니까 도와줘야 한다, 낙후된 산업을 유지해간다는 식이 아니라, 농촌생활이 도시생활보다 훨씬 친환경적이고, 프로페셔널 하도록 바꿔야죠.”

    명지대 측은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 지원연구원이 원천기술 개발 및 기술 지원뿐 아니라 국제금융 지원, 글로벌 시장개척 지원, 국제법률 지원, 재난예측 보험 지원을 통해 농축수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한다.

    벼 유전자 연구 권위자 남백희 명지대 생명과학정보학부 교수

    “세계 놀라게 할 연구 결과 속속… 젊음 투자해볼 가치 충분”


    첨단 농축수산업 육성 나선 정근모 명지대 총장
    물리학자인 정근모 총장이 1차산업 육성에 나선 데는 명지대 생명과학정보학부 남백희(南伯熙·54) 교수의 힘이 컸다. 남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벼 DNA칩’을 개발해 화제를 모은 농업-생명과학 분야의 권위자다. 남 교수가 2003년에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김민균 교수팀과 공동으로 개발한 벼 DNA칩은 벼 유전자 6만4896개의 발현 상태를 신속하게 분석할 수 있다. 그전까지 미국에서 공급해온 벼 DNA칩은 유전자 4만개 집적도에 불과했다. 남 교수는 이에 앞서 제초제와 여러 균에 강한 슈퍼벼를 개발하는 등 벼 유전자 연구 및 형질전환 벼 개발을 계속해왔다.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 지원 연구원 설립의 실무를 맡고 있는 남 교수는 이 연구원이 △이미 개발된 기술의 사업화를 지원하고 △농업생명과학을 뒷받침하는 여러 분야를 긴밀하게 조직하며 △새로운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정부가 주도해온 연구의 결과물들이 적재적소에 투입돼, 사업화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유독 농업 분야에 전무하다시피 한 ‘컨설팅’을 연구원에서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원이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데만 힘을 쏟을 게 아니라, 이미 연구됐으나 후속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당장 상용화할 수 있는데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기술들이 충분히 활용되도록 촉매 기능을 하겠다는 얘기다. 또한 남 교수가 개발한 ‘슈퍼벼’는 국내보다 가뭄이 심각한 나라에서 호응도가 높은데, 이처럼 세계시장을 염두에 둔 농업 관련 연구 성과들이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연구원이 지원할 계획이다.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 기술 지원 연구원이 할 연구의 성격이 같은 분야 국책 연구소나 대학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연구의 연장이라면 비효율적일 것이다. 남 교수는 “기존 연구보다 이론적 접근에 치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진 생물학 중심의 학제간 융합 기술 개발이 주를 이뤘지만, 앞으론 수학과 물리 등 기초과학 연구 비중을 늘릴 겁니다. 기존 이론을 생물학에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원천기술 개발이 용이할 것으로 보이거든요.”

    남 교수는 연구원이 “농업환경을 바꾸기는 어려울 테지만, 농업의 구조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느 나라나 기후 혹은 지형적 단점을 갖고 있죠. 굳이 벨기에나 네덜란드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자기네 나라의 지역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나라의 농업 환경을 바꾸긴 어렵지만, 우리 환경에서 가장 잘 되는 인삼, 쌀, 배추는 충분히 경쟁력 있죠. 또 우리나라 종자회사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니, 종자 생산 시스템을 선진화해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종자를 중국이나 베트남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재배하도록 하면 되고요. 국내에 1000억원 규모 시장을 가진 작물이 20개가 넘지만, 연구가 전혀 안 돼 그렇지 못한 작물이 대부분이에요. 기술력을 높이면 기본적인 인프라도 좋아질 거라 기대합니다.”

    최근 대학이나 농업 관련 학회들은 ‘농업’이란 타이틀 때문에 고심한다. ‘농업’이 첨단, 경쟁력 혹은 경제력과 거리가 먼 것으로 각인되면서 타이틀에 농업이 들어가 있는 자체로 젊은이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구조가 낙후돼 있어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니 경제력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들어오려 하지 않고,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어요. 농업이 당장은 장점이 없어 보이지만, 호재가 많은 영역입니다. 대개 한 분야의 연구는 10년을 내다보는데, 정부 주도로 농업 관련 연구가 본격화한 지 이제 7~8년 돼가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어요. 농업 구조를 바꿀 만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남 교수는 “IT벤처와 비교해봐도 농업벤처는 첫 시장 진입이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궤도에 안착하면 생명력이 훨씬 길다”며 1차산업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기대했다.


    지속가능한 환경운동

    ▼ 말씀을 들어보니 1차산업의 부흥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십 년간 농과대 졸업생을 수없이 배출했으나 농어촌 현실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걸 감안하면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장래를 책임질 핵심은 교육과 과학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MIT 부총장이 ‘Science: the endless frontier’라고 했어요. 과학은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는 의미죠. 교육은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고요. 그런데 지금껏 국내 대학들이 나노기술(Nano-technology) 쪽으로 쏠리고, 농업은 등한시했어요. 변하지 않는 영역으로 간주하고 외면했죠. 1차산업이 낙후된 데는 대학의 책임도 큽니다. 그런데 이제 대학이 농어촌 활성화에 직접 관여하겠다는 겁니다. 교육, 연구와 더불어 사회봉사야말로 대학이 맡아야 할 임무죠.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농촌이 엄청나게 변화했어요. 다만 다른 영역에 비해 그 속도가 느리죠. 다른 영역들과 속도를 맞추려면 집단적인 협력이 필요합니다.”

    ▼ 대학 내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첨단 농업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농어촌엔 고령자뿐이니 연구실과 현장 간의 기술 격차만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연구원에서 지원을 하더라도 1차산업 종사자가 젊어지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듯한데요.

    “우리나라 사람은 두뇌가 참 좋고, 교육열이 높아요. 그래서 대학 진학률도 월등히 높죠. 대학이 전문인을 키워내면, 그 전문인을 흡수할 만한 산업분야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실정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농촌에서 건실한 전문가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이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삼성전자 엔지니어를 첨단산업의 기수로 여기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농촌엔 할머니, 할아버지, 외국에서 시집온 며느리뿐이라는데, 1차산업에 생명과학기술을 접목시켜 최첨단산업으로 만들면 농가가 최고산업의 주역이 될 수 있어요. 1차산업을 고부가가치 생산이 가능한 영역으로 만들어야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질 테고, 그래야 지속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죠. 연구원 설립을 ‘녹색과학운동’이라고 표현한 건 과학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을 해나간다는 의미에서지요.”

    정 총장의 구상은, 한미FTA라는 높은 파고를 목전에 두고 위축될 대로 위축된 우리 농축수산업을 어떻게 다독여 일으켜 세울 것인지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으나, 더 나아갈 데가 없다는 생각으로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돌파구를 제시하는 게 목적이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농어촌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낙후된 분야를 살려 대한민국 전체에 힘을 불어넣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경공업, 중화학공업, 정보통신산업을 일으켜 국제적으로 이름이 났지만, 그 다음 비전이 없어요. 그 때문에 국민이 위기감을 갖고 있죠. 우리 국토의 4분의 3이 산인데, 우리는 나무 심는 것만 배웠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별로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선 목조건물이 전체의 5%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대부분이 목조건물이에요. 나무는 무조건 오래돼야 좋은 게 아니라 수령이 한 40년일 때 이용가치가 가장 높아요. 시멘트집에 사는 것보단 목조건물에 사는 게 훨씬 건강에 좋지요. 임업을 키워야 해요. 1차산업을 살리겠다는 건, 그동안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던 분야를 살리자는 거예요. 켄터키주립대의 역할이 밭농사 짓는 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놀라운 수출효과를 가져왔지요. 녹색과학운동은, 1차산업이 우리나라의 다음단계 청사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추진하는 겁니다.”

    환갑 맞는 대한민국

    정 총장은 내년이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1948년에 세워졌으니, 내년이면 환갑이잖아요. 정부는 다음 60년으로 넘어가기 위해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있는 것 갖고 왈가왈부하는 데 시간을 소모하지 말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면 좋겠어요. 훌륭한 인재들이 한반도를 넘어서 세계의 지평선을 바라보고 살게끔 꿈의 21세기를 열어줘야죠. 전문가다운 농업 기술력을 갖추면, 꼭 한국에서 안 살아도 돼요. 다른 나라에 가서 첨단 농법으로 농사지으면 되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첨단농업을 하면 엄청난 소득을 거둘 거예요. 가난한 나라에 가면 기회가 훨씬 많죠. 위생적으로 낙후하고, 일용양식이 충분치 않은 곳에 가면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생길 겁니다. 선진국에 가서 배워오는 것도 필요하고요. 제발 이 다음 세대는 한반도가 전부라는 생각을 갖지 않길 바라죠.”

    정 총장은 요즘 자주 KAIST 설립 당시를 떠올린다. 그의 나이 서른을 갓 넘었을 때다.

    “1970년대 KAIST 설립을 주도한 사람들 대부분이 30대였어요. 가장 큰 힘은 꿈이었죠. 이번 녹색과학운동도 촉발은 제가 하되 젊은이들이 꿈을 불살라 열매를 맺으면 좋겠어요.”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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